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로 상경한 지 3주 차 해피는 완벽한 적응을 보였다. 시고르자부종답게 할머니가 가져온 맨드라미를 잘근잘근 씹고 끌고 다니는 시골강아지스러움을 보여줬고 텃밭에서 거름 삼아 사과껍질 흑마늘을 버려두면 주둥이로 쿡쿡 헤쳐놓는 잔망스러움을 보였다. 옛날에 친정엄마라면 궁둥이 팡팡 날렸을 텐데 엄마도 늙으셨는지 강아지 재롱으로 놀게 그냥 두셨다.
해피는 사람을 좋아한다. 아침저녁으로 카페에 있을 때면 오는 사람마다 좋아서 꼬리를 흔들고 오줌 싸는 세리머니를 보여줘서 난감할 때가 있다. 죄송하다고 하니까 애견인들은 아기 때나 보이는 행동이라고 지나면 괜찮다 불쾌해하지 않고 오히려 너 나 좋아하는구나 좋게 봐주셨다.
가을바람이 살랑살랑 산책 나가는 개들이 행복한 미소를 보인다. 요즘은 목줄이 아니라 하네스라고 가슴을 감싸는 줄을 사용하는구나 세상이 좋아졌다. 옛날엔 목줄 하면 철물점에서 파는 다홍색에 줄이 하나 들어간 튼튼이들 뿐이었는데 예쁜 줄이 많아져 구매욕을 부른다.
해피도 나가볼까 하네스에 몸을 맡기고 처음으로 바깥 외출을 나간다. 1층과 2층을 오가며 자유로운 영혼처럼 다녔는데 큰 바깥세상은 어떤 느낌으로 다가오는지 물어보고 싶다. 사람 걸음으로 겨우 세발자국 나왔을 뿐 해피 눈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새로운 냄새로 킁킁거리기 바빴다. 오며 가며 강아지들이 전봇대에 오줌을 싸는 곳이라 한참을 냄새 맡는 해피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새어 나왔다.
상상했던 산책은 횡단보도에서 주인 옆 착 달라붙어 신호를 기다리는 얌전한 강아지를 기대했었다. 항상 보아오던 모습이라 해피도 그럴 거라 믿었다. 시끄러운 자동차와 여러 가지 소음으로 한 발도 움직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궁둥이 쭉 빼고 산책 따위 하고 싶지 않다고 버둥거리는 모습은 조금 전 호기심 많은 모습은 없고 3분 카레만큼 쉽게 데워졌다 식어버렸다.
다시 한발 내딛고 가보려는 찰나 이승복 어린이처럼 "나는 산책이 싫었어요"를 실천한다. 온몸으로 바둥바둥 버티고 있고 자동차 속 시선이 나에게 쏠린다. 번쩍 들어 올린 해피를 옆구리에 끼자 심장박동이 들려온다 두근두근 터지겠다. 처음 나온 길이 소심한 해피에겐 행복이 아니었다. 그럴 수 있지 산책을 다 좋아하는 건 아니야 이왕 나왔으니 가을은 보여주고 싶어서 공원으로 향했다.
오 가을 스멜~
냄새와 흙을 좋아하는 가을 강아지 킁킁
한참을 코를 박고냄새 삼매경이다. 새로운 곳을 다니는 것보다 폭신한 낙엽과 무엇보다 수백 가지 냄새가 공존하는 땅을 사랑했다. 20분이 넘도록 한자리서 냄새만 맡고 있는 해피를 보고 있자니 웃음이 절로 나온다. 다른 애견인들은 트랙을 같이 돌면서 걷기를 하는데 후리 한 영혼의 해피는 땅강아지 놀이 중이다. 지나가는 강아지에 관심은 1도 없고 오로지 땅과 하나 되었다.
당신도 날 사랑하는군요
같이 자빠져 볼까요?
러닝을 뛰던 건강한 여자분이 다가와 우리 집에 있는 강아지랑 같은 거 같다며 레트리버 새끼냐고 물어보셨다. 레트리버?? 전혀 아닌데 그렇게도 보이나 싶어 당황스러웠다. 뭐라고 설명을 해야 하나 똥개? 잡종? 한국개? 믹스견이랑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쿨하게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잡종인데요. 뭔가 말하고 해피에게 미안함이 밀려온 건 뭘까 사실 잡종(섞여있는)이 맞으니까 부끄럽지는 않았는데 어감이 잡종이라니 집에 와서 네이버를 찾아보니 혼혈도 쓰이는 거 같아 다음엔 한국개혼혈이라고 말하려다 입에 안 감긴다. 그냥 귀염 있게 시고르자브종이라고 해야겠다.
자신에게 개 냄새가 나서 거부감이 없나 보다 말하는 찰나 배까지 뒤집어 반가움을 표시해 준다. 야! 해피 너무하네 처음 본 사람에게 배까지 뒤집고 반짝반짝 거리는 눈빛을 발사하다니 사람 홀리는 재주를 가지고 있었다. 레트리버 견주는 자기도 버림받아 안락사 직전에 데리고 온 개를 키운다고 해피가 이렇게 하는 건 사람에게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런 거라고 너 참 좋겠다 건강하게 자라야 한다고 덕담까지 해주시며 한참을 놀아주고 가셨다.
혹시나 싸움이 날까 봐 공원 안쪽에 자리 잡고 있었는데 지나가는 강아지들이 들이댄다. 해피가 어리기도 하고 논쟁을 싫어해서 가까이 가지 않는데 일부러 냄새를 맡게 데리고 오는 견주들이 부담스러웠다. 강아지들 사회성보다 물고 뜯기는 상황을 티브이로 많이 봤던지라 시시비비를 가리고 싶지 않은 내 마음과 달리 자꾸 붙이는 애견인들이 부담스럽다. 호기롭게 막상 다가온 강아지들은 오히려 피하고 해피는 킁킁 냄새다. 겨우 안도한 마음은 볼멘소리가 나온다. 파워풀하게 달려들더니 와서는 쫄보 눈빛으로 눈치 보는 건 왜 그런 거니? 시고르자부종 부심 혼잣말이 나온다.
고속도로 휴게소 가판대 판매점에서 왈왈거리는 인형미모 여기서 한 장 남기고 한 바퀴 더 돌자!! 사진 속 해피는 장난감 강아지 같아서 매일 봐도 질리지가 않는다.
산책을 마무리할 때쯤 돌아서 보니 해피가 있는 자리에 아주 큰 개가 어슬렁 다가오고 있었다. 다행스럽게 해피를 발견하지 못해서 달려들지 않았는데 덩치가 사람만 하고 목줄도 없는 모습에 무서웠다. 갑작스럽게 등장한 개로 인해서 해피를 물면 구하기는커녕 내 몸하나 건사하지 못하겠다 싶은 마음과 동시에 연민이 밀려왔다. 목줄도 없고 이름표 없는 너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 밥은 먹고 다니는지 정처 없이 떠도는 너는 신고가 되어 유기견 센터로 갈 거 같았다. 사랑으로 키워지다 버림받거나 잃어버리는 강아지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안타깝다. 해피와 첫 데이트는 달콤함 보다는 아찔함을 남기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