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회사 동료들과 점심을 먹던 중 어느 다큐 프로그램에 대해 듣게 되었다. 3년 전에 일곱 살 딸을 떠나보낸 엄마에게 VR 가상현실을 통해 딸과 함께할 수 있는 특별한 순간을 선사하는 내용의 휴먼 다큐프로그램 <너를 만났다>였다. 방송을 보지 못했지만, 방송이 끝난 다음 날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 오른 해당 방송 관련 검색어들을 보며 사람들에게 제법 많은 감상을 남긴 방송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회사 동료들이 방송을 보며 인상적이었다고 얘기한 지점이 각각 다른 것도 흥미로웠다.
결국 그날 밤, 방송을 찾아 보았다. 나연이를 먼저 보낸 엄마와 아빠도 그러했지만 남겨진 아이들의 마음이 너무 잘 느껴져서 맘이 아팠다. 누구라도 사랑할 수밖에 없었던, 친구같은 동생이 떠나갔다. 담담하게 말하는 얼굴에서 말간슬픔이 묻어났다.그리고 문득 최근에 읽은 책 한 권이 생각났다. 제8회 문학동네청소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이꽃님 작가의 장편소설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이다.
이꽃님,『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 문학동네, 2018.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아가는 두 '은유'가 34년을 거슬러 배달된 편지로 인해 서로의 존재를 알게 되고,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일어나는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2016년의 은유가 1년을 살아가는 동안 1982년의 은유는 20년의 세월을 살아간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는 동안 두 은유는 서로에게 동생, 친구, 언니, 이모가 되는 등 호칭의 변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그 시간들을 통해 두 사람은 누구에게도 속 시원히 말할 수 없었지만, 평생을 궁금해 온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거나 언니와 끊임없이 비교당하며 사는 것으로 인해 힘든 마음 등 내밀한 감정을 공유하고, 점차 서로 의지하게 된다.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2016년의 은유 그리고 자신의 딸 나연이를 먼저 떠나보낸 엄마. 이제 다시는 볼 수도, 눈 맞추고 얘기할 수도, 만질 수도 없는 누군가를 그리워한다는 것.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누군가를 잊지 못해 아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그리고 힘겹게 버티며 살아가는 그들을 바라보며 마음 놓고 울 수조차 없는 사람들의 이야기.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와 <너를 만났다>는 비슷한 결을 지녔다.
두 작품을 보며 문득 사람들에게 묻고 싶어졌다. 당신에게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할 수만 있다면 어떤 방법으로든 꼭 한 번 다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속 2016년의 은유와 <너를 만났다>를 통해 나연이를 만난 엄마는 행복했을까. 그 행복의 끝을 염려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그들의 마음 역시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딸을 만나 안아주고 싶었지만 손끝 하나 만질 수 없어 눈물 흘리는 엄마. 그리고 과거를 살아가고 있는 또 다른 은유의 존재가 희미해져 걱정하는 2016년의 은유가 살아가게 될 앞으로의 날들이 어떠할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언니. 요즘은 어쩐지 자꾸만 이상한 생각이 들어. 언니 편지가 조금씩 더 늦게 도착할 때마다, 언니가 보낸 편지가 조금씩 흐릿해질 때마다 자꾸만 불안해져. 이번에 온 편지는 지우개로 박박 지워 놓은 것처럼 흐릿했어. 편지를 읽으려면 한참을 들여다봐야 할 정도로. 언니가 사는 세계와 내가 사는 세계는 점점 더 가까워지고 있는데 어째서 편지는 점점 더 희미해지는 걸까. 언니 아직 거기 있는 거지?
_ 『세계를 건너 너에게 갈게』 속 2017년 은유의 편지 중에서
하지만 두 은유가 서로의 존재를 진정으로 인지하게 된 순간과 엄마와 나연이가 만나는 순간은 그 순간을 목격하는 우리의 마음속에 깊은 울림을 준다.
누군가의 부재에 마음껏 울고, 슬퍼하고, 그리워할 자유
소중한 사람을 잃은 슬픔과 공허함은 조금씩 옅어질 수는 있어도 온전히 사라지지는 않는다. 그 사실을 우리는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 문득 바람결에 그 사람이 스칠 때, 깊은 밤 누군가가 생각나 잠 못 이루는 시간을 견뎌내면서 우리는 그렇게 또 하루를 살아가게 된다는 것을. 다만 소중한 사람을 다시 만나기 위해 세계를 건너는 동안 어김없이 주어지는 '오늘'과 내 옆에 함께 있는 사람들에 대한 위로와 감사는 남은 사람에게 주어진 선물이다. 누군가에 대한 깊은 애도와 함께 지금 내 옆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소중히 하는 것, 그것이 우리를 버텨낼 수 있게 하는 또 하나의 힘이 되어줄 것이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