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전/ 미발표 신작
///////////窓과 倉//////////////
세상이 혼란스럽다보니 자연도 질서를 잃은 모양이다.
가을, 머지않아 낙엽이 흩날릴 단풍의 계절, 남도에 때 아닌 벚꽃이
피었단다. 자연의 역설인가 시절의 반란反亂인가?
원인을 캐자면 이상기후 변화로 인해 생태계가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일종의 치매와 같은 현상이다.
사회문화적으로 보면 변칙과 위선僞善 ‘내로남불‘이 일상화된 현실을
은유적으로 풍자하고 한편으로 무언의 경고를 보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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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개천절 날, 경찰이 코로나 방역을 이유로 경찰차로 광화문을
철벽옹성으로 만들었다. 이를 두고 정권방어용이 아니냐는 비판이
쏟아진다. 무엇이 무서워 그토록 철저하게 봉쇄를 하느냐는 것이다.
지난 해 개천절의 악몽 때문으로 진단하기도 한다. 광화문과 정권은
촛불의 상징성과 함께 최후의 보루로 인식하는 때문인가?
서울대공원은 넘쳐나는데 유독 광화문은 개미 한 마리 얼씬할 수 없는
금단의 땅이 되어야하는지, 국민은 납득할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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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시절 봄이 되면 실성한 여인이 머리에 꽃을 꽂은 채
하염없이 떠도는 것을 본직이 있다. 위의 시 <가을 벚꽃>은
그런 아련한 기억에서 출발한다.
‘실성한 처녀아이‘와 ‘길 잃은 벚꽃‘의 병렬적 은유가 주축을 이룬다.
길을 잃고 어디론가 사라진 그 아이, 이 가을 벚꽃으로 피어
‘태생부터 서러운 종족(宗族)‘의 한을 토해내고 있는 것일까?
더 확대하면 이리도 순박한 백성, 시대에 위정자에 거짓 정치꾼에
속고 살아온 이 땅의 주인, 민초(民草)들의 분노가 아픈 무언의 함성으로
시각 청각의 공감각적 심상으로 제시된다.
진실의 목을 누르고/
위선(僞善)의 칼바람 낭자한 세상/
태생부터 서러운 종족의 백성/
또 한 번/
왁자한 함성으로 일어나서/
그 민초의 함성은 광화문의 촛불일수도, 저 동학을 일으킨 전봉준의
횃불일 수도 있다. 죽창가를 부르며 팔도에서 밀려오는 동학군의
함성일 수도 있는 것이다.
‘가을 벚꽃‘은 비록 길을 잃었지만 진실을 회복하려는 의지. 온갖 거짓과
위선의 가면을 증언하려는 ‘불사의 넋’이 되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