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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코끝찡 Nov 07. 2019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1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출발



 무거운 캐리어를 질질 끌고 블라디보스토크 역에 도착했다. 영하 30도에 육박하는 추운 날씨였지만 그놈의 캐리어 때문에 땀이 났다. 캐리어엔 열차에서 일주일 치 먹을 식량, 간식, 읽을 책들, 두툼한 옷가지들로 무려 32kg에 달하였다. 그 덕분에 공항에서 수하물 초과로 추가 비용을 내야만 했다. 그 캐리어를 들고 1층 대합실, 그리고 다시 3층, 다시 1층, 그리고 다시 2층을 올라가 겨우 열차에 탑승하였다.


 차장이 나를 반긴다. 차장은 나에게 물었다.


 "뽀르트끌라뚜?"   


 차장 말을 못 알아 들었다. 차장이 다시 나에게 묻는다.


 "뽀르트끌라뚜??"

 "아~ 뻐스뜨 클라쓰?"


 그렇다. 나는 이번 시베리아 횡단 열차의 퍼스트 클래스인 1등석을 선택하였다. 우선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이르쿠르츠까지의 2박 3일을 1등석, 이르쿠츠크에서 2박 3일을 머문 뒤, 이르쿠츠크에서 모스크바까지의 3박 4일을 2등석으로 선택하였다. 여러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3등석을 탈까 고민을 했지만 열차에서 조용히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차장에게 자신 있게 말했다. 네! 저는 이번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1등석을 선택하였습니다!


 "예스~ 아임 퍼스트 클래스!!"

 "노우! 뽀르뜨끌라뚜!!!"


 차장이 네모를 그리며 다시 뽀르뜨끌라뚜라고 이야기한다. 뭔가 싶어 다른 사람을 보니 여권을 보여 주길래, 순간 아차 싶었다. first class가 아닌 passport이었음을 알았을 때 부끄러움으로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었다. 그래도 차장이 웃으며 날 맞이해줬고 나 역시 웃어넘겼지만 그날 잠자리에서 그 생각에 여러 번 이불 킥을 해댔다.




 첫날은 러시아의 중년 아저씨, 세르게이와 함께 보냈다. 그는 내가 만났던 러시아인들 중 가장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었다. 덕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는 인생은 짧다며 충분히 즐기라고 했다. 글을 쓰러 왔다니 도스토옙스키의 <카르마조프의 형제들>을 꼭 읽어봐라고 했다. 그리고 그는 다음 날 아침, 하바롭스크에서 내렸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우린 제법 친해졌고 아쉬움에 서로 번호를 교환하곤 꼭 다시 만나자고 약속했다.  



<이렇게나 짐을 많이 챙겨왔다 / 오른 쪽은 하루를 같이 보낸 세르게이와 함께>

 

세르게이가 내린 후, 나는 1등석을 혼자 쓰게 되었다. 먼저 짐 정리를 하고 창가에 엄마 사진을 꽂아두었다. 덕분에 혼자라는 생각이 덜 들었다. 세르게이는 창밖에 계속 똑같은 풍경이 이어져 지루할 것이라 했다. 지루할 법도 했지만 책을 읽어도 영화를 보더라도 글을 쓰더라도 창밖의 환상적인 풍경 덕에 그 어떤 것도 집중할 수 없었다. 늘 봐왔던 하늘이며 태양이지만 유독 맑아 보이고 이상하리만큼 커 보이는 태양이 어찌나 아름답던지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비슷하긴 했지만 똑같은 풍경은 아니었다.



<엄마 사진을 창가에 꽂아두고 가니 그나마 혼자란 생각이 덜 들었다>




 열차 안에서의 하루는 24시간이 아닌 25시간이다. 하루 동안 시차가 한 시간 씩 느려지기 때문이다. 시차가 바뀌는 구간을 지나면 시계를 한 시간 씩 돌려놓는다. 가끔은 낮에 한 시간을 벌기도 하고 밤에 나도 모르게 한 시간을 더 자기도 한다. 모스크바까지 총 7시간이 늘어지는 셈이다. 기차에서 번 시간은 온전히 모스크바에서 서울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다시 까먹을 예정이다. 반대로 모스크바에서 블라디보스토크로 가는 열차에선 하루가 23시간이겠지. 그래서 상행선은 시간을 좇아가는 열차, 하행선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열차라고 하는 것이다.   

 

 큰 도시에선 30분 이상 정차를 한다. 그때면 열차 밖을 나가 매점에서 여러 먹을거리를 사고 몸도 풀기도 한다. 그러나 밖에 오래 있을 수 없다. 바람 한 점 부는 날씨가 아닌데 숨만 쉬면 콧속이 얼어버리고 머리까지 띵한 고통을 느끼는 추위이다. 한국에서 가장 춥다는 철원에서 군생활을 했지만 시베리아 날씨에 비빌게 못된다. 나폴레옹과 히틀러가 러시아를 점령할 수 없었던 이유를 몸소 느끼고 있는 중이다. 그러나 이 추위마저 처음 느껴보는지라 그저 즐겁기만 하더라.


 해가 저물면 창밖은 암흑이 된다. 그제야 글도 쓰고 책도 보고 밀린 드라마도 본다. 기차의 떨림과 칙칙폭폭, 경적소리마저 포근하게 느껴진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면 불면증을 앓고 있는 사람이 낫는데는데 왠지 알겠더라. 열차 안에서 한 번도 수면제를 먹지 않았다. 매일 일출을 볼 생각에 설레며 잠이 들었다. 그리고 다음날이면 늘 더 환상적인 곳에서 태양이 뜨고 있더라. 늘 같은 주인공에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그렇게 일출에 설레고 일몰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매일 같은 주인공의 다른 영화를 보는 느낌이었다>


https://youtu.be/B_MycQCPkfA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서 7일간의 타임랩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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