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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Apr 29. 2024

죽을 것처럼 피곤한 나날들

학위와 맞바꾼 건강

    심리상담을 공부하기 위해 마흔 살에 대학원에 입학한 나는 7년 만에 박사 학위를 받았다. 졸업을 하고 나니 뜻하지 않게 시간 강의가 주어졌다. 신록처럼 파릇한 청년들을 상대로 강의하는 일은 나를 설레게 했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나의 잠재력과 만나는 시간이었고 통장에 들어오는 급여는 내가 드디어 쓸모 있는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점점 늘어나는 강의시간에 즐거운 비명을 지르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여름방학을 보낸 후 가을학기가 막 시작되었던 9월 초의 어느 날, 별로 친하지 않은 대학원 동기가 대전 인근의 K 대학 산학협력단의 연구원 자리를 제의했다. 그녀가 일하던 곳이었는데 자신이 다른 곳에 스카우트되는 바람에 자리가 비게 되었다고 했다. 근무기간이 6개월밖에 남지 않아서 사람을 구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녀는 무척 다급해 보였다. 나의 사정이나 의향보다는 자신의 필요가 더 중요한 것처럼 굴어서 마음이 내키지 않았으나 한 번 가보는 것쯤은 해롭지 않을 것 같아서 그 학교를 방문해 보기로 했다.

    그런데 그쪽에서는 내가 부임하는 것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었다. 나는 그날 업무내용과 근무환경을 알아보러 간 것일 뿐이었는데 연구소장이라는 분은 당일 저녁에 환영회를 하자고 했다. 그분은 겨우 6개월 근무할 직원을 뽑는데 시간을 허비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나는 대학원 동기와 연구소장의 사적인 필요에 등 떠밀려 얼떨결에 K 대학 산학협력단에 출근하게 되었다.

    근무환경도 별로 좋지 않고 내게 유난히 불친절하게 구는 연구원이 있어서 불편했지만, 그가 나란 사람을 몰라서 그런 것이라 생각했고 또 길지도 않은 기간 동안 내게 주어진 일이나 열심히 하자고 생각했다.


    기왕에 수락했던 강의들이 있었기에 강의와 K 대학 근무를 겸하다 보니 과로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 연구소장이 말한 근무시간은 시간이 가면서 고무줄처럼 늘어났다. 어린아이가 있어서 9시 출근이 어렵다고 말했을 때는 양해한다고 했기에 채용 제의를 받아들인 것인데 시간이 갈수록 나만 늦게 출근하는 것이 눈치가 보이기 시작했다.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는 데서 오는 스트레스와 동료들이 주는 심리적 압박은 엄청난 피로감을 유발했다.

    주말 내내 쉬어보아도 피곤함이 풀리지 않았다. 월요일 아침 납덩이같은 몸을 이끌고 출근하여 금요일까지 버티는 것이 벅찼다. 날이 추워지면서 피로감은 극에 달했다. 연말이 되었을 때 나는 이러다 죽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늘 피곤에 절어 있었다. 그러나 그때도 ‘죽을 것처럼’이란 말은 은유에 불과했다.

    사무실 사람들도 나의 건강이상을 눈치챘다. 허리가 너무 아프다고 하니 나를 걱정하는 동료들이 있는 반면 나의 병을 제멋대로 진단하며 처방까지 내려주는 사람도 있었다. 척추강 협착증이 틀림없다며 자신이 그 병을 앓았을 때 나은 방법을 쓰라고 했다. 정확한 병명도 모르면서 증상만 가지고 남의 병을 잘 아는 척하는 것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고질병이다.


    나는 결국 집에서 쓰러졌고 다발성골수종 진단을 받았다. 연구소와 계약한 기간을 두 달 남겨놓은 상태였다. 남은 두 달을 채우지 못하는 것이 미안했던 나는 후임으로 왔다는 대학원 후배를 입원실로 불러 인수인계를 했다. 내가 아무런 가이드도 받지 못한 채 업무를 익히느라 겪은 고생을 그녀에게까지 넘겨줄 수는 없었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3일

    C 신경정형외과에 입원했다. 어제 K 대학교에 일하러 갔다 왔더니 컨디션이 더 나빠졌다. 원래는 허리와 가슴만 아팠는데 이젠 고관절, 목, 등, 다리, 팔까지 다 아프다.
    오래 비워둔 방인지 TV도 안 나오고 변기 물도 안 내려가고, 온풍기도 작동되지 않았다. 3시간 만에 대충 문제를 해결하고 주사를 한 대 맞았더니 좀 살 만 해졌다.
    아무래도 다음 주 월요일에 회의에 참석할 확률은 10 프로 미만일 것 같아서 후임인 J 선생을 병원으로 불렀다. 다른 연구원들과는 개별적으로 업무 연락을 취했다. 조금 마음이 놓인다.  

    오늘 새벽에 일어나 서울성모병원에서 받아온 다발성골수종 안내 책자와 환우 체험기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다발성골수종의 전형적 증상이 허리와 가슴 통증을 동시에 느끼는 것이라고 쓰여 있어서 깜짝 놀랐다. 바로 나의 증상이었다. 그런데 어쩜 이 병에 대한 인식이 이렇게도 낮을까? 일반인은 그렇다 치고 정형외과 의사들은 마땅히 알고 있어야 할 것 같은데 내가 방문한 정형외과의 의사 중 이 병명을 언급하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책자에 나온 설명과 충남대학병원 L 교수가 했던 설명이 연결되면서 이 병의 실체에 조금 더 가까워진 느낌이 들었다. 백혈구가 비정상적인 형질세포(암세포)를 만들어내는 것으로부터 시작되는 이 병은 일차적으로 뼈의 손상을 유발하므로 골절 위험이 매우 높다. 어제 진통제를 먹고 몸이 좀 괜찮아진 듯하여 외출한 것은 큰 실수였다. 웬만하면 진통제를 자제해야겠다.
    두 번째 위험요인은 신장 손상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세 번째 위험요인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열이 나면 즉시 응급실로 가라고 쓰여 있었는데 이는 폐렴으로 발전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다.      

   지금 내가 복용하는 약은 하루 두 번 먹는 스테로이드제 40알과 호르몬제 1알, 제산제 1알이다. 스테로이드는 형질세포를 죽인다고 한다. 따라서 대용량을 복용하면 골수 속의 형질세포가 급속히 감소하여 통증이 줄어든다고 하니 기대해 볼 일이다.
    한 달 동안의 먹는 약 복용이 끝나면 주사약을 맞는다. 주사약 회수는 사람마다 다른데, 인터넷에서 검색한 체험수기의 주인공은 총 24회를 맞았다고 한다. 이 사람은 주사 치료를 8회 받은 후에 조혈모세포를 채취하여 자가이식을 받은 다음 퇴원했고, 퇴원 후에 추가로 주사 치료를 16회 더 받았다. 그러니까 그는 치료 시작 후 넉 달 만에 조혈모세포 이식을 받은 셈이다. 이 사람처럼 성공적으로 진행된다면 나도 5월쯤엔 자가골수이식을 받을 수 있을까?
    이 사람은 치료가 끝난 후 축농증과 오십견 치료를 받았고 4개월마다 정기검진을 받고 있다고 했다. 2006년 2월에 확진받고 2009년 크리스마스 현재 잘 지내고 있다 한다. 나의 미래 그림이 보이면서 자신감과 희망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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