다발성골수종을 확진받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16일(확진 하루 전날)
존재와 비존재의 경계는 물리적인 자아가 실존하는지의 여부에 있을까? 만약 내가 1년 후에 신체로 존재하지 않는다 치면 나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
마흔에 죽은 내 친구 Y의 존재는 나에게 그에 대한 기억으로 구성되어 있다. 초등학교 일 학년 때 운동장에서 하늘의 별은 별사탕처럼 뾰족뾰족한 모양이라고 우겼던 그녀, 그의 집에 처음 갔을 때 달려들어 환영해 주었던 스피츠들, 처음 맛보았던 간식거리들, 10대와 20대 때 찬란하게 빛났던 그녀의 아름다움, 30대에 다시 만난 후 나를 전적으로 의지했던 그녀의 연약한 성품, 몇 명의 남자에게 상처받았던 그녀의 마음, 맹목적 사랑의 대상이었던 그녀의 아들, 이런 기억의 조각들이 Y다.
지금은 그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지만, 눈을 감으면 그녀가 내 이름을 부를 때의 독특한 억양과 꾸미지 않은 웃음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천국에 가면 그 친구를 만날 수 있을까? 정말로 천국이 있을까? “좋은 곳에 갔을 거야”라는 말은 살아있는 사람들이 서로를 위로하기 위해 하는 말이 아닐까?
오늘 밤을 꼬박 새운다. 내일의 선고를 나를 두려워하는 것일까?
일기 발췌_2010년 1월 17일(확진받은 날)
L 교수의 표정에는 미안함이 역력했다. 좋은 소식을 전해주지 못하여 미안해하는 마음. 이런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면 불치의 병도 손실만은 아니다.
H는 어제 통화에서 근거 없는 낙관론을 펼쳐놓고는 자기 혼자 심란하였나 보다. 잠을 못 잤다고 했다. 나를 위해 잠 못 이루는 사람이 있다니, 나는 얼마나 행복한 존재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