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발췌_2010년 1월 20일(수)
확진받은 후 가장 먼저 염려된 것은 양가 부모님들이었다. 노인들을 어떻게 안심시킬까? 시부모님은 내가 서울로 올라가기 전에 얼굴을 봐야겠다고 밤에 기어이 병실로 오셨다. 그리고는 내가 여전히 명랑한 것을 보시고 이제 됐다, 하고 가셨다.
새벽 2시에 잠이 깨어 펜을 들다 말고 지인들에게 기도와 응원을 요청하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사람들의 관심과 격려 없이는 견뎌낼 수 없을 것 같아서다. 잠도 없는 선주 엄마가 문자를 받자마자 전화를 했다. 유방암 투병 중인 그녀는 현재까지 항암제 4차, 방사선 2차 치료를 받았다고 했다. 요즘은 암이 흔한 병이니 염려하지 말라고 나를 안심시킨다.
어제 핵의학과에서 PET-CT를 찍은 후 계속 어지럼증이 있다. 검사하기 전에 맞은 주사제 때문인가 보다. 다발성골수종 안내 책자에 나왔던 의식장애, 사고장애라는 단어가 떠오른다. 의식이 자꾸 흐려지고 휴대폰 주소록에 있는 사람들 이름을 보고 그가 누구인지 인식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1일(목) 비
오늘은 초조한 순간의 연속이었다. 담당 교수의 퇴원 지시가 떨어지기 전에는 일체의 의무기록을 받아 갈 수 없다는데 서울에 도착해야 하는 시각은 12시라 마음이 급했다. 비는 짓궂게 내리고... 꼭 오늘 올라가야 할까? 진료일을 연기하면 안 될까 하는 생각이 있었지만, 남편은 하루라도 늦추지 말자고 했다.
남편과 P 집사님이 담당 교수의 연구실 앞에 죽치고 기다려서 퇴원 허락을 받았다. 남편 친구 부인인 원무과 직원 W가 해당 검사실을 쫓아다니며 기록 복사를 재촉했다. K 집사님 부부는 출근했다 다시 나와서 우리 두 사람을 차까지 배웅해 주었다. 이들은 함께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설교도 강의도 아닌 몸으로, 눈빛으로 보여주었다.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할 것에 대비하여 서울 사는 여동생과 친구 정민이에게 원무과 접수를 부탁했으나 여의치 않았다. 남편이 인맥을 동원하여 서울성모병원 간호사를 소개받았고 그녀의 도움으로 드디어 접수가 되었다. 그러다 보니 가는 내내 전화통에 불이 났다. 나중에 큰딸이, 엄마 병보다 전화가 더 무섭더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진료가 끝나니 오후 2시였다. 부리나케 밥 한 그릇씩 먹고 2시 반에 예약된 골밀도 검사를 받으러 올라갔다. 당연히 오늘 입원할 거라 생각했기에 담당 교수를 바로 또 만날 줄 알고 빠트린 질문이 뒤늦게 생각났다.
남편은 담당 교수에게 추가 질문을 하기 위해 3시에 시작하는 ‘다발성골수종의 치료’ 강의를 들으러 가고 딸과 나는 방배동 시누이댁으로 갔다. 입원하지 않고 집으로 갈 수 있다는 사실에 흥분되어 병이 다 나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조카들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남편이 시누이댁으로 왔을 때 나는 몹시 피곤했으나 막내를 깜짝 놀라게 해 주려고 대전 집에 돌아왔고, 집에 와서는 푹 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