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수 넓은 집에서 살다가 작은 집으로 이사를 왔다. 작은 집을 좋아하기도 했고, 여러 조건이 잘 맞기도 했다.
전에 살던 집은 넓었지만 아이가 커가면서 늘어가는 살림과 집주인 가구가 뒤섞여 여유 공간이 없었다. 작은 가구라도 하나 더 들어오면 천장에 붙이고 살아야 할 지경이었다.
예전 집보다 30 스퀘어미터 정도 작아졌지만, 좁다거나 불편하지는 않다. 그런 것에 무딘 사람이기도 하고, 짐이 많지도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만 신경 쓰는 내가 관리하기 딱 좋은 규모의 집이다. 방 3, 화장실 2, 베란다와 주방 옆에 세탁실도 있지만, 집 전체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집.
에어컨과 주방 인덕션, 붙박이 옷장과 신발장만 있는 노옵션이지만 별달리 가구는 사지 않았다. 이사 전에 열심히 버리고, 나눠주고 왔는데 다시 채워 넣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꼭 필요한 것만 갖추고 살기로 했다.
요즘 나의 목표는 거실 한쪽 벽면 비우기다. 2년만 살고 나가야지 했던 집에서 3년째 살다 보니 어느새 살림이 늘었다. 필요한 것만 남겼는데도 왜 이렇게 집이 꽉 찬 것 같은지 생각하다가 이유를 깨달았다. 간단했다. 집이 작기 때문이다. 이런.
그래도 줄여보기로 했다. 물려받은 전집은 1질만 남기고, 나머지는 방학 동안 읽고 정리하기로 아이와 이야기했다. 그러면 세 칸이나 비게 되는 책장을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는 일이 벌써부터 즐겁다.
“집에 책이 엄청 많을 것 같아요.”라는 얘기를 가끔 듣는다. 방송작가였고, 지금은 국제학교 다니는 아이들과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으니 우리 집 책꽂이는 좀 남다를 거라고 생각되는가 보다.
그럼 분들이 우리 집 책꽂이를 보면 실망할지도 모르겠다. 책장도 소박하기 때문이다. 내 책은 절반 이상 주변에 나누어주었고, 아이들과 읽고 싶은 책들은 그때 그때 조금씩 채워지는 중이다.
읽고 싶은 책은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 읽으니 내 책장이 더 늘어나지는 않을 것이고, 여기저기 쌓여있던 아이의 전집들을 정리하면 독서교실용 도서가 들어갈 자리도 충분하다. 그래서 당분간은 책꽂이를 늘릴 생각이 없다. 혹시 수업이 더 많아진다면 모를까. 아직은 시간 여유도 없지만.
살림을 늘리지 않는 데는 또 하나의 비밀 이유가 있다. 11년째 베트남에 살고 있지만, 나는 아직 이 나라에 마음을 두지 못하고 있다. 언제라도 기회가 된다면 캐리어 하나만 들고 미련 없이 떠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살림이 늘어봐야 나중에 정리하기 힘들테니 되도록 사지 않고 있다. 팔고 갈 물건들은 벌써 내 마음속에 가격 책정까지 끝냈다.
요즘은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요동친다. 하루에 5,000명씩 확진자가 생기는 호치민에서 집 밖 외출 금지령으로 집에만 있다 보니 한국에 빨리 가고 싶어졌다.
우리 집 어린이는 신발을 신어본 게 일주일도 넘었다. 그나마도 폭우가 쏟아지던 일주일 전, 아무도 없을 것 같아 잠시 5분 정도 1층에서 비를 구경하다 온 게 전부였다. 생일파티도 가족끼리 했고, 놀이 친구도 엄마 아빠뿐이다. (이제 와서 형제를 만들어 줄 수는 없다.) 그 두 친구가 정신없이 바쁠 때는 혼자 놀아야 하는 좀 안쓰러운 인생을 우리 집 어린이는 보내고 있다.
형편이 이러하니 학교 친구와의 영상 통화는 언제나 웰컴이다. 둘이 놀아봐야 수다 떨고 게임하기지만, 이 녀석에게도 숨통 트일 곳은 필요하다. 요즘 아이가 자주 물어본다.
“엄마는 어릴 때 친구 많았어? 몇 명이었어?”
“몇 명인지는 기억 안 나는데 친구는 많았어.”
“어떤 친구?”
“학교 친구들도 있고… 동네 친구들도 있었지. 근데, 너는 친구가 없는 게 아니라, 못 만나는 거야. 코로나 때문에. 빨리 코로나가 끝났으면 좋겠다, 그치?”
어린이에게도 매우 답답한 코로나 일상이다. 캠프도 못 가고, 슬립오버도 못한다. 피아노 학원 끝나고 졸라서 잠깐 친구랑 뛰어놀던 꿀맛 같은 시간도 지금은 모두 멈추었다. “왜?”라는 아이의 질문에 코로나는 내 잘못이 아니지만 자꾸 미안해진다.
그런데, 이 작은 집에 최근 문제가 생겼다.
작은 집에서 불편함을 모르고 살던 내가, 요즘은 이 집이 아주 많이 답답하다는 것이다. 집안에서 아무리 걸어도 천보를 걷지 못한다. 물론 이건 내가 하루 종일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24시간 같은 공간을 살아가는 세 식구 일상에서 가끔은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은데, 그렇게 숨어들 공간이 없다는 게 이 집에 대한 나의 불만이다.
아빠는 일하러 나가고,
어린이는 학교에 가고,
나도 내 일을 하고.
집에 돌아오면
서로가 얼굴 맞대고
하루를 나누는
일상을 되찾고 싶다.
처음 올 때처럼 캐리어 하나 들고 베트남을 떠나는 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