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원과 입원 사이 서울 친정과 대전 집에 있을 때 나는 TV 드라마와 영화, 다큐멘터리를 많이 시청했고 고용량 항암을 하기 전까지는 책도 꽤 많이 읽었다. 내 마음이 가난했던 만큼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에 마음이 끌렸고, 몰입하며 보았다. 인간극장 시리즈는 치료가 끝난 후에도 나의 애청 채널이 되었다.
내가 없는 집에서 나 대신 주부 노릇을 해주셨던 시어머님은 내가 집에 내려와 있을 때도 자주 오셔서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해주셨다. 나는 어머님의 이야기에 깊은 감명을 받아서 몸이 회복된 후에 어머님의 자서전을 써드렸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15일 월요일
약에 수면제 성분이 들었는지 어제 오후엔 깊은 잠을 잤다. 부모님은 지난 금요일에 나와 함께 대전에 오셨다가 어제 돌아가셨다.
새벽까지 잠이 안 와서 ‘내 인생의 봄날’이라는 제목의 인간극장 시리즈 다섯 편을 다 보았다. 젊은 여성 암 환자의 생활을 다룬 이야기였다. 그녀는 첫아이를 낳은 직후 말기 암 선고를 받고 1년간 항암치료를 받았으나 더 이상의 치료가 무의미하다는 말을 듣고 남편, 아기와 함께 전원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이런 이야기를 접할 때마다 느끼는 감정을 나는 ‘사랑에의 외경’이라고 부르고 싶다. 딸을 위해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을 해주러 달려온 친정 부모, 불편한 시골 생활을 감수하며 원거리 직장으로 출근하는 남편의 사랑은 숭고하다.
내가 받은 사랑도 이와 다르지 않다. 가장 중요한 목표가 딸의 치료라고 말씀하시는 나의 부모님은 당신들의 피로와 슬픔은 아랑곳하지 않고 나의 안위만 걱정하신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컨디션을 물어보는 남편과, 하루도 거르지 않고 나를 위해 기도해 주시는 시부모님도 있다. 나는 사랑의 빚진 자다. 반드시 이 빚을 갚을 것이다.
헨리 나우엔의 글을 읽다가 ‘죽음은 상실인 동시에 선물’이라는 구절을 만났다. 나의 삶이 누군가에게 선물이 될 수 있다는 개념엔 익숙하지만, 나의 죽음도 선물이 될 수 있다는 말은 생소했다. 저자가 지칭한 죽음은 생전에 불타는 사랑 때문에 고통받았던 토마 신부의 죽음이었다. 나우엔은 토마 신부가 죽어도 ‘그의 사랑은 죽을 수 없고 점점 자라날 수밖에 없다’고 했는데 그 의미를 정확히 알기는 어려워도 설득력 있게 다가왔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16일 화요일
허리 통증이 조금 심해졌고, 사흘 만에 굳은 변이 나왔다. 불면증은 덜해졌지만 붓기가 심해졌고, 체중이 66kg을 초과했다. 화원에 가려고 나섰다가 추워서 다시 들어왔다.
일기 발췌_2010년 3월 17일 수요일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으리라.”
나는 죽을 수 있을까? 그래서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을까?
일기 발췌_2010년 3월 18일 목요일
시어머님은 오늘도 우리 집에 오셔서 당신이 살아오신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어머님은 인삼 농사를 짓고 계를 모으며 쪼들리는 살림살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 드리는 일과 어려운 이웃 구제하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으셨다. 어머님이 풍족한 가운데 수월하게 자식들을 공부시켰다면 자식들이 그처럼 열심히 노력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머님 자신도 하나님께 그처럼 간절히 매달리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하셨다. 부모님의 가난과 기도가 자녀들 한 명 한 명이 최선 다하는 삶을 살게 했고, 하나님을 의뢰하게 했고, 이웃을 섬기는 삶을 살게 한 것 같다.
나는 어머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그분이 의도하시는 것 이상의 큰 깨달음을 얻는다. 어머님은 나에게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고 싶으신 것이다. 젊어서 늘 몸이 아팠던 어머님은 기도하는 가운데 신유(神癒)의 은사(恩賜)를 받으셨다. 어머님은 그 은사가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이 아니라 평생 크고 작은 고난에 봉착하여 눈물로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가까이하신 결과로 얻어진 것임을 강조하셨다.
내가 가장 간절히 기도했던 때가 언제였는지 돌이켜보면 큰딸이 어렸을 때였다. 마음이 섬세하고 여렸던 큰아이는 초등학교에 입학하고부터 친구들의 말과 행동에 상처받기 일쑤였고, 그런 아이의 호소를 들을 때마다 나는 가슴이 찢어졌다. 당시 아이를 위해 기도하면서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라는 말씀을 많이 묵상했다. 오랫동안 아이의 마음을 대변하는 기도를 하면서 나는 세상의 마음 아픈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심리상담가의 길로 들어섰다. 본인 몸이 아파 기도하다가 시어머님이 몸 아픈 자들을 치유하는 사역을 하게 된 것처럼, 나는 내 아이의 아픈 마음을 위해 기도하다가 마음 아픈 자들을 돕는 일을 하게 되었으니 어머니의 기도가 헛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