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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라 Jul 01. 2024

나를 찾아준 사람들

대전에서, 그리고 서울에서

    서울성모병원 같은 큰 병원에서 입원허락을 받기는 쉽지 않다. 나는 첫 외래진료 후 우리 동네 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열이 나서 다시 서울성모병원 응급실로 갔는데, 이번에는 입원허락이 떨어졌다. 서울에서의 첫 입원이었다. 입원해 있는 열흘 내내 많이 아팠다. 마약성 진통제를 투여하면 신기하게도 통증이 사라졌지만, 밤마다 고열에 시달렸다. 친정엄마가 옆에서 나를 간병했다. 엄마가 끊임없이 시편을 읽고 기도를 해주셔서 큰 위안이 되었다. 엄마가 지칠까 봐 하룻밤은 집에 가시게 하고 사촌 언니가 와서 곁을 지켜주었다. 그날 하루를 제외하고는 엄마가 매일 병원에 계셨다. 우리 엄마는 정말 강한 사람이다. 당시 연세가 70대 중반이었는데 지치지도 않았다. 몇 년 후 아버지가 입퇴원을 반복할 때도 엄마는 늘 아버지 옆에서 간병하셨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4일 일요일

    (C 신경정형외과 입원 중) 김요한 목사님의 심방을 받았다. 얼마 전 P 집사님을 통해 목사님의 어머님인 트루디 여사도 나와 같은 병을 앓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때의 느낌은 반가움이랄까, 안심이랄까, 그 비슷한 감정이었다. 언젠가 트루디 여사가 편찮으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어디가 아프신지 관심도 없었던 내가 그분의 병명을 듣고 위안을 받다니, 나는 정말 극도의 이기주의자였다.
    목사님은 처음으로 자기 어머님의 병 이야기를 해주셨다. 오로지 나를 위해. 설교도, 충고도 하지 않고 기도만 해주셨다. 원래 말씀이 없는 분이기에 그분의 기도가 더욱 진실하고 간절하게 다가왔다.

    트루디 여사가 최근에 파이 굽기 교실을 열어 모금 운동을 하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기억이 난다. 그분의 연세가 일흔은 족히 넘었을 것이다. 죽음의 골짜기를 지나왔으나 자기 연민에 빠지지 않고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살아가시는 그분의 평정심이 새삼 놀랍게 느껴진다. 나도 그분처럼 되고 싶다. 내 인생의 전반기를 지나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할 수 있게 된 시점에 내 앞에 무서운 강과 깊은 골짜기가 펼쳐진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5일 월요일     

    어제까지 덱사메타손 나흘 치 복용이 끝났다. 손바닥이 붉어지고 따끔거리는 증상이 나타났었는데 오늘은 많이 가라앉았다. 흉통과 고관절 통증도 줄어들었고, 때때로 핏줄을 타고 흐르는 약의 시원한 느낌이 감지된다. 내일은 청사신경외과에서 퇴원하여 서울 진료를 준비해도 될 것 같다.  
  
    월요일인지라 여러 사람의 전화를 받았다. 교회와 대학원, 직장 사람들과 오래된 지인들로부터 전화가 왔다.  친정 부모님이 점심때 다녀가시고 여성 소그룹 멤버들이 같이 식사하자며 전화했으나 식사 후에 방문해 달라고 부탁했다. 부모님은 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하자 눈물을 흘리셨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픈 것이 내가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럽다” 하셨다.
    방문객들이 다녀간 후 체온이 37도 3부까지 올랐다가 밤에는 36도 8부로 떨어졌다. 하지만 몸은 계속 힘들었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6일 화요일

    어제는 한 번도 대변을 보지 못하다가 오늘 새벽에야 보았다. 가슴과 엉덩이 통증은 계속되고 있다. 오늘은 서울성모병원에 전화하여 이런 통증 변화가 정상적인 것이지 물어봐야겠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7일 수요일    
  
    어제 오후 서울로 올라왔다. 체온이 37도 3부에서 떨어지지 않고 통증이 더 심해져서이다. 혈액검사와 신장 초음파 검사를 받고 나서 마지막 순서로 진료받았다.
    민창기 교수는 나의 M 단백 수치가 4천 대에서 2천대로 떨어졌다며 치료가 잘 되고 있다고 하였다. 다만 암세포가 너무 빨리 용해되다 보니 혈중 불순물이 늘어나서 장기와 몸이 부대끼는 것 같다며 투약 스케줄 조정을 시사했다. 그리고 입원 허가가 떨어졌다. 다행히 1인실 하나가 비어있었다.             
    밤에 화가인 친구 정민이가 달려와 전신 마사지를 해주었다. 그녀의 손을 통해 온몸으로 사랑이 흘러 들어오는 것이 느껴졌다.       
    친구가 가고 나서는 시간이 무척 더디 갔다. 혈압, 체온, 혈액 체크 및 영양제와 진통제 투여, 엑스레이 촬영, 채변까지 했는데도 아직 밤이었다.
    아침이 오니 체온이 36도 6부로 떨어지고 기운이 좀 났다. 남편은 7시에 대전으로 운전해서 갔고, 나 혼자 남아 TV를 켜고 찬양을 들었다.           
친구의 마사지를 받으며 온몸으로 사랑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일기 발췌_2010년 1월 28일 목요일    

    고통은 깊고 밤은 길다. 열에 시달리다 조금 나아진 듯하거나 좀 더 힘들어진 듯해서 시계를 보면 한 시간이 채 지나지 않았다. 내 몸속의 백혈구가 아직은 기능을 하고 있어서 미세한 병원균의 침입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일까? 항암치료 중인 환자에게 가장 무서운 것이 열이라고 했는데 나는 벌써 몇 번째 고열에 시달리고 있다.
    이종사촌 미선이가 찾아왔다. 연로하신 부모님이 병이 나면 안 되므로 가족들이 요일별로 당번을 정해 당직을 서야 한다며 자기가 당직표를 짜주겠다고 했다. 그 스케줄에 따르면 오늘 저녁은 큰딸의 순서지만, 엄마는 내일 공부하러 가는 아이를 힘들게 해서는 안 된다며 대신 주무시겠다고 했다. 에너지가 넘치는 김정숙 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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