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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용한 언니 Aug 18. 2024

달라의 교환일기 - 네 번째 2

슬픔을 보류하지 않고 눈물이 나도 그저 쓰겠습니다

Dear. 소라


답장이 많이 늦었습니다. 그사이 소라에게 미리 양해를 구하긴 했지만, 그래도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요. 사실 저는 약속을 어기는 건 좀 질색입니다. 그런데 원고 마감을 넘길 때마다 저 자신에게는 이토록 관대해질 수 있다는 것이 민망하고 우습기도 하네요. 


얼마 전 저에게는 예기치 않은 이별이 찾아왔어요. 14년 동안 함께한 반려견이 갑자기 세상을 떠났지요. 대형견이라 수명이 길지 않은 건 각오했었고, 올해 들어 아이가 소리를 잘 못 듣는다던가 움직임이 느려지고 잠이 많아지는 걸 보며 조금씩 마음의 준비는 했지만 그래도 이별이 주는 충격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매일 아침저녁 인사하고 쓰다듬던 사랑스러운 존재가 어느 날 갑자기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은 아직도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사실은 네오(반려견 이름입니다. 영화 ‘매트릭스’를 좋아해 그렇게 지었어요)가 떠났다는 걸 말하고 알리는 게 너무 힘들어 편지 쓰기를 계속 미루었어요. 네오가 그립지만 네오를 떠올리는 건 사무치게 아픈 일입니다.


마당에 덩그러니 놓인 빈집, 네오의 이름이 새겨진 목줄, 사준 지 얼마 안 되어 아직 반짝거리는 밥그릇을 볼 때마다 저는 매일 매 순간 가슴이 한 숟가락씩 파이는 것 같습니다. 저도 모르게 왜 네오가 안 보이나 궁금해하다, 아 이제 그 아이가 없구나, 다시는 볼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 숨이 멎고 다리에 힘이 풀립니다. 

네오가 갑자기 숨을 거둔 날은 장례를 치르느라 정신이 없었어요. 사람을 떠나보내는 일과 비슷하더군요. 장례식장을 알아보고, 가서 관과 유골함을 고르고, 화장하는 동안 기다리고… 그런 절차를 밟느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했죠. 마침 장례식장 한쪽엔 반려동물 납골당이 있었는데요. 강아지, 고양이, 토끼, 앵무새까지 세상에 귀여운 동물의 영혼들이 다 모여 있는 것 같았어요. 그들의 사람 가족이 애달프게 남긴 메시지와 작은 선물들을 보며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넘어 우리가 나눈 마음에 대해 생각해보기도 했습니다. 


네오는 나의 부모도 내게 주지 못한 ‘조건 없는 사랑’을 전해준 존재였습니다. 네오를 볼 때마다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 사랑을 할 수 있을까’ 신비하다고 느꼈으니까요. 하지만 네오도 나에게서 그런 사랑을 느꼈을까, 그건 모르겠습니다. 지금 이렇게 마음이 아픈 건, 상실감 때문이기도 하지만 저의 죄책감과 부채감도 크게 자리하기 때문입니다. 


장례를 치른 다음 날 저는 제가 뭘 느끼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뭘 느낀다는 것 자체가 너무 버거웠고, 내가 뭘 느껴도 되나 혼란스러웠어요. 그리고 뜬금없이 엄마가 떠올랐습니다. 엄마는 오래전 우리 가족을 떠났어요. 엄마가 떠나고 나서 저는 네오에게처럼, 상실감보다 죄책감이 크게 들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책감은 저의 슬픔을 막곤 합니다. ‘네가 슬퍼할 자격이 있어?’라고 저를 비난하면서요. 


사랑에는 돌봄의 막중한 책임이 따른다는 걸 저는 너무 늦게 안 것 같아요. 엄마가 곁에 있었을 때 제가 원하는 사랑을 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는 엄마를 자주 원망했습니다. 엄마가 저의 작은 것부터 하나하나 돌봐준 행위들이 엄마만의 사랑이었음을 알지 못했어요. 나를 돌보는 동안 엄마는 행복했을까요? 사랑을 주는 것만으로 충분했을까요? 저는 아마 이번 생에 그 답을 끝내 듣지 못할 것 같아요. 


네오를 보내고 나서 슬픔과 상실감, 죄책감과 부채감의 무게에 짓눌려 저는 계속 뭘 느끼지 않으려 노력했습니다. 그 감정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도망 다니듯 제 손과 발을 바쁘게 만들고, 다른 일에 몰두했지요. 하지만 마음이란 건 얄궂게도 내 마음대로 되는 게 아니어서, 감정이 휘몰아치는 건 어쩔 수 없었습니다. 안정을 찾고 싶을 때 동네에 있는 절에 가 네오의 명복을 빌며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하면 조금 낫습니다. 몇 번의 기도를 하고 나니 나에게 위로가 필요하다는 걸 스스로 인정하기 어려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네오의 부재를 주변에 알리지 않은 건, 누가 나를 위로하는 게 불편했기 때문이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습니다. 위로를 받아도 될까, 저는 스스로에게 그렇게까지 벽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네오가 세상에 존재했던 의미, 짧지 않은 세월 나와 주고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새기는 게 나의 의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마 소라가 얼마 전 저에게 ‘애도’에 대해 이야기해 닫혀 있던 제 마음에 변화가 일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나의 미안함으로만 남기엔 네오의 사랑이 너무 크고 아름답기에, 네오에 대한 고마움과 뭉클함, 충만함을 모두 기억하려 해요. 너무 서투르고 게을러서 못났던 저의 사랑은 네오로 인해 조금씩 자라고 더 넓은 세상의 존재들을 볼 수 있었을 겁니다. 네오가 떠나고 나서 이상하게도 우리 집 마당엔 동네 길고양이들이 들어와 놀기 시작했어요. 다시 가족을 만들 엄두는 나지 않아 제가 따로 돌보지는 않지만, 떠도는 약한 존재들에게 울타리 같은 곳이 된다는 건 좋은 일입니다. 아마 네오가 봤다면 분해서 다 내쫓았겠지만요.^^ 


자신을 그저 내준 엄마와 네오에게서 받은 사랑을 저는 세상에 대신 갚으며 살 수 있을까요? 언젠가 제가 눈물 흘릴 때 가만히 저를 핥아주던 네오의 따뜻한 숨결을 기억해요. 상실의 자리에 가만히 머물러도, 슬픔으로만 차오르지 않는다는 걸 이제 알 수 있을 것 같아요.


편지를 쓰며 덕분에 실컷 울었습니다. 

다음 편지는 슬픔을 보류하지 않고 눈물이 나도 그저 쓰겠습니다. 


막바지로 치닫는 여름날, 달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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