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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아는 여자 20화

가을에 만난 사람

흰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들던

by 조용한 언니

날이 갈수록 몸이 무거워진다. 나이 먹는 만큼 몸의 부피도 커지는 중이다. 풍성해진 몸처럼 마음도 넉넉해지면 좋으련만 결코 그런 일은 생기지 않는다. 오히려 작은 일에도 마음이 상하고 예민해진다. 내가 애정을 가지던 동네, 몇 년을 활동하던 지역에서 나와 함께 하던 젊은 작가가 다른 작가들과 그 동네 같은 주민을 대상으로 새롭게 활동 중이란 걸 우연히 알게 됐다. 순간 심장이 빨리 뛰었다. 나만 배제되고 소외되는 느낌에 마음을 쏟았던 몇 년이 훼손당하는 것 같았다. 어른스럽고 너그럽게 같은 여성이자 예술가 동료인 젊은 작가를 응원하면 좋겠지만 내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묘한 배신감과 동료로 존중받지 못한 괴로움이 오래 갔다.

마흔을 목전에 둔 여성작가들이 초초하고 불안 해 하는 걸 종종 본다. 마흔 전에 혹은 마흔 언저리에 내 작업으로 주목받고 자기 자리를 마련해야한다는 조급함이 있는 것 같았다. 이게 여성 작가만은 아닐 것이다. 자기 성장과 성취에 대한 욕망이 큰 걸 탓할 일은 아니다. 자기 현시욕을 탑재한 예술가는 더욱 그럴 것이다. 마흔을 훌쩍 넘어서도 작가로 자리 잡지 못한 나도 미래가 불안하고 막막했다. 나는 나대로 용기 내어 애쓰며 간 길인데 다음 길이 보이지 않았다. 마흔 무렵에, 그리고 쉰 살이 되어서도 그랬다. 그런 시기엔 잠시 멈추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그 일은 적더라도 돈을 버는 것과 어떻게든 그림을 그리는 것이었다. 사실 그것 말고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르기도 했다.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쳤는데 서른 후반이 되자 더 이상 사설학원에서는 나를 쓰지 않았다. 강사로 일하기엔 내 나이가 너무 많다고 원장들이 말했다. 그렇다고 전혀 다른 일은 구할 수 없어서 알음알음 알아 본 공공기관과 지자체 평생교육원의 미술 강사로 일했다. 비슷한 시기 어른들을 대상으로 내가 만든 드로잉 강좌를 열었다. 그리고 그림을 그렸다. 출판사에서 날 찾지 않고 어떤 곳에서도 내 그림과 글을 실어주지 않았지만 작업을 그만둘 수는 없었다. 나라도 내가 그리는 사람이란 걸 잊지 않기 위해 그림을 그렸다. 누가 봐준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아무도 보지 않아도 계속 그림을 그렸다. 이제 생각하니 그건 내 자존을 위해서였다. 예술가가 되지 못해도 나는 내 존재로 귀해야 하는데 세상의 눈으로 나를 판단하던 나는 아무것도 아닌 내가 불안했다. 그래서 그 불안한 마음을 자주 글로 썼다. 그러면 불안이 눅여지는 거 같았다. 그렇게 사십대를 통과하고 오십을 맞이했다. 온화하고 관대한 마음은 자라지 못한 채로 까탈 맞게 나이를 먹었다. 나이 들어 마음도 관계도 능숙해지면 좋으련만 여전히 관계는 어렵고 마음은 옹색하다. 늙으면 서운한 게 많아진다는 말은 내게도 해당되어서 내내 마음이 끌탕이었다. 그 끌탕이던 마음을 나만 보는 일기장에, 작은책에 주야장천 썼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가을이 와 있었다.

그 무렵 한 선배를 만났다. 불쑥 공연을 보러가자고 연락이 온 선배는 나와 띠 동갑이다. 그러니 선배는 몇 년 전에 환갑이 지났다. 환갑잔치 같은 건 없었다. 막연히 먼 미래인 줄 알았던 예순이 조만간 닥칠 나는 선배를 보면서 내 예순을 상상하곤 한다. 혼자 사는 선배는 제멋대로 씩씩하게 잘 살고 있는데 스스로 독거 노인네라지만 내게는 근사한 자유인이다. 얼굴을 본지 일 년이 넘은 선배는 곧 나올 첫 소설과 요즘 주로 활동하는 공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최근에 갑자기 한 이사에서 어떻게 이시비용을 보전 받았는지 두 손자가 어떻게 다른 성격을 지녔는지 어린 존재가 주는 사랑스러움에 대해 신나고 즐겁게 이야기했다. 그러다 선배는 내 근황을 물었다. 이미 내 상황들을 눈치 채고 있는 것 같았다. 선배가 자리를 깔아주니 글로 쓰지 못한 이야기도 나왔다. 선배는 내내 함께 성도 내고 흉도 봐주면서 더 떠들라고 말해 주었다. “더 말해, 풀릴 때까지 말해, 그래도 괜찮아”라고 했다. 속상하고 화가 나도 사람들은 나이를 생각하고 체면을 차리느라 말하지 못한다고 나에게 더 떠들고 글로도 쓰라고 했다. 자신의 생생한 심정을 글로 쓰는 건 더욱 좋다면서 말이다. 내가 사람은 행복하고 기쁠 때보다 고통스럽고 괴로울 때 비로소 생각하고 질문하면서 성찰도 깊어지는 거 같다고 하니 선배는 그래그래 맞는 말이야 하며 맞장구를 쳤다.


선배와 함께 본 공연은 지루하게 시작해서 재미나게 끝났다. 공연 후엔 세종문화회관 뒤편에서 담배를 맛나게 피우며 공연의 원작인 소설과 요즘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헤어졌다. 흰머리를 날리며 손을 흔들던 선배는 ‘불현 듯 이렇게 또 보자’고 하더니 뒤도 돌아보지 않고 총총 멀어졌다. 그날 선배가 내게 준 자신의 책 내지에는 ‘소라샘의 글과 그림을 좋아하는 친구’ 라고 쓰여 있었다. 선배의 책제목처럼 ‘막다른 길이다 싶으면 다시 가느다란 길이’ 나올 거 같은 가을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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