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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소소 Feb 28. 2020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그리고 드디어 너를 만났다

세계를 건너 너를 만났다

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던 중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 대해 듣게 되었다. 3년 전에 일곱 살 딸을 떠나보낸 엄마에게 VR 가상현실을 통해 딸과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내용의 휴먼 다큐프로그램 <너를 만났다>였다.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방송이 끝난 다음 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 해당 방송 관련 검색어들을 보며 사람들에게 제법 많은 감상을 남긴 방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이 방송을 보며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한 지점이 각각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결국 날 밤, 방송을 찾아 보았. 나연이를 먼저 보낸 엄마와 아빠도 그러했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맘이 아팠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같은 동생이 떠나갔다. 담담하게 말하는 얼굴에서 말간 슬픔이 묻어났다. 그리고 문득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다.

이꽃님,『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문학동네, 2018.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은유'가 34년을 거슬러 배달된 편지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16년의 은유가 1년을 살아가는 동안 1982년의 은유는 20년의 세월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은유는 서로에게 동생, 친구, 언니, 이모가 되는 등 호칭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시간들을 통해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지만, 평생을 궁금해 온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거나 언니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사는 것으로 인해 힘든 마음 등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고, 점차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2016년의 은유 그리고 자신의 딸 나연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 이제 다시는 볼 수도, 눈 맞추고 얘기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잊지 못해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너를 만났다>는 비슷한 결을 지녔다.  

   

두 작품을 보며 문득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속 2016년의 은유와 <너를 만났다>를 통해 나연이를 만난 엄마는 행복했을까. 그 행복의 끝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마음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을 만나 안아주고 싶었지만 손끝 하나 만질 수 없어 눈물 흘리는 엄마. 그리고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은유의 존재가 희미해져 걱정하는 2016년의 은유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날들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 요즘은 어쩐지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언니 편지가 조금씩 더 늦게 도착할 때마다, 언니가 보낸 편지가 조금씩 흐릿해질 때마다 자꾸만 불안해져. 이번에 온 편지는 지우개로 박박 지워 놓은 것처럼 흐릿했어. 편지를 읽으려면 한참을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언니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째서 편지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걸까.  언니 아직 거기 있는 거지?     

_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속 2017년 은유의 편지 중에서


하지만 두 은유가 서로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지하게 된 순간과 엄마와 나연이가 만나는 순간은 그 순간을 목격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의 부재에 마음껏 울고, 슬퍼하고, 그리워할 자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공허함은 조금씩 옅어질 수는 있어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득 바람결에 그 사람이 스칠 때, 깊은 밤 누군가가 생각나 잠 못 이루는 시간을 견뎌내면서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다만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세계를 건너는 동안 어김없이 주어지는 '오늘'과 내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감사는 남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누군가에 대한 깊은 애도와 함께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버텨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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