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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빛나라 오드리 Jun 28. 2021

엄마 가슴은 헌 가슴이야

  학창 시절 주말이면 꼭 해야 하는 행사가 있었다. 

바로 엄마와 목욕탕 가기!

엄마는 토요일 새벽이면 꼭 나를 이끌고 동네 목욕탕을 가셨는데 이제 클 만큼 커서 엄마보다도 훨씬 큰 내 등짝을 연신 밀어주셨다. 내가 엄마 등을 한 번 밀면 엄마는 얼른 비누칠을 하라며 내 손에 비누를 쥐어주시고 

  "이제 됐어. 엄마가 다 밀었어. "

 하시며 공부하는 딸내미 힘들까 봐 몸을 금세 일으키셨다.

하지만 자리를 바꿔 내가 엎드리면 엄마는 등만 미는 게 아니라 팔뚝이며 허벅지도 밀어주셨다.

  "엄마, 내가 다 밀어서 안 나온다니까~ 아파!!" 하면서 몸을 배배 꼬면 그제야 손을 털고 

  "이제 됐다!" 쓱쓱 비누칠로 마무리를 하셨다.


  나는 중고등학교 내내 맨 뒤에 앉아서 수업을 들었고 여자라고 하기에는 절대 작고 가냘픈 외모가 아니었다.

키도 크고 게다가 어깨도 제법 넓었다. 부모님 두 분 다 훤칠한 키에 체격도 있으셨으니 타고난 체격은 바꿀 수도 없었다. 학창 시절 가녀린 몸에 손도 작은 여자 친구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는데 아무리 운동을 하고 다이어트를 해도 내 몸은 결코 작고 왜소해지지 않았다. 어른들이 딱 좋아하는 복덩이! 그게 나였다. 


  그날도 어김없이 엄마 성화에 이끌려 졸린 눈을 다 뜨지 못하고 목욕탕으로 끌려갔다. 고3 수험생이라고 그냥 봐주지 않는 엄마가 어찌나 원망스러운지... 그래도 엄마와 함께 할 수 있는 유일한 시간이니 뭐 속는 셈 치고 따라가기도 했던 것 같다. 부모님이 내게 물려주신 아주 많은 장점들 중에 외모적으로 받은 보석은 단연코 하얀 피부였다. 대학교 다닐 때 색색으로 머리를 물들이고 다녔는데 언젠가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나를 보고 외국인인 줄 알았다며 하얀 피부를 부러워했다. 내가 가진 건 소중한 줄 모르고 산이며 들로 열심히 다닌 덕에 지금은 기미와 주근깨로 뒤덮였지만 그래도 아직까지는 피부과 한 번 안 가고 비싼 화장품으로 관리도 안 하고 있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가슴이다. 엄마는 아직도 가슴이 정말 예쁘다. 아직까지도 코르셋을 벗지 않으실 정도로 몸매 관리를 하고 계시는데 60대 후반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외모와 몸매의 소유자다. 


  한 번은 중학교 때 엄마가 학교에 들르신 적이 있다. 전학 오고 얼마 안 있어서 무슨 일 때문에 오셨는데... 그날 역사 선생님이 오셔서 

"넌 누구 닮았니? 엄마는 너랑 정말 다르시던데?" 

 하시며 나를 완전 면박을 주신 일이 있었다. 작은 얼굴에 큰 눈, 오뚝한 코 서구적인 엄마와 달리 난 아빠를 쏙 빼닮아서 여자로서 불만이 아주 많았다. 엄마가 가진 볼륨 있는 몸매에 적당히 큰 키와 큰 눈은 정말 매력적이다. 하다못해 내가 첫 딸을 낳았을 때 아이가 유난히 눈이 크고 머리숱이 많았는데 외할머니 닮아서 예쁘다는 소리를 들었으니 내가 분하다는 생각을 하는 것도 억지는 아닐 것이다. 


  목욕탕에서 적당히 때를 불려 그때를 미느라 기운을 다 써버리고 나와 옷을 입는데 한쪽에서 옷을 입고 계시던 할머니 세 분이 엄마와 나를 쓱 훑어보시더니 

  "아이고 엄마 닮아서 가슴도 예쁘네~" 하셨다. 나는 얼굴이 금세 붉어졌고 엄마는 한 마디 대꾸도 없이 서둘러 옷을 입으셨다. 엄마는 그렇게 나긋나긋한 성격은 아니셨던 걸로~ 엄마는 목욕탕을 나와 참 관심도 많다며 불평을 하셨고 난 그다지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아마 엄마는 그런 소리를 꽤나 들으셨나 보다. 예쁜 가슴 덕에 나는 맵시 나는 옷을 입을 수 있었고 두 아이를 15개월까지 넉넉히 모유수유를 할 수 있었다. 어렸을 때는 봉긋하고 예뻤겠지만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고 나니 이제는 예쁜 가슴은 어디로 가고 곧 있으면 할머니가 될 듯한 모양새를 띠고 있다. 


  오랜만에 시간이 나서 큰 아이와 마주 앉아 보드게임도 하고 함께 책을 읽는데 아이가 갑자기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나도 한참을 책에 빠져있다가 너무 놀라

   "엄마 가슴 새가슴이야~ 놀랬잖아!" 했더니 큰 딸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엄마 가슴은 이제 헌 가슴이야. 우리가 쭈쭈 먹었잖아~" 이러면서 배꼽을 잡고 웃는 거다. 요 녀석!!!  그래 헌 가슴이면 어떻고 새가슴이면 어떠랴. 스스로를 부끄럽다고 여기지 않았고 늘 자신감 있는 모습으로 당차게 살아왔다. 하물며 그 가슴 좀 헌 가슴 됐다고 기죽을 나도 아니다. 어디 두고 보자~ 네 가슴은 헌 가슴 안되는지! 오랜만에 아주 달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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