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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Feb 18. 2023

파이어족이 될 수 없어 일한다

출근 3주 차 이야기.

"하이, 앨리스"
"노~ 내 이름은 앨리야."
"응. 그래 앨리스.
"앨리~스... 아니고 앨리. 난 이상한 나라에서 오지 않았거든."
"아, 그래. 앨리!! 만나서 반가워."
(내일도 그녀는 나를 앨리스라고 부를 것 같다.)


내 영어 이름은 Ellie-앨리다. 식당 예약할 때도 '엘리'라는 이름으로 예약하고, 누가 이름을 물어보면 "그냥 엘리라고 불러줘" 한다. 베트남에 살면서 영어 이름을 쓰는 건 일단 영어로든 베트남어로든 내 이름은 발음하기가 힘들다. 병원이나 공공기관에 가서 내 차례를  기다릴 때면 초 집중을 해야 한다. 집중해야만 알아들을 수 있는 자기들만의 해석으로 불려지는 스펠링이기 때문이다. '유웅 으언!' 이게 내 이름이란 말이지? 이래서 내 나라가 살기 좋다. 


게다가... 게다가... 내 이름은 베트남어로 엉뚱한 뜻을 가지고 있기도 해서 웬만하면 여권 상의 이름을 사용해야 하는 곳이 아니면 '앨리'라고 불러달라고 한다. 유치하지만, 이름 때문에 놀림받았다가 속상해서 울었던 십여 년 전의 시절도 있었다. 서른이 넘어도 놀림받는 게 싫은 건 어쩔 수 없었다. 내 이름이 어때서!!


여권에 이름 철자를 바꿔서 새로 발급받으면 되지 않겠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게 되면 비자와 은행 계좌 등 일상의 여러 가지가 피곤해져서 그냥 이제는 내 이름을 어찌 생각하든 강철 멘탈로 무장하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자주 봐야 하는 사이라면 먼저 이름 커밍아웃을 한다. 회사에 출근하게 되면서 직원들과 제일 먼저 정리한 것도 호칭이다. "너희도 알다시피 놀랍게도 내 이름의 뜻이 이상한 게 있잖니? 발음도 어렵고. 그러니까 그냥 앨리라고 불러줘."


앨리로 부르든 미세스 허라고 부르든 상관없이 출근은 재미있다. 새로운 마케팅 용어들을 익히고, 모르는 영어 단어 앞에서 자주 움츠러들지만, 괜찮다. 가끔 스펠링을 틀리게 써서 부끄럽기도 하지만, 상관없다. 


열심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 

나의 생각에 귀 기울여 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있다는 것. 

그것이 얼마나 감사한 일이었던가. 


파이어족이 될 수 없다면, 일단은 열심히 일하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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