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 발췌_2010년 1월 29일 금요일 (서울성모병원 입원 나흘째)
오늘 새벽에 복통의 습격을 받았다. 장염이 아닌가 싶다. 창자를 뒤트는 통증. 배변 후에도 여전히 통증이 남아 있어서 진통제를 맞았다. 아침에 밥이 나와 한 수저 떴더니 즉각 신호가 왔다. 또다시 복통이 시작되었는데 이번엔 구토를 동반했다. 다시 진통제를 맞고 점심은 금식했다. 깨끗이 비워진 창자는 허기 대신 쾌적함을 느끼게 했다.
엄마가 커피 향을 맡아보라고 침대 옆에 종이 커피잔을 갖다 놓았지만, 그 향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무욕이라는 것이 이런 상태를 말하는가 보다. 원하는 것이 없는 사람은 가진 자를 부러워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그 말이 이해되었다.
S여사가 보낸 문자 메시지에 답을 했더니 왜 이제야 답하느냐고 원망을 한다. 내게 무슨 일이 생긴 줄 알고 가슴이 철렁했다는 것이다.
2인실로 옮겼다. 옆 침대의 환자는 자궁경부암 진단을 받은, 천안에 거주하는 2남 2녀의 어머니라 했다. 그녀는 별다른 통증도 없다가 건강검진에서 발견한 ‘암’이라는 병명이 농담처럼 들려 헛웃음만 난다고 했다. 초등학교 때 어머니를 잃고 아버지도 곧 돌아가셔서 어려운 삶을 살아온 사람이었다. “나, 불쌍하게 자랐는데, 하나님은 왜 그러시는 거예요?”라고 말하는 그녀 모습이 불쌍하다거나 애처롭다기보다 사랑스러운 느낌으로 다가왔다.
나의 롤모델이자 대학원 선배인 윤현영 선생이 전화를 주셨다. 한마디 할 때마다 “이소라 선생님” 하고 불러주시는 목소리를 들으니 알고 지낸 십여 년의 세월 중 지금이 그녀와 가장 가까운 시간이라고 느껴졌다. 서울깍쟁이 특유의 차가움이 살짝 느껴지는 그녀는, 너무 좋아하고 존경하면서도 가까이하기 어려운 존재였다. 가까워지고 싶은 사람과 가까워지는 경험, 그것은 살면서 내가 가장 열망하였던 일이었음을 지금 이 순간 깨닫는다. 내가 중병에 걸리지 않았다면 윤선생과 나 사이의 벽은 그처럼 쉽게 허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