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둑후둑 비가 내린다. 낯선 장소에 우두커니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많은 사람들이 어디서 쏟아져 이 밤에 모일까 발걸음 마저 즐기는 듯 스쳐 지나간다. 같은 공간이 주는 안락함 보다 때론 낯선 곳의 긴장감이 생명수처럼 숨이 쉬어지고 청량하다.
힘들었던 수현을 만나 회포나 풀자고 했다. 술집에 마주 앉아 안부를 뒤로하고 술잔을 먼저 부딪힌다. 시시한 농담을 주고받으며 장난을 걸어보지만 수현의 까슬한 얼굴에 시선이 멈춘다. 든든하게 배를 좀 채우고 마음 썼던 일들을 한참 들어주며 내 이야기를 간간히 보탰다. 앞으로는 잘 될 거라는 말조차 쉬이 나오지 않고 그간 일들을 듣고 있으니 마음이 아렸다. 맑은 눈망울을 보며 시련을 전부 거둬가 구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강렬했다. 안타깝게 해 줄 것이라곤 묵묵하게 들어주는 것뿐이다.
나 역시 말을 많이 하는 편이라 상대방이 상처를 받을 때도 있고 실수를 할 때도 자주 있다. 들어주는 삶을 살아 보니 서서히 녹아들어 조금은 유연하게 공감하며 바라보는 시간이 주어졌다. 수현을 괴롭히는 모든 말과 삶이 없어질 수 없지만 흐릿하게 지워지는 날을 바라며 밖으로 나왔다.
찬란한 불빛이 하늘에서 쏟아진다. 철없는 아이처럼 깔깔 웃다 스티커 사진을 찍었다. 작은 사진이 좋아 잠시 황홀함에 빠져 한참을 봤다. 이처럼 사소한 것에 웃고 상처받았던 모든 말에서 해방되기를 소원한다. 여러 날이 지났고 여전히 흔들리고 두렵지만 키보드를 두드린다. 더 이상 웅크리지 않고 등이 펴지는 삶을 살기 위해 나 여기 있다고 점 하나를 남긴다.
존재의 숨통을 죄는 낡고 오랜 악당 같은 말들을 물리치고, 존재의 숨길을 열어주는 해방의 언어를 유포하고 싶다는 열망에 사로잡힐 때요. 그래서 글을 쓰는 일이 직업이 되었나 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