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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로소로 Nov 06. 2023

I'm 공부해요. 죽을 때까지

두 달 전 시험에 보기 좋게 미끄러졌다. 재시험 원서비는 쓱 결재로 쉽게 사라졌고 다시 도전한다는 게 맘처럼 쉽지 않았다. 아이들에게 실패하면 다시 하면 되고 과정이 중요한 거라 말하지만 막상 내가  떨어지는 처지가 되어보니 꼰대 같은 마인드였다. 정말 2주만 딱 눈 감고 다시 집중해서 도전해 보자 마음먹었다. 그 좋아하던 맥주도 시험 볼 때까지 안녕을 고했다. 




독한 년 소리 들어보자 이번이 마지막이야  어차피 붙을 거 이 악물고 해 보는 거야 매일 다짐하고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아이들도 덜 아프고 소란한 것들도 없어서 나만 잘하면 된다. 조용한 카페를 독차지하고 하루에 5샷을 먹어가며 이 얼마나 호사스러운 공간에 앉아 책을 보고 있노라 외쳐보지만 어느새 눈꺼풀은 수면 천사가 잡아당기고 고개는 연신 안녕하세요를 외치고 있다.





한방에 붙어 아이들 독서지도하는 삶을 할 수 있을 거라 자신했던 확신이 있었기에 떨어졌다고 말할 수도 없어 누가 물어볼까 부끄러웠다. 다시 도전하기까지 많은 용기가 필요했다. 사람인지라 떨어질 수도 있는데 왜 창피함이 마치 나태함으로 온몸을 감싸고 있는지 입에서 연신 어려운 시험이라고 변명을 해본다. 평생 안 하던 시험공부를 하려니 오죽 좀이 쑤실까 막바지에 그래 꼭 이런 게 필요한가 라는 억지 생각이 왔다 갔다 한다. 



그렇게 2주를 뾰족 궁둥이를 혹사시키며 있었고 시험 당일에 새벽같이 일어나 끄적였다. 시험 때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쉬운 건 잘 풀었으나 어려운 건 화면이 뿌옇게 된 느낌이 들었다. 문제를 읽고 있는데 무슨 말인지 한국어는 맞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고 멍한 지경에 이르러 아이들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분명 680페이지에 달하는 걸 읽을 땐 오케이 완료 날렸는데 책장을 덮고 백지장이 되어버리는 기술은 안 배워도 아는구나 싶다. 



한 시간 동안 시험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끝내고 나니 기운이 쭉 빠졌지만 조금 쉬운 것도 있어 기대해 볼까 자신감도 살짝 들었다. 두꺼운 책 두 권을 읽고 또 읽으며 느낀 건 공부도 내가 하고자 하면 곱씹는 것도 재미가 있구나 인생살이 마흔 넘어 몰아치는 삶에 깨달았다는 게 대견하다 싶다. 나를 채찍 하며 이거 저거 배우라고 하지 않았다. 지금 이렇게 불타오는 마음은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도전하고자 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나이탓 하며 후회할까 봐 도장 깨기처럼 무조건 하나씩 도전 중이다.



평생 공부에 흥미도 고민도 없던 삶에서 내가 선택한 것을 배우고자 하는 마음이 깃들었다. 잘 되던 아니던 노력 하며 도전한 시간이 곧 일 년이 다가온다. 하루의 시간들이 작은 점이 되어 콕콕 찍혀 선이 되어 완성되면 적성이라는 인생작품이 나올 것이다. 기대 수명이 늘어난 만큼 앞으로 하고 싶은 거 옴팡지게 하자.



아이와 같은 마음으로 새벽수영에서 배운 평영을 뽐내고 싶고 나이 든 부모님의 노후를 위해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하고 아이들 미래를 생각해 독서지도사를 향해 가는 발걸음을 응원한다. 이 밤 귤껍질이 소복하게 쌓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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