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르는 번호가 핸드폰에 깜박인다. 받을까 말까 3초 망설이다 통화버튼을 클릭했다.
안녕하세요. 선생님 잘 지내셨어요? 서부지점입니다. 저번에 주신 이력서 봤는데 시험은 잘 보셨나요? 시간 되시면 다음 주에 센터장님 면접 겸 OT가 있으니 편한 날짜에 센터 방문해 주세요.
잊고 있었는데 순간 멍해졌다. 올봄 독서지도사 신청을 했고 두 번째 시험을 보고 대기 중에 전화가 올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먼저 연락이 왔다. 무슨 용기가 생겼는지 단박에 알겠다고 대답을 하고 떨기 시작했다. 얼마 만에 면접인지 기억이 안 난다. 대학졸업하고 빠른 진로 포기로 20대 초반 면접과 동시에 건설회사에 들어가서 10년을 채우고 그만둔 뒤로 면접을 본 적도 없었다. 이력서에 뭘 채워 넣을까 한참을 망설이면서 한 줄 한 줄 채워나갔고 쓰면서 변변한 게 없구나 초라함도 같이 봉투 속에 넣어 드렸던 게 떠오르자 자신 있게 간다고 한 말을 되돌리고 싶었다.
2주째 감기에 걸려서 코맹맹이 소리와 그간에 시험과 과제로 입술에 물집까지 생겼고 경력에 외모까지 마이너스 느낌이 물신 난다. 보이는 건 눈이라 눈화장을 힘주어 쓰윽 그리고 초롱초롱함을 더했다. 입술에 립스틱을 바르면서 어차피 마스크 쓸 텐데 웃겨 뭐 하는가 싶다가도 혹시 차를 내어 주면 마스크 틈으로 보이는 모습에 조금 신경 써서 나왔노라 보이고 싶었다.
면접의 기본은 늦지 않게 도착함이다. 시작은 순조롭게 대화로 이어졌고 이력서를 쓱 꺼내서 보시는 센터장님 손길에 이어 눈이 머무는 시간이 짧다. 그도 그럴 것이 대학 졸업하고 쭉 건설회사만 10년 붙박이장처럼 다녔으니 근면함은 딱 애 낳기 전 거기서 멈췄고 카페사장은 이력으로 넣지도 않았다. 사람상대야 말해 뭐 하겠냐만 독서랑 카페랑 전혀 상관관계를 알아줄 리 없어서 빼버렸더니 더 휑하다.
뭐 해보셨나요?
첫 펀치가 너무 강하다. 이제 와서 카페운영이라고 말하는 것도 웃기고 독서지도랑 뭐가 연관이 되나. 뭐 해봤냐고 물어봤는지 뭘 잘하냐고 물어보신 건지 정신이 혼미하다. 뭐라고 말하지 아무 생각이 떠오르지 않는다. 에라 모르겠다. 브런치에 에세이 일주일에 1편씩 써요.
아. 네...
이건 아닌가 보다. 말투가 별로네. 그럼 그렇지 적당한 대화가 오고 가고 마지막으로 지인이 독서지도 해달라고 했는데 자신이 없어서 저학년은 하는데 고학년은 못 해준다고 했어요. (꾸준한 글쓰기와 책 읽기 덕에 지인이 저를 알아봤어요란 자랑이 하고 싶었나. 어리석다 정말)
선생님! 자신 없어 보이는걸 남에게 말하면 안 됩니다. 일단 못 하겠어도 내가 준비를 좀 더 해서 한다고 하셔야지 그런 모습은 마이너스입니다. 호대게 정신교육을 받았다. 당장 내가 투입한다고 안 했는데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지 모르겠고 빨리 이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았다.
앞으로 선생님으로서 자리 잡게 되시려면 가정일 다 끝나고 11시부터 공부하시고 다음날 수업 하시게 되면 힘들어요. 체력을 기르셔야 합니다. 운동 1개는 반드시 하셔야 해요. 그래야 꾸준히 오래 하실 수 있어요. 운동 뭐 좋아하실만한 거 있으세요? 갑자기 운동으로 대화가 이어질 거라 생각을 못했다.
앞에서 혼줄이 나서 조용하게 새벽수영 8개월 되었다는 말이 조심스러웠다. 그런데 지금은 감기라서 쉬고 있어요. 평영 나가서 이제 조금만 더 하면 완성인데 내년 봄이나 다시 시작하려고요. 감기가 안 떨어지네요.
약 먹고 하세요!
와 독하다. 뭐? 약 먹고 다 나으면 하라고 이게 뭔 소리야. 내가 추워서 봄부터 하겠다는데 센터 잘 못 걸렸나 후들후들 떨리는구나. 그 찰나 센터장님 표정이 미세하게 온화해진다. 저도 새벽수영한 지 5년 되었어요. 남들은 새벽수영 빠지면 마약처럼 미쳤다고 하죠. 그런데 운동할 시간이 그때뿐이더라고요. 저녁엔 매번 무슨 약속이 있는지 자꾸 빠지고 낮도 그렇고 새벽이 딱이라 그래요. 말투가 달라지셨다. 나랑 수영이랑 뭔 인연이라도 있나 대화만 하면 마지막은 수영으로 연결되니 소름이 돋는다. 추워서 못하겠다고 했더니 그것도 처음에 그렇다며 감기도 이겨낼 거니 약 먹고 조금 쉬다가 다시 시작하라고 말씀하셨다. 귀가 또 좀 얇나 팔랑팔랑 아네 그렇겠죠. 안 그래도 그 개운함을 잊을 수가 없더라고요. 얼른 나아서 수영장으로 복귀하려고요.
면접 마무리는 훈훈하게 되었고 정신 차려보니 내 손엔 11월 교재와 거래명세표가 들려 있었다. 아뿔싸 센터장님 추진력에 당한 건가 다음 주 모의 수업 준비해서 만나자는 인사로 정신이 아찔했다. 집에 돌아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면접에서 할 수 있는 일에 글쓰기이고 취미가 새벽수영이라니 나 조금 멋진데 어깨가 으쓱해졌다. 진짜로 이력서에 한 줄 한 줄 근면 성실함을 기록해서 드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