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요일, 레코드샵에서
서울의 한 레코드샵.
바이닐이 새로 들어오는 수요일이면 서울에서 활동하는 디제이들이 가득 모여든다. 하필 이럴 때 디깅하러 왔다가 벌써 몇십 분째 턴테이블 앞에서 청음 대기 중이다. 그들은 정말 공격적으로 디깅을 하고 공격적으로 청음을 한다. 내가 훨씬 먼저 와서 기다렸는데 (나만) 익히 얼굴을 아는 디제이가 먼저 청음을 시작한다. 내가 기다리고 있는지조차 몰랐던 것 같다. 왠지 그 기에 눌려 내가 빠져줘야 할 것만 같은 기분이 든다. 왜일까. 그들은 클럽에서 주기적으로 음악을 틀고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주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나는 그들보다 열정이 작아서?
아니, 나는 본업이 디제이가 아니니까?
늘 어딘가에 완전히 소속되지 못하고 주변을 맴도는 경계인의 삶을 살아왔다. 어렸을 땐 공부 잘하는 친구들과 완전히 어울리는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노는 친구들하고 어울려 다니는 것도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심화반'이라고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만 모아놓은 반에 소속되어 있긴 했으나, 늘 성적이 심화반에 간신히 붙어있을 수준이라 일반반도 심화반도 아닌 기분이었다. 대학교 때는 늦은 나이에 전과를 해서 이쪽 학과에도 저쪽 학과에도 소속감이라고는 딱히 없었다. 또, 대학교 방송국에서 활동하긴 했으나 언론고시반은 아니었다. 한마디로 애매한 인간이었다.
그런 애매한 삶은 사회에 나와서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재 회사에 다니면서 글을 쓰고 디제잉을 하긴 하지만, 나는 기획자도, 작가도, 디제이도 아닌 것 같다. 그 어느 쪽에도 완전한 소속감을 느끼지 못한다. 늘 경계를 맴돌며 원 안의 사람들을 힐끔거리고 있다. 옛날에 종로에서 사주를 봤을 때 내 사주에 외로울 '독'자가 크게 써져 있다더니 정말 그런 건가. 이런 내 마음속 깊은 곳에는 어딘가에 완전히 소속되고 싶다는 마음이 크게 자리하고 있지만 그럴 운명은 못 되는 것 같다.
억지로 커피를 마시며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청음을 끝내고 바이닐 몇 장을 집어 들고 레코드샵을 빠져나온다. 좋은 판을 건진 것 같아 기분은 좋지만 경계인이라는 꼬리표가 계속 나를 따라오는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이건 좋은 걸까. 나쁜 걸까.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걸까. 받아들이기 나름인 걸까. 잘 모르겠다.
“자기가 디제이라고 생각하면 그때부터 디제이지.”
며칠 뒤 가까운 친구에게 경계인의 삶에 대한 고충을 털어놓으니 친구는 이렇게 말했다. 친구는 미술 쪽에서 활동하는 작가다. 친구는 어떤 직업은 언제부터 되는 게 아니라 본인이 그렇게 생각할 때부터 되는 거라고 했다. 본인 스스로를 그렇게 안 봐주면 누가 그렇게 봐주겠냐고, 그럼 도대체 언제 디제이가 되겠냐고 했다. 듣고 보니 맞는 말이었다. 명확한 기준은 없었다. 고시를 봐서 디제이가 되는 것도 아니고…. 내가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규정짓고 어디에도 속하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런 내 무의식 중에는 디제이나 작가를 전업으로 하시는 분들보다 내가 시간을 그쪽 분야에 훨씬 덜 할애한다는 양심의 가책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미 다양한 직업을 가진 수많은 사람들이 존재한다. 몇 년 전부터 'N잡러'라는 명칭이 유행하듯 본업과 부업 사이의 경계는 이미 희미하며, 마찬가지로 시간을 얼마나 할애하느냐에 따라 직업의 여부를 무 자르듯 판단할 수 없다. 만약 내가 작가로 성공하고 싶어서 하루 8시간을 회사에서 일하고 4시간 글을 쓴다고 하면 나는 회사원일까, 작가일까? 알 수 없다.
그럼 수입으로 직업을 따질 수 있을까? 나는 지금 회사에서 받는 월급이 수입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데, 작가와 디제이가 되려면 어느 정도 수익이 나야 하는 걸까? 만약 내가 디제이로서 갑자기 많은 무대에 서게 돼서 디제이 수입이 월급을 넘어선다면 그때는 나의 직업이 바뀌는 것일까? 그럼 '어머, 제가 저번 달에는 기획자였는데요, 이번 달에는 DJ입니다.' 하게 되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책은 한 세 권쯤 내고, 어느 클럽의 레지던트 디제이쯤 되면 나를 당당하게 작가나 디제이라고 소개할 수 있을까? 이 기준 또한 사람에 따라 천차만별일 것이다. 그 기준이 확실히 정해져 있지 않다면, 세상이 정하도록 놔두지 않고 내가 정하는 게 낫겠다. 그러니까 어떤 직업은 내가 그렇게 생각할 때부터 가질 수 있다. 남들의 인정과는 별개다.
확실한 건 요즘은 한 우물만 판 뛰어난 전문가만이 인정받는 세상이 아니라는 것이다. 나보다 조금 앞서 있는 누군가의 능력에 대한 수요가 항상 있고, 그걸 직업으로서 존중해 주는 분위기이기 때문에 수많은 'N잡러'들이 생겨나고 있다. 다만, 나보다 각자의 분야에 물리적 시간을 훨씬 많이 할애하여 음악적, 문학적 깊이가 있는 분들과 나 사이의 차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으면 된다.
생각해 보니 직업의 문제뿐만이 아니다. 나는 스스로를 봐주는데 참으로 박했다. 예쁘지도 않고 못나고 뚱뚱하고, 남들보다 특별히 가진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나조차 스스로를 이렇게 바라보는데 누가 나를 귀중하게 생각하거나 어여삐 여겨줄까. 괜히 분한 마음이 들어 거울을 앞에 두고 한 코미디언처럼 이 정도면 꽤 괜찮지 않나? 생각해 본다. 여러 분야에 관심이 많아 고생이 많다고 스스로 어깨를 두드려 본다. 으쌰. 그럼 조금 더 당당하게 어깨를 펴볼까. 오늘은 귀에 에어팟을 꽂고 런웨이를 걷듯 동네 산책을 해야겠다.
그러니까 이제는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기획자이자 작가이자 디제이다.
*커버 이미지: Unsplash의 Sean Bene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