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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니르바나 Jun 17. 2020

부재(不在)-섬돌 위엔 신도 없다


시와 현실 2 / 가슴으로 읽는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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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不在)



문(門) 빗장 걸려있고 섬돌 위엔 신도 없다.

대낮은 밤중처럼 이웃마저 부재(不在)하고

초목(草木)만 짙고 푸르러 기척 하나 없는 날,


출전/ 김상옥 시전집, 창비 간(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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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김상옥(金相沃) 시인 (1920-2004.11)


3줄 약력

<문장>지 추천,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1941)으로 등단

시(詩) 서(書) 화(畵)를 아우르는 폭넓은 예술적 업적을 남김

시집으로 <초적> <고원(故園)의 곡(曲)> <이단(異端)의 시(詩> 외



///////창窓과 창創 /////////////////



단 3줄로 된 3행시다. 스스로 시조를 3행시로 이름 지었다. 

시조의 정형성을 넘어 자유로운 시적 경지를 추구하는 정신이 스며있다.

시 <부재>는 무엇을 말하는가? 

아무도 없음이다. 즉 주변 상황묘사만 있고 정작 인물은 없다. 어디로 간 것일까?

어쩌면 천재지변(코로나 팬데믹)으로 인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인가?


수많은 그의 명작에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80년대 후반, 필자가 한 교양지

명사들의 ‘자선 대표작‘ 인터뷰를 위해 초정(艸汀) 선생 댁을 방문했을 때,

놀랍게도 그는 자선 대표작으로 <부재>를 들었다. 그만큼 자신에게는 비중 있는

그런 작품인 셈이다.  자신의 시에 대해, “아직 창조가 이루어지기 전 태초의

어느 날“이거나, 인류가 ”멸망한 이후의 적멸(寂滅)“을 생각하면 될 것이라 하였다.

어쩌면 불교적 초월의 세계, 시공간이 무화된 진여(眞如)의 세계를 극적 이미지로

표현한 것인지 모른다.

  

초정의 작품 세게는 대체로 한국의 토속적 전통과 그 안에 녹아있는 

고결한 정신세계를 그렸다, 

하지만 시 <부재>는 소재와 내용면에서 이채롭다. 다분히 현대문명의 비판, 

인류 미래를 예견하는 준엄한 경고와 같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적막이, 

공포와 경이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잠언(箴言)의 시다. 

어쩌면 우리시대 어느 날 갑자기 맞이하는 비현실의 현실, 

오늘을 예견한 것일까?

(글-기청 시인, 문예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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