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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까 Jul 05. 2016

브라질 결혼식(2)

결혼식 풍경

결혼식에도 늦는 브라질


결혼식 당일 아침 8엄마와 나는 예약해둔 미용실로 갔다아직 미용실에는 주인만 와있고 화장을 맡은 직원은 출근도 안 한 상태였다청첩장에 적어 나간 결혼식 시작시간은 10시인데, 2시간 안에 두 사람 머리와 화장을 모두 마칠 수 있을지 걱정이 되었다.

 

머리는 며칠 전에 연습한 그 모양대로 완성이 되었고 여기에 면사포 대신 미리 준비해두었던 생화를 꽂았다그리고 화장은 따로 사진이나 샘플이 없어 메이크업 담당 사브리나에게 맡겨야 했다다른 건 몰라도 속눈썹은 꼭 붙여달라고 당부하면서이렇게 진한 화장은 해 본 적이 없으니 어색했지만 나름 만족했다하지만 내 눈이 브라질 여자들 눈이랑 달라서 그런가 속눈썹을 짧게 잘라 중간부터 붙여놔서 뭔가 불편하고 이상했다그래도 이미 다 해놨는데 어쩔 수 없지 뭐.


아직 준비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 10시가 넘었다데이빗 집에서 예식장까지 태워줄 차를 기다리고 있던 고모에게서 전화가 왔다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차가 아직 안 왔다고. "근데 고모나도 아직 미용실이야." 약속시간에 늦고 시간관념 없는 브라질인 줄은 알았지만 결혼식까지 늦게 시작하는 건가결국 나와 엄마를 예식장까지 태워다 줄 차는 10시 반이 돼서야 왔고 결혼식은 11시에 시작했다나중에 데이빗에게 얘기하니까 1시간 늦은 건 아무것도 아니란다. 시골에서는 2-3시간 늦게 시작하는 게 기본이라고...

 

 

신부가 주인공


신랑신부가족들이 먼저 식장에 도착해 하객들을 맞이하는 우리나라와 달리나는 엄마와 함께 식장에 도착한 후에도 차 안에서 입장 순서가 될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하객들이 한 둘씩 차 근처로 와서 창문으로 힐끔힐끔 구경하고 사진사가 그런 우리 모습을 찍으니 나와 엄마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영화에서 본 대로 정말 신부가 주인공인 그런 날이 시작된 것이다.


야외 결혼식이라 비가 오면 어쩌나 걱정을 많이 했다예전에 데이빗이 나에게 요리한 후 냄비 그대로 식사한 적이 있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난 보통 라면이나 떡볶이를 하면 설거지거리 만들기 싫어서 그릇에 덜지 않고 그대로 먹곤 한다그런데 신부가 냄비에 밥을 먹으면 결혼식 날 비가 온다는 속설이 있단다그래서 산드라 결혼식 때도 비가 엄청 많이 왔었다고 했다하지만 이런 우려와 달리 내 결혼식에는 구름 한 점 없는 맑고 더운 날씨였다. (사실 작년부터 이 지역에 비가 많이 안 와서 문제였다고 한다. 다행히 결혼식 후 며칠 동안 조금씩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입장 순서 첫 번째는 들러리 친구들우리는 총 4 커플을 정했다그리고 데이빗 아버지와 우리 엄마, 데이빗과 어머니마지막으로 내가 아빠와 함께 들어갔다이렇게 예쁘게 꾸민 모습을 아빠한테 보여드린 적이 없는데, 그래서 그런지 차에서 내린 날 처음 보신 아빠도 좀 놀라신 듯했다.


성당 결혼식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례는 어떻게 하나 궁금했는데 데이빗이 어렸을 때부터 옆집에 살았던 목사님에게 부탁했단다데이빗과 난 가톨릭 신자인데 교회 목사님이 집전하시는 예배 같은 결혼식이 되는 건 아닌가 처음엔 좀 부정적이었다하지만 이런 나의 우려와는 달리 좋은 말씀으로 결혼식을 이끌어 주셨다.

 


반지 교환의 시간


신랑신부 결혼반지는 어린이들이 버진로드를 따라 갖고 들어오는데 우리는 데이빗의 10살 된 조카 베르나르도가 그 역할을 했다미용실에서 반지를 담을 상자를 빌렸는데 그 종류도 참 다양했다남자아이이니 보통 남자가 여자에게 꽃을 선물하듯 꽃 모양의 반지 통을 선택했다.

 

성당이었다면 신부님이 성수를 뿌려 축성을 했겠지만, 우리는 성경 위에 반지를 올려놓고 목사님의 말씀을 들었다. 그리고 서로를 남편, 아내로 맞이한다는 선서를 한 후 반지를 껴주었는데, 내가 손에 땀이 많다 보니 잘 안 들어가서 결국 내가 직접 끼게 되었다.


난 내 결혼반지도 이 순간에 처음 봤다몇 달 전부터 데이빗이 내 손가락 치수를 물어봤고, 동네 금은방에서 잰 숫자를 알려줬는데도 못 미더운지 내가 갖고 있는 반지도 보내달라고 했었다그렇게 어떤 디자인의 반지를 선택했을까 궁금했는데 내 기대와는 달리 아무 모양 없는 금가락지였다하지만 나중에 보니 반지 안쪽에 작은 루비와 서로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브라질에서는 결혼반지에 보석을 앞으로 보이게 넣지 않는단다.

 

다음은 신랑 신부 부모님과 들러리가 한 명씩 나와 혼인서약서에 증인으로서 사인을 하고 마지막 기도로 결혼식이 끝났다. 퇴장은 입장 때와 같이 들러리 커플과 부모님이 나가신 후 신랑 신부가 퇴장을 한다신랑 신부가 나올 때 꽃가루나 폭죽을 터뜨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브라질에서는 축복의 의미로 쌀을 던진다머리에 걸린 쌀 털어내느라 애 좀 썼네.



피로연과 감사인사


결혼식 후 피로연장에 모든 하객들이 자리를 잡을 때까지 신랑 신부는 대기실에서 잠시 쉬는 시간을 갖는다계속 서있었더니 다리도 아프고목마르니 입은 바짝바짝 타는 바람에 웃는 표정을 지어도 다 썩소가 되었다.

 

케이크와 간식으로 장식된 피로연장 앞 무대에 서서 우리는 미리 준비해 간 감사 말씀을 읽었다데이빗이 쓴 건 미리 한국어로 번역해서 엄마아빠고모고모부 자리에 올려두었고나는 포어와 한국어 둘 다 준비해서 읽었다이미 몇 주전부터 쓰고 고치기를 반복한 글인데도 낳아주고 길러주신 부모님에 대한 감사를 전할 때는 눈물이 나오는걸 멈출 수 없었다앞에서 부모님이 눈물 닦으시는 걸 보니 더 울컥했고그곳에 있던 모두가 감동과 행복의 눈물을 흘렸다.


데이빗 어머니를 시작으로 누나친구들이 돌아가면서 마이크를 잡고 우리를 축하해주었다그 모든 얘기를 부모님을 위해 한국어로 통역할 시간을 갖지 못했던 게 아쉽다엄마아빠도 한마디 하시고 싶어 했을 수도 있는데 이 부분을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포토타임


이제 하객들은 준비된 음식으로 점심식사를 시작하고 우리는 그 자리에서 하객들과 그룹별로 사진을 찍었다우리나라와 달리 부모님가족친척회사 친구, 동네 친구, 등등 아는 사람끼리 나와서 축하한다는 인사를 나누고 사진을 찍으니 나중에 추억하기도 더 좋은 것 같다하지만 데이빗과 나는 밥도 못 먹고 40분가량을 계속 서서 포즈를 잡아야 했다.


모든 하객들과의 사진 촬영이 끝나고 사진사와 함께 식사를 한 후 우리는 따로 나가 웨딩촬영을 했다이 펜션 안에 다양한 꽃나무들이 많아 야외 촬영을 하기에 적합했다사진사 말에 따라 웃고 뽀뽀하고 포즈 잡고 하려니 힘들지만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부케 쟁탈전


마지막으로 부케를 던지는 시간부케 받을 사람 한 명을 미리 정해서 던지는 우리나라와 달리 브라질은 신부가 부케를 던지면 그걸 받는 사람이 임자란다난 내 친구 에미에게 부케를 주고 싶었다그래서 예전부터 에미에게 잘 잡으라고 얘기해두었고 이 날도 일부러 에미가 서있는 곳으로 던졌다그런데 에미 앞에 있던 사람이 부케를 쳐서 땅으로 떨어뜨렸고결국 14살짜리 데이빗 사촌이 가져갔다. 부케 받고서 6개월 안에 결혼 못하면 평생 결혼 못한다는 우리나라 이야기를 해줬어야 했는데. 



브라질이 워낙 땅덩어리가 크니 결혼식을 위해 주말을 비워 몇 시간씩 여행해서 오는 게 기본이고하필 또 구아쑤이라는 시골 동네까지 와야 하니 신랑신부뿐만 아니라 하객들 모두 결혼식 하루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했다그리고 방문해준 손님들에게 선물 받는 재미도 쏠쏠했다이불수건그릇 등 다들 비슷한 선물을 주었지만내용을 떠나 직접 물건을 고르고 포장까지 해서 가져다주는 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다.

  

이렇게 결혼식은 끝났다먼저 결혼한 친구 조언대로 떨지 않고 순간순간을 즐겼는데 (사실 난 결혼식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몰랐으니 마냥 설레고 즐겁기만 했다이걸 다 준비한 데이빗과 산드라가 많이 떨었을 거다계획한 대로 잘 진행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도 많이 했을 테고), 그 순간들이 너무 빨리 휙 지나가버린 느낌이다그 시간이 아쉬워 자기 전까지 머리랑 화장도 안 지우고 있었다이래서 브라질 사람들이 파티를 즐기고 결혼식을 그렇게 성대하게 밤을 새워가면서 하는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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