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고기한점에 담긴 위로

by 소소

" OO 야, 오늘 점심에 뭐 해? 오늘 거래처 미팅이 있는데 마침 너희 동네 근처야. 미팅 끝나고 연락할 테니까 같이 점심 먹자. "

특유의 맑고 또박또박한 말투의 경미언니 전화를 받은 건, 먹구름과 태양이 공존하던 월요일 아침이었다.

간밤의 억수같이 퍼붓던 비는 잦아들었지만 언제라도 먹구름이 힘을 발휘한다면, 또다시 무섭게 퍼부울 기세였다.

겨우 세수를 하고 간단한 기초 화장품만 바르고 지내던 내게, 언니의 전화는 오랜만에 거울에 앉아 화장을 하게 했다.


미팅이 끝난 언니는 먼저 근처 카페에 가 있었다.

월요일 오전의 넓은 카페 2층은, 창가 쪽에 자리를 잡고 노트북을 펼쳐 놓은 몇몇 사람들 외에는 거의 텅 비어있었다.

언니는 그 넓은 카페의 한가운데 자리에 커피잔을 앞에 놓고 앉아있었다.

"언니!"

"응, 빨리 왔네. 너는 뭐 마실래? "

"아니에요 언니, 아침에 집에서 마셨어요. 그리고 이제 밥 먹으러 갈 거 자나요"

머리카락 한올 흘러내리지 않게 뒤로 빗어 동그랗게 머리를 말아 올리고, 보랏빛 블라우스와 하얀 바지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아있는 언니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나와 경미언니는 여행사 일을 하며 알게 되었고, 벌써 25년이 흘렀다.

눈썹 위에서 단정히 똑바로 잘려있던 새카맣고 숱이 많은 머리와, 새하얀 얼굴에 붉은 립스틱을 바른 언니의 처음 모습은 '참 예쁘다'였다. 그리고 그때의 그 모습은 지금도 언니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캡처화면 같다.


그렇게 알고 지내 온 시간이 길었지만, 내가 사는곳 근처까지 언니가 온건 처음이었기에 지금 내 앞에 앉아있는 언니의 모습은 새로웠다.

" 우리 고기 먹으러 가자. 이럴 때일수록 잘 먹어야 해 "

이럴 때일수록... 현재 새로운 직장을 찾으며 여러 가지 고민을 안고 있는 나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언니는,

겸사겸사 나에게 든든한 밥 한 끼를 사주고 싶었던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두 달 전, 내가 정리해고를 통보받은 그날도 언니는 내게 든든한 저녁을 사줬었다.


카페를 나와 조금 걸어가니 24시간 정육식당이 보였다.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 점심을 먹기에는 아직 이른 시간이라 아까의 카페에서 처럼 식당도 역시 한산했다.

젊은 직원은 우리를 자리로 안내했고, 우리에게 2~3인분 모둠세트를 추천했다.

하지만 언니는 넉넉히 시켜서 실컷 먹자고 하며 3~4인분 세트와 공깃밥 두 그릇을 주문했다.

고기를 가지고 온 젊은 직원은 각각 어떤 부위 인지와, 구워 먹는 순서를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고기를 열심히 굽고 자르고 서로의 앞접시에 놓아주며 먹는 동안, 우린 별 말이 없었다.

고기를 구워내는 속도보다 먹는 속도가 느려져갈 무렵 언니가 얘기를 시작했다.


언니의 회사직원 A에 대한 얘기였다. 목소리가 큰 A는 하루 종일 큰 목소리와 고압적인 말투로 아래 직원들을 지적하고, 매사에 자신감이 넘친다고 했다.

또 작은 성과를 크게 포장하고, 심지어 아랫사람의 성과까지 본인성과로 둔갑시켜 버리는 능력이 있다고 했다.

그런 덕분인진 몰라도 꽤 높은 연봉을 받으며 승승장구하고 있다고 했다.


"OO야, 이해할 수가 없어. 어쩌다 한 번이 아니라 매사에 그런 식이야. "

"저라면 그렇게 하라고 해도 못할 거 같아요. 근데 그 덕분에 회사에서 인정받고 연봉도 많이 받는다면 A는 계속 그렇게 하겠네요. "

"그러게 "

우린 서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A와 같은 이런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오랜 직장생활을 하면서 여럿 봤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자리씩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 대부분이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었다.

오히려 내 능력을 스스로 과소평가하며 너무나 겸손하게 몸을 낮추기 바빴다.

조금도 살을 붙이거나 뭔가를 보태지 못했다. 왠지 나 자신을 속이는 것 같아서 싫었고, 상대방에게도 미안해서였다.

하지만 A처럼 사는 게 맞는 걸까...


"언니, 그렇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글쎄.. 때로는 필요하지 않을까? "


더 이상 단 한 점도 더 먹을 수 없을 만큼 배가 차고 나서, 언니는 굽지 않은 남은 고기를 포장해 달라고 했다.

젊은 직원이 아이스팩을 넣어 포장한 고기를 가지고 왔고, 언니는 저녁에 구워 먹으라며 내 앞으로 봉지를 밀었다.


생각해 보면, 내가 아무 일 없이 잘 지낼 때는 언니와 자주 연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언니는 내가 힘들 때 가까이에서 위로가 되어주었고 때로는 내가 주저앉지 않도록 붙잡아 주기도 했다. 마치 의무감인 것처럼 수시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를 물었다.


식당을 나오니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고 있었다. 눈을 찡그려 하늘을 올려다봤다.

뜨거운 햇살 아래 사라져 버린 먹구름처럼, 내 마음속 먹구름도 잠시 흩어졌다.

한 손에 들고 있던 긴 우산이 거추장스러웠지만 다른 한 손에 들고 있는 고기봉지에서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졌다.

집으로 혼자 돌아오는 길에 나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 언니,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걸까요? "


나는 아직 답을 모르겠다.

하지만 오늘 언니가 건네준 고기처럼, 누군가의 온기가 내 삶을 지탱해 준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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