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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은 Aug 17. 2021

베트남에서 백신을 맞는다는 것은

"우리가 호치민에서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

"평생 백신 근처에도 못 갈 것 같은데..."


한국에 백신을 맞으러 간다면 간단하게 비행기 티켓과 두 나라 격리 비용만 계산기를 두드려도 천만 원은 훌쩍 넘는다. 게다가 열 살 어린이는 백신을 맞을 수도 없으니 한국 다녀오는 게 의미가 없을 것도 같다. 요즘처럼 호치민에서 매일 4천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는 상황에서는 한국으로 나가는 게 문제가 아니라, 마음대로 호치민에 돌아올 수 없다는 것도 문제다. 특별입국, 개별 입국의 수많은 서류를 넣어 승인을 받아야 하고, 그마저도 코로나가 심각해져 계속 미뤄지니 내 마음대로 떠날 수도 없는 것이 이곳에서의 현실이다. 


집 안에서만 생활한지도 벌써 3달이 넘었다. 

대중교통 운행 금지
6시 이후 통금
기본 식자재 배달을 제외한 모든 배달 금지(식당 시설 정지)
2인 이상 모임 금지
통행증 없이 군(구/동)과 군(구/동) 이동 금지

이런 강력한 사회적 거리두기에도 호치민 한 도시에서만 매일 4 천명씩 코로나 확진자가 나온다. 치료 시설도 병원도 수용인원을 넘긴 지 이미 오래됐다. 아직 입주가 시작되지 않은 아파트들이 하루 만에 임시 야전병원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아슬아슬한 호치민에서 1차 백신을 맞았다. 

백신 접종 날 아침 7:50에 방호복을 입은 아파트 직원이 건강 신고서를 집으로 가져다주었다. 백신을 맞는 게 정말 맞구나를 실감하며 반드시 '파란색 볼펜'으로 써야 한다는 신고서를 작성했다. 한국에서는 검정 볼펜을 쓰는 게 익숙했는데, 어느덧 이곳에서는 파란색 볼펜이 당연해졌다. 파란색 볼펜을 쓰는 이유를 찾아봤을 때 카피 방지였던 것 같다.  


이번 5차 백신 접종은 동사무소 게시판에 다음 날 백신 맞는 사람들의 리스트가 나오고, 자기 이름이 있으면 정해진 시간에 접종소로 가서 맞으면 되는 시스템이었다. 이전까지는 내국인만 가능했는데, 호치민 내 확진자가 너무 많아서 외국인들도 차별 없이 맞을 수 있었다. 

5차 접종이 시작되고 며칠 만에 아파트 단지 내 공원에 임시 접종 센터가 만들어져서 힘들지 않게 접종을 마칠 수 있었다. 10년 전 베트남 오기 전, 이 나라에 대한 이미지는 허허벌판과 마른풀이었는데, 지금은 대규모 아파트 단지도 들어설 만큼 많이 변했다. 

자~ 어서 찍어.

내가 맞은 백신은 Astra Zeneca. 모더나, 화이자는 꿈도 못 꾸고, AZ만으로도 귀한 백신을 맞았다고 생각하는데, 한국에서는 AZ를 선호하지 않아 폐기되는 것도 많다는 뉴스를 보며 이곳의 현실과 참 많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행히 기간 내에 백신 접종을 했지만, 다른 동네에서는 조건과 시스템이 달라 아직 백신을 못 맞은 교민들에게 중국 백신 시노팜(베로셀)을 맞으러 오라는 문자가 왔다는 걸 보면 AZ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베트남 의료시설과 위생에 대해 걱정하는 분들도 많지만, 무더운 야외라는 것만 빼면 접종 장소도 쾌적하고, 시스템도 안정적이었다. 저혈압을 걱정했는데, 날씨 탓인지 긴장을 많이 한 탓인지 혈압이 높게 나와 기다렸다가 다시 문진을 받아야 했지만, 모든 의료진과 스텝들은 친절했다. 베트남에 이런 친절함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말이다. 


주사 담당 의사는 백신을 보여주며 친절하게 설명해주었고, 사진 찍으라고 권해주는 덕에 생각지도 못한 백신 인증샷까지 찍었다. 따끔함도 없이 접종이 끝나자 의사는 어깨를 으쓱하며 "벌써 다 끝났는데?"라는 표정으로 웃어주었다. 남편은 할머니 의사에게 주사를 맞았는데 지금까지 맞은 주사 중에서 가장 안 아팠다고 칭찬을 했고, 같은 시간에 백신을 맞았던 지인은 의사가 긴장하지 말라며 영어로 자장가를 불러주었다고 하니 센스를 장착한 의사들만 그곳에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정말 내가 아는 그 베트남이 맞는지. 


이틀간 혹독하게 아팠고, 무지해서 더 아팠지만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어쨌든 백신을 맞고 나니, 코로나에 걸리면 어떠나 하는 불안함은 많이 사라졌다. 효과가 덜하든 어떻든 나에게는 최선이었고, 심리적 안정감도 얻었다. 2차 접종(제 때에 이루어질지는 모르지만)까지 마치면, 한국에 다녀올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도 생겼다. 


그러다가 며칠 전 지금과 같은 사회적 거리 두기를 한 달간 연장한다는 소식에 변한 것 없는 현실이 눈에 들어왔다. 지난주, 2 가정이 한국 귀국길에 올랐고, 어제도 3 가정의 귀국 소식을 들었다. 잘 버티다가도 이렇게 탈베트남 하는 사람들을 보면 마음을 붙들기가 쉽지는 않다. 일단 후퇴냐, 버티기냐. 그래도 일단은 남은 이들과 '존버'하기로 했다. 1차 백신도 맞았으니.


한 달을 또 조용히 지내며, 할 일을 찾아봐야겠다. 

여전히 시간은 흘러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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