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은 Jul 26. 2021

작은 집을 좋아합니다

평수 넓은 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작은 집을 좋아하기도 했고, 여러 조건이 잘 맞기도 했다.


전에 살던 집은 넓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늘어가는 살림과 집주인 가구가 뒤섞여 여유 공간이 없었다. 작은 가구라도 하나 더 들어오면 천장에 붙이고 살아야 할 지경이었다.


예전 집보다 30 스퀘어미터 정도 작아졌지만, 좁다거나 불편하지 않다. 그런 것에 무딘 사람이기도 하고, 짐이 많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내가 관리하기  좋은 규모의 집이.  3, 화장실 2, 베란다와 주방 옆에 세탁실도 있지만,  전체가 한눈에  들어오는 .


에어컨과 주방 인덕션, 붙박이 옷장과 신발장만 있는 노옵션이지만 별달리 가구는 사지 않았다. 이사  전에 열심히 버리고, 나눠주고 왔는데 다시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꼭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기로 했다.


요즘 나의 목표는 거실 한쪽 벽면 비우기다. 2년만 살고 나가야지 했던 집에서 3년째 살다 보니 어느새  살림이 늘었다. 필요한 것만 남겼는데도  이렇게 집이    같은지 생각하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간단했다. 집이 작기 때문이다. 이런.


그래도 줄여보기로 했다. 물려받은 전집은 1질만 남기고, 나머지는 방학 동안 읽고 정리하기로 아이와 이야기했다. 그러면 세 칸이나 비게 되는 책장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 벌써부터 즐겁다.


“집에 책이 엄청 많을 것 같아요.”라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방송작가였고, 지금은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우리 집 책꽂이는 좀 남다를 거라고 생각되는가 보다.


그럼 분들이 우리 집 책꽂이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책장도 소박하기 때문이다. 내 책은 절반 이상 주변에 나누어주었고, 아이들과 읽고 싶은 책들은 그때 그때 조금씩 채워지는 중이다.


읽고 싶은 책은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니  책장이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여기저기 쌓여있던 아이의 전집들을 정리하면 독서교실용 도서가 들어갈 자리도 충분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책꽂이를  늘릴 생각없다. 혹시 수업이  많아진다면 모를까. 아직은 시간 여유도 없지만.


살림을 늘리지 않는 데는  하나의 비밀 이유가 있다. 11년째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  나라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있다.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캐리어 하나만 들고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살림이 늘어봐야 나중에 정리하기 힘들테니 되도록 사지 고 있. 팔고  물건들은 벌써  마음속에 가격 책정까지 끝냈다.


요즘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요동친다. 하루에 5,000명씩 확진자가 생기는 호치민에서   외출 금지령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한국에 빨리 가고 어졌다.


우리 집 어린이는 신발을 신어본 게 일주일도 넘었다. 그나마도 폭우가 쏟아지던 일주일 전, 아무도 없을 것 같아 잠시 5분 정도 1층에서 비를 구경하다 온 게 전부였다. 생일파티도 가족끼리 했고, 놀이 친구도 엄마 아빠뿐이다. (이제 와서 형제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 두 친구가 정신없이 바쁠 때는 혼자 놀아야 하는 좀 안쓰러운 인생을 우리 집 어린이는 보내고 있다.


형편이 이러하니 학교 친구와의 영상 통화는 언제나 웰컴이다. 둘이 놀아봐야 수다 떨고 게임하기지만, 이 녀석에게도 숨통 트일 곳은 필요하다. 요즘 아이가 자주 물어본다.

“엄마는 어릴 때 친구 많았어? 몇 명이었어?”

“몇 명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친구는 많았어.”

“어떤 친구?”

“학교 친구들도 있고… 동네 친구들도 있었지. 근데, 너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못 만나는 거야. 코로나 때문에.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그치?”


어린이에게도 매우 답답한 코로나 일상이다. 캠프도  못 가고, 슬립오버도 못한다. 피아노 학원 끝나고 졸라서 잠깐 친구랑 뛰어놀던 꿀맛 같은 시간도 지금은 모두 멈추었다. “왜?”라는 아이의 질문에 코로나는 내 잘못이 아니지만 자꾸 미안해진다.


그런데, 이 작은 집에 최근 문제가 생겼다.

작은 집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살던 내가, 요즘은 이 집이 아주 많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아무리 걸어도 천보를 걷지 못한다. 물론 이건 내가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24시간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세 식구 일상에서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렇게 숨어들 공간이 없다는 게 이 집에 대한 나의 불만이다.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어린이는 학교에 가고,

나도 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서로가 얼굴 맞대고

하루를 나누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


처음 올 때처럼 캐리어 하나 들고 베트남을 떠나는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찾고 싶은 일상 두 번째.



매거진의 이전글 꼰대 엄마가 되지 말자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