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가 깊어지는 게 두렵다. 관계가 지속되지 않을 때 큰 절망감을 느끼게 되고 우울감도 커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점점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게 될 때 친밀해지지 않으려 하고 더 관심을 가지지 않으려 한다. 말로도 계속해서 관심이 없다고 표현을 하게 된다. 그래야 그게 사실이 되는 것 같으니까.
가까운 곳에 있던 친구 한 명이 다른 지역으로 가게 되는 것조차도 만날 수 없는 게 아닌데,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고 하나의 이별을 경험한 것처럼 모든 생각과 세포가 이 상황에 집중되며 잠재워져 있던 상대에 대한 나의 관심과 사랑의 감정이 폭포수처럼 쏟아져내린다. 어느 순간 그때의 그 감정은 진정이 되고 또 다른 인연으로 그 빈자리가 채워질 순 있겠지만, 이 관계가 지속되기를, 끝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일까? 다시금 이런 과정이 반복될까 봐 그게 너무 힘들어서 관계가 깊어지는 걸 꺼리게 된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의 깊이가 다를까 봐 그게 무섭기도 하다. 나는 점점 더 깊어지고 내 안에 그 사람이 가득 차버렸는데, 상대는 그렇지 않을까 봐, 내가 놓으면 끝나는 그런 관계가 되진 않을까. 계속 두려워하고 의심하느라 좋은 인연을 놓치게 된 경우도 있었다. 함께 오랜 시간 동안 같이 깊어지며 끈끈해지는 그런 관계를 가지려면 어쨌든 관계를 시작해야 하고, 시작을 하기 위해서는 이런 두려움을 깨야하고 또 마음을 열고 그 사람을 받아들이고 바라보며 함께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참 어렵다.
적막과 고요함 그리고 어두움이 좋다. 정신없이 흘러가던 시간을 꽉 잡아주는 그 기분이, 이 안정감이 좋다. 있다가 없어질 것 같은 시끄러움보다 그냥 혼자인 조용함이 좋다. 잃고 싶지 않고 무너지기 싫으니까, 회복이 너무 더디니까. 상실에 대한 불안이 내 안에 항상 가득해서 그저 행복해야 하는 순간에도 이 행복조차 의심하며 소중한 시간들을 떠나보내고 있진 않은지 오늘도 확인해야 한다.
관계에 대한 불안과 두려움에 맞서서 싸우기 위해서 필요한 건 무엇일까 계속해서 고민해왔다. 어렵지만, 그래도 미래에 대한 선 걱정과 상상 대신에 현재의 순간과 시간 속에서 맺어지는 그 관계에 집중하며 사랑하고 표현하고 받아들이며, 즐기고 또 슬퍼하고 울기도 하고 아파하기도 하면서 그렇게 매일을 쌓아 가다 보면 시작도 전에 멈추기보단 더딜지라도 조금씩 걸음을 옮길 수 있지 않을까?
변화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연습이 끊임없이 필요하다. 세상의 모든 것들은 어쩌면 변하지 않는 것이 없으니까. 누군가가 나에 대한 생각이 변하고 마음이 변하는 것도, 우리 모두의 관계가 변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며 없어진다기보단 다른 모양이 되어가는 거라고 생각해보려고 한다. 그러면 이런 불안의 모양도 조금은 예뻐 보이게 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