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를 마감해도 결코 이르지 않을 시간에
냄비를 챙긴다.
물을 끓이고, 라면을 넣는다.
"엄마빠는 열0면, 너희들은 스0면"
매운맛의 차이는 있지만, 라면은 라면.
"적어도 소화는 시키고 자자!"
"그러려면 영화 한 편은 봐야겠지?"
"밥 말아먹을 사람?"
아파트라면 상상도 못 할
쩌렁쩌렁한 울림을 내며
눈 내리는 한밤중,
어르신들 일찌감치 잠자리에 드신 시골마을에
불 꺼지지 않는 집이, 우리 집이다.
라면은 참 맛있고,
길티(guilty)가 느껴지지만
만사를 제쳐두고서라도 먹는 재미가 있다.
밤에 아이들과 함께 먹는 라면은
소리까지 참 맛있고,
길티(guilty)가 느껴지지만
오밤중에 느껴지는 이 동질감에 대해선
죄를 논하지 않기로 했다.
한밤 중의 라면 만찬.
부모 자식 간의 그 친근한 수다와
다음 날의 늦잠까지
소중하고 소중하다.
가족이 비로소 식구(食口)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