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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 첫번째 중학교 교육과정 설명회

by 소소러브

첫째 아이가 이미 고등학교 2학년이라지만 그녀가 중학생이던 시절 코로나 때문에 교육과정 설명회가 없었다. 덕분에 신경쓸 거리도 하나 줄었지만 내가 알아야 하는걸 모르거나 놓치지는 않았나 하는 고민과 걱정은 조금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둘째 아이의 교육과정 설명회가 있던 날이다. 처음에는 중학생인데 뭐 굳이 가랴 싶었고, 얼마 안 있어 있을 큰 아이의 고등학교 교육과정 설명회 때 늦지 않게 잘 다녀와야지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초등학교 교사인 절친한 친구에게 카톡이 왔다.

"아이들 공개수업 보러 왔어."


수업하랴 대학교에서 강의하랴 바이올린 개인 레슨까지 받는 그 바쁜 와중에도 시간을 쪼개어 아이들의 학교를 찾아 갔을 그녀를 생각하니, 우리집 아파트와 정문을 마주하고 있는 둘째아이 학교에조차 들르지 않는 것은 명백한 '직무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단정한 밤색 코트를 꺼내고 무난한 검정바지를 입고 도저히 포기할 수 없는 편안한 운동화를 신고는 집을 나섰다.


시작 시간보다 10분쯤 일찍 도착하니 빈 자리가 많다. 여유롭게 유인물 모음집을 한 부 들고 마음에 드는 자리에 앉는다. 출입구와 가까운 자리. 딱 마음에 든다. 별거 아니다?!싶으면 중간이라도 빠져나가 아이들 저녁을 차려 줄 심산이다. 저녁 6시가 되자 그제서야 가겠다는 마음을 먹고는, 두 아이가 먹을 밥도 따로 차려 놓지 않고 뛰쳐 나온 에미 마음은 이 역시도 직무유기라고 느낀다.


족히 20쪽은 될만한 유인물을 찬찬히 살펴본다. 학교 현황, 작년 진학 내역, 고입 성적 산정 방법, 학교폭력 예방 교육, 교권 침해 교육, 자살 예방 교육 등 중요하면서도 오늘 이곳에 오지 않았다면 따로 챙겨 읽어보지 않았을만한 내용들을 눈에 담아 본다.


아~ 이 학교가 개교한지 몇 년이 된 학교구나.

내신 성적 방법이 50-200점 사이에 줄세우기 였다니?! (지역마다 다름)

내 아이가 생각지도 모르게 학폭 가해자가 된다면 상대방의 잘못도 조금은 있는거 아니냐며 남탓?!을 해서 합의를 어렵게 만들지 말고 사과하라는 학폭 담당 선생님의 말씀.

교복이 있지만 어느정도 선까지 자유롭게 입을 수 있는지에 대한 가이드라인까지 (평상시에는 체육복과 여름에는 무지 반팔티까지는 오케이ㅡ학교마다 다름) 꼭 필요한 내용들이 많았다.


무대에 올라 한분 한분 인사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나도 저 자리에 설 때는 왜 그렇게 그 자리가 부담스럽고 싫게만 느껴졌던지 싶었고, 막상 앉아서 인사하시는 선생님들을 보니 동료교사로서 짠한 마음도 들었다. (하루종일 수업하시고 생활지도 하시고 집에 가서 쉬셔도 모자를 판에?! 6시까지 퇴근도 못하시고 무대에 올라가 아무렇지 않은척 인사하시는 샘들보며 나도 모르게 감정이입이...)


청바지를 입고 인사하시는 젊은 선생님도 계셨고, 검은 수트를 풀장착하고 오신 젊은 선생님도 계셨다. 그 와중에 우리 담임선생님이라고 소개되는 선생님을 핸드폰으로 확대해서 찍는 어머님들도 계셨다. (이렇게 다채로운 풍경이 무대 아래에서 벌어지는 줄은 미처 몰랐다.)


역시 하이라이트는 학부모 선출이 끝나고서야 진행되는 담임 선생님과의 만남. 상담주간 첫날에 이미 간단히 전화 상담을 한지라 선생님께서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알고는 있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교실을 찾아갔다. 교사용 책상 위에 붙여진 아이 좌석표를 찾아 자녀의 자리에 앉으라는 말씀에 선생님의 내공이 느껴졌다. (이 방법은 나도 다움에 꼭 써봐야겠다.) 아이가 3주간 앉아온 자리에 살포시 앉으니 기분이 묘하다. 나도 모르게 본능적으로 서랍에 손을 넣어 책들이 가지런히 잘 정리되어 있나 만져본다. 이미 삐뚤빼뚤 방향조차 맞지 않는 책들이 손으로 느껴진다. 어쩔 수 없이 시간의 빈틈을 노려 서랍의 모든 책을 꺼낸 후 자주 쓰는 국수사과영 교과서는 왼쪽에 나머지 교과서는 오른쪽에 넣어 정리를 마쳤다. 그리고는 혹시나 하고 메모용으로 가져간 종합장 첫페이지에 간단히 편지도 썼다. 써프라이즈로 나중에 발견하면 아이의 기분이 좋을 것 같아 교과서 맨 밑에 살포시 깔아 두었다.


선생님께서는 40대로 보이셨다. 젊은 선생님도 나이든 선생님도 각자 나름의 좋은 점이 있을거라고 하시면서 도덕 교과를 가르치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공부만 잘해서는 돋보일 수 없는 세상인 것 같다고 하시며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함께 어울릴 수 있는 인성과 사회성을 함께 겸한 사람으로 아이들을 키우면 좋지 않겠냐는 말씀도 하셨다. 그리고 아침에 저작활동을 좀 해주어야 두뇌도 잘 돌아간다며,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말하는 것보다 공부할 수 있는 환경을 잘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로서 아이들을 도와줄 수 있는 좋은 방법인 것 같다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아침밥 잘 멕여 학교 보내라는 말씀!)


공식적인 학급 운영 방침에 대한 말씀도 끝나고 질문이나 건의가 있으신 분은 허심탄회하게 말씀해 달라고 하셨다. 30명 정도 되는 반 아이들 중에 5분의 어머니가 오셨는데, 초등학교처럼 가정 통신문이나 알림장 내용을 알려주는 어플을 사용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있었다. 체육시간에 옷을 화장실에서 갈아입는 것이 너무 불편하니 탈의실이 있으면 좋겠다는 의견도 있었다. 교실에 얼룰덜룩 페인트가 색깔이 다른채 생뚱맞게 칠해진 곳이 꽤 눈에 띄었는데 학교 도색 작업이 계획에 있느냐는 질문도 이어졌다.


선생님은 여유로운 표정과 태도로 학부모님들의 의견을 경청하셨고 좋은 의견들을 이렇게 내주시면 학교가 당장 빨리는 바뀌긴 어렵더라도 조금씩은 바꿔나가지지 않겠냐는 말씀을 하셨다. 예산 문제로 바로 바뀌지 않는 것도 있을 수 있겠지만 연말에 추경 예산이 남으면 진행해 볼 여지가 있지 않겠냐는 자세한 말씀을 해주셨다.


사실 오늘 교육과정 설명회는 내 자녀를 위한 시간이기도 했지만 교사로서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학부모님들 역시 하루 종일 일하시다 저녁 시간에 자녀들의 식사를 뒤로한채 바쁜 걸음으로 여기까지 찾아오셨을 것이다. 교사로서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도 전달하지만, 부모님들의 의견도 귀 기울여 들을 수 있는 몸과 마음의 여유가 꼭 필요함을 느꼈다.


담임 선생님의 말씀처럼 우리는 늘 학교에서 같은 공간에 머물며 늘 같은 눈으로 학교를 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문제를 못 느낄 수도 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것과 타인의 의견을 존중할 수 있는 태도가 중요한 사회이다. 그런 아이들을 키우려면 나부터가 말랑말랑한 존재가 되어야 함을 느낄 수 있는 귀한 시간이었다.


비록 한시간 반동안 진행된 꽤 긴 시간이었지만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았다. 집으로 돌아가니 두 아이는 볶음밥 밀키트로 저녁을 해결하고 한 명은 학원 가기전이라 한숨 자고 있었고, 한명은 수학 숙제를 하고 있었다.


아이들은 자 란 다.

나도 역시 자 란 다.


(20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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