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raya Mar 24. 2020

[#하루한줄] 사는 게 힘드냐고 니체가 물었다.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 

뭐, 사는 게 힘들진 않다. 그렇지만 뭔가 또 고민스러운 점들이 몇 가지 생겼고, 아무 일도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이제 다시 고민해야 하는 시기라는 생각에 그냥 끌리는 책을 읽는다. 니체는 몇 번이나 읽어보려고 노력하고 종이 책도 사서 침대맡에 두고 있기는 하지만, 잘 안 읽힌다. 그런데 박찬국 교수님은 니체를 정말 쉽게 설명해주신다. 출퇴근 지하철에서 아-주 몰입하여 읽을 수 있었던 쉬운 철학서.


인생은 욕망과 권태 사이를 오가는 시계추와 같다. (...) 
쇼펜하우어는 설령 사후 세계가 있다고 해도 우리는 그곳에서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모든 욕망이 충족된 천국에서는 권태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것이고, 지옥에서는 온갖 결핍으로 인해 고통에 시달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회사를 정리하고 쉰 지 겨우 일주일이 넘었다. 그런데 슬슬 지겹다. 권태가 오는 것 같다. 별일이 없는 것이 참 좋으면서도, 오히려 그렇기에 작은 뉴스 하나에 화를 내는 내 모습이 보인다. 사실 일을 할 때는 너무나 크고 많은 문제들에 둘러싸여 나와 먼 뉴스들은 인지조차 하지 못하고 지나갔으니까. 


낙타는 황량하기 그지없는 사막에서 무거운 짐을 지고 아무런 불만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 나아가는 동물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낙타는 인내와 순종의 대명사라 할 수 있습니다. 니체가 말하는 낙타의 정신은 사회의 가치와 규범을 절대적인 진리로 알면서 무조건적으로 복종하는 정신을 뜻합니다. (...) 니체는 '사자의 정신은 기존의 가치를 파괴하지만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지는 못한다'라고 이야기했지요. 기존의 가치와 의미가 붕괴된 자리에 남아 있는 가치와 의미의 공백 사이는 정말이지 견딜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 아이처럼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 말은 곧 인생을 유희처럼 사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어떤 재미있는 놀이에 빠져 있을 때 우리는 '왜 이 놀이를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제기하지 않습니다. 그냥 그 놀이가 재미있어서 놀뿐이지요. 그렇다면 우리는 어떤 순간에 '왜 이 놀이를 해야 하지?'라며 놀이의 의미를 묻게 될까요? 그것은 바로 놀이의 재미가 사라졌는데도 계속해서 그 놀이를 해야 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어디쯤일까? 여행을 할 때도 똑같다. 여행을 여행 자체로 즐기지 못하고, 여행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는 순간 그 여행의 재미가 사라져 버린다. 의미를 부여하면 안 된다. 그 자체로 몰입해야 한다. 그렇담 내가 그렇게 몰입할 수 있는 일이 얼마나 있을까? 게다가 미디어와 SNS를 비롯한 각종 방해 요소들이 더 크게 느껴지면서 몰입하기가 점점 힘들어지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나는 사자에서 아이로 넘어가는 그 다리를 건너고 싶은데, 그 다리를 건너지 못하고 쳐다만 보고 있는 바보같은 상태인 것 같다. 

어느 날 혹은 어느 밤, 한 악마가 가장 적적한 고독 속에 잠겨 있는 너의 뒤로 슬그머니 다가와 이렇게 말한다면 너는 어떻게 말할 것인가? "네가 현재 살고 있고 지금까지 살아왔던 생을 다시 한번, 나아가 수없이 몇 번이고 되살아야 한다. 거기에는 무엇 하나 새로운 것은 없을 것이다. 일체의 고통과 기쁨, 일체의 사념과 탄식, 너의 생애의 크고 작은 모든 일이 다시 되풀이되어야만 한다. 모든 것이 동일한 순서로 말이다. 이 거미도 나무들 사이로 비치는 달빛도, 지금의 이 순간까지도. 그리고 나 자신도. 존재의 영원한 모래시계는 언제까지나 다시 회전하며 그것과 함께 미세한 모래알에 불과한 너 자신 역시 회전할 것이다." (...) 이러한 사상이 너를 지배하게 된다면 그것은 현재의 너를 변화시킬 것이고, 아마 분쇄해버릴 것이다. 그리고 모든 일 하나하나에 가해지는 "너는 이것이 다시 한번 또는 수없이 계속 반복되기를 원하느냐?"라는 질문은 가장 무거운 무게로 너의 행위 위에 놓이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의 삶을 다시 살라고 한다면, 나는 흔쾌히 그래도 좋다고 얘기할 것 같다. 나름대로 내 인생은 재미있고 다이내믹했었다. 지금은? 안정을 추구해야 할 때가 오지 않았나,라고 자문하는 중이다. 그런데 또다시 이 책을 읽고 보니.. 고민은 제자리로 돌아간다. 인생의 의미 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좋게말해) 재미난 인생을 살고 싶다면?  


우리가 이렇게 남의 평가에 민감한 것은 우리 안에 존재하는 노예근성 때문이라고 니체는 말합니다. 고대 노예제 사회에서 노예는 자기 자신을 주체적으로 평가하지 못했습니다. 노예를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주인 뿐이기 때문입니다. (...) 남의 시선과 평가에 연연할 때 우리는 자신을 노예의 지위로 하락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 니체는 '자기 자신이 된다는 것'은 각자가 자신의 타고난 성질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하나의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성격에 스타일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위대하고 희귀한 예술이라고도 이야기합니다. 


결국 시지프스로 돌아간다. 우리는 무거운 바위를 저 산 위로 올려야 한다. 하지만 산 꼭대기에 오르면 이 바위는 다시 아래로 떨어질 것이다. 우리는 모두 그 사실을 안다. 그런 인생에 의미가 있을까? 없다. 우리는 그저 조금씩 다른 방식으로 바위를 올리고, 그 바위가 굴러내려 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다. 그러니까 나는 이 의미 없는 바위 나르기를, 아름다운 한 편의 영화처럼 나의 스타일로 해내는 수밖에 없다. 



https://coupa.ng/bvCESc

#작은습관이꿈을만든다고믿는다

#좋은마음은널리퍼진다고믿는다

매거진의 이전글 [#하루한줄] 페스트 - 알베르 까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