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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Aug 25. 2020

울지 마

2016년의 짧은 단편 소설


 꽤 많이 달려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럼에도 아직 내 눈 앞의 길은 끝날 생각이 없었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휘슬 소리도 들려오지 않았다. 내 옆의 사람들이 크게 들이쉬고 내쉬는 숨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얼마나 더, 더 달려야 할까. 나는 왜 이 거리를 쉬지 않고 달려가고 있는 걸까. 나도, 모두들. 다. 나는 지금 42.195km의 거리를. 달리고 있다.


 마라톤 나갈래? 뜬금없는 말. 약간 웃으며 되물었다. 마라톤? 그러자 너는 고개를 두어 번 끄덕이더니. 나는 못 나가니까, 네가 대신 나가줘. 하곤 생글거렸다. 그 때 까지도 장난이라고 생각했던 나는 까짓, 마라톤 뛰어주지 뭐. 하고 쉽게 대답했다. 너는 더 환하게 웃었다. 나는 네 웃음소리도, 네 웃는 얼굴도 하나하나 빠짐없이 좋았다. 진부한 표현을 빌려 써보자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어디하나 안 예쁜 구석이 없었다. 그리고 한참이나 넌 마라톤에 대해 주절주절 이야기했다. 5km, 10km 같은 짧은 마라톤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네 말에 그렇게 짧은 거리를 뛰려면 뭐하러 뛰냐고 조금 투덜댔고, 너는 그것도 짧은 거린 아니라며 나를 조금 혼냈다. 제일 긴 거리가 어떻게 되냐고 까불며 묻는 내 말에 너는 42.195km. 하고 대답했다. 실감이 안 나는 숫자였고 한참을 벙쪄있었다. 그런 나를 보다니 왜 뛰어준다며, 너무 힘들거같아? 하더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내 눈을 한참 바라보던 너는.


그러니까 뛰어줘. 이제 난 이불 밖으로 나가는 것도 힘드네.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다. 그렇게 말하는 네 모습이 너무 안타깝고 애처롭기만 해서.


 재발이라고 했다. 뜬금없이 어느 날. 아 정확히는 우리가 만난 지 삼 년이 좀 넘었었고, 내가 결혼하자며 프로포즈를 했던 날. 꽃다발과 반지를 내밀며 이렇게밖에 못 해주지만 그래도 나와 살아달라고 고백하는 내 모습을 보고 한숨을 내 쉬었다. 사실 그 때, 난 너한테 차인 줄만 알았지. 그런데 네가 한 말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나 백혈병이래, 두 번째 재발이야. 그렇게 말하는 널 제대로 볼 자신이 없어서 고개만 떨구고 장난치지 말라며 평소처럼 네 팔을 툭툭 쳤다. 프로포즈 받아주기 싫은 거면 장난하지 말고 말하라고, 아직 부담스러우면 다음에 다시 고백하겠다고. 그렇게 말하는 내내 눈물이 뚝뚝 쏟아졌다. 장난이 아니라는 것은 이미 내가 네 팔을 건드릴 때 부터 알았다. 정확히는 알아 버렸지. 너는 바들바들 떨고있었다. 넌 항상 진지한 얘기를, 그것도 안 좋은 이야기를 할 때면 바들바들 떨었다. 비맞아 버려진 강아지처럼.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고개를 들었을 때, 네 얼굴은 눈물 범벅이었다. 나보다 훨씬 더. 훨씬 많이. 내가 고개숙여 눈물 흘리는 동안 너는 소리없는 눈물을 숨겨가며 한참을 그렇게 울었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미어졌다. 너는 잔인했다. 동시에 그만큼 나를 사랑했겠지. 청혼을 하러 갔던 나에게. 장미꽃을 받고 기뻐할 널 떠올리며 갔던 나에게. 너와의 행복한 미래만을꿈꾸고 생각하던 나에게. 너는. 너는.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너는 입원했다.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위해서였다. 항암치료를 시작하기전에 머리를 밀어야 한다고 했다. 듬성 듬성 빠질 머리들이 아쉬운지 한참을 만지작 대더니.


아깝다. 머리 자르는 거.


 누구보다 아쉬울 네 마음이 안타깝고 예뻐서 어찌 할 바를 몰랐다. 시덥잖은 농담을 던지기엔 네 표정이 너무 어두웠고 그래서 쉽사리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평생과도 같은 침묵이었다. 오 분도 안 되는 짧은 시간이었지만 흘러가는 시간이 여전히 야속하기만 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흐른다. 시간에게 자비를 바랄 수 없음은 누구에게나 공평히 주어지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왔던 나는 네가 병에 걸렸다는 걸 , 네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듣고 나서부터 야속하기만 했다. 그럼에도 내가 너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았다. 그렇게 채 몇 분이 지나지 않아 너는 다시 입을 열었다.


네가 긴 머리가 좋다고 했었잖아.


쿵 하고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내가 좋다고 이야기해 주어서 그래서 삼 년을 길렀던 네 머리. 그리고 내일이면 이제. 내가 좋아하는 긴 머리를 못 보여준다는 네 마음은 또 얼마나 고맙고 예쁜지. 그렇게 한참을 보다가 우리 사진 찍을까? 하고 물었다. 너는 또 그렇게 활짝 웃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병원 안에서의 갑작스러운 사진 촬영은 허술하긴 해도 구색은 갖추어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는 가벼운 화장을 하고 머리를 예쁘게 다듬고, 환자복을 벗고 침대에 앉으니 그럴싸해 보였다. 마치 날이 다 지나고 조금 있으면 퇴원 수속을 밟을 것 처럼. 너는 사진기를 보고 활짝 웃었다. 언제나 그랬듯이. 오른쪽 뺨에 살짝 패여있는 보조개가 예뻤다. 삼각대를 세워놓고 타이머를 맞추고 나니 카메라가 삐빅대는 소리를 두어 번 내더니 찰칵 하고 사진이 찍혔다. 내가 미처 앵글 안으로 다 들어가지 못해 약간은 우스꽝스러운 모습으로 사진이 남았다. 그 후로도 어색하게 두어 번 더 사진을 찍었다. 많은 사진을 같이 찍었지만 너는 처음에 찍은 사진이 가장 마음에 든다며 손에 꼭 쥐고 놓지를 않았다. 심지어 그 못생긴 사진을 서랍 속에 넣어놓고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양 항상 꺼내어 봤다. 네 병실 침대 오른쪽 벽에는 내가 너에게 주었던 빨간 장미꽃을 말려 거꾸로 달아 놓았고, 네 침대 왼쪽에는 내가 네 생일에 선물했던 미니 스탠드가 있었고, 네 옆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내가 있었다. 일을 정리하자 마자 나는 항상 네 병실로 향했다. 하루라도 더 네 얼굴이 보고싶었다. 머리를 밀던 날에는 내가 일찍 가지 못해서 병실에 도착하니 넌 머리가 없다며 부끄러워했다 .


이거 봐 스님 같지. 모자도 없어서 부끄럽네.


 내 손을 잡아채 네 머리에 올리더니 한참을 쓰다듬게 두었다. 그렇게 얘기하며 하하, 하고 멋쩍은 웃음을 터뜨리는 모습이 또 예뻤다. 그리고는 네 얘길 천천히 시작했던 것 같다. 사실 나와 결혼하게 된다면 토끼를 기르고 싶었다는 이야기. 하필 왜 토끼냐고 묻자, 토끼는 작고 약하니까. 지켜줄거라며 웃었고. 식물을 많이 기르고 싶다고 했다. 화분을 여러 개 사서 놓고 싶었다고. 물론 토끼가 다 뜯어먹을 거니까 토끼가 먹을 수 있는 풀들로 길렀으면 좋겠다는 이야기. 그리고 작은 침대를 하나 사서 놓고 비 오는 주말이면 나와 나란히 누워 책을 읽거나, 영화를 보거나, 손을 붙잡고 지칠 때 까지 입을 맞추거나 하고 싶었다는 이야기. 산 보단 바다를 좋아하는 나를 위해 주말마다 차를 몰고 바다에 가고 싶었다는 이야기. 그래서 면허 준비를 몰래 하고 있었는데 다신 못 보게 되어서, 그리고 지금까지 말한 것들 모두. 꿈꿀 수 밖에 없어서. 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이야기가 다 끝나갈 즈음 내 얼굴은 이미 울음 투성이었다. 미안해. 미안해. 너에게 좋은 추억 하나 더 쌓아주진 못할 망정 자꾸 힘든 일들만 쥐어주는 것 같아서. 그동안 그 흔한 장미꽃 하나 제대로 쥐어주질 못해서. 그냥 너와 함께할 수 있었던 ‘하루’ 들이 소중한 줄도 모르고 그렇게 내내 너를 재촉하기만 해서. 그게 너무 미안해서 한참을 울었고. 앞으로의 미래에 함께 할 수 없음에 미안해서. 네가 소중해서.


네 팔에 꽂힌 주사바늘의 개수가 하나 둘 늘어가고, 네가 더 말라서 겨울 바람을 맞은 은행나무 보다 더 야위었을 때. 앙상한 손가락으로 나를 붙들며 그제서야 네 진짜 꿈에 대해 말해줬다. 사실 누구보다 빨리, 멀리, 오래 달리고 싶었다고. 달리는 순간의 기대감과 뜨거운 설레임이 좋았다고. 고등학교 내내 육상부였다며 나 진짜 빨랐어 내가 육상부의 치타였어, 하고 우스갯소리를 하기도 했다. 너는 점점 말라갔지만 개의치 않는 듯이 더 밝게 굴었다. 그렇게 이야기하다가도 문득 문득 비치는 너의 어두운 모습이 슬펐다. 근데 이젠 걷는 것도 힘드네. 침대 아래도 무서워.


 가끔 너는 언제 밝았냐는 듯이 금새 고개를 숙이고 울 것 같은 표정을 했다. 그럴 때면 나는 항상 어찌해야 할 지를 몰라 갈팡질팡 거렸고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너는 고개를 들어 다시 웃었다. 네 웃음에 나는 그제서야 안도했다. 생각해보면 이미 나는 아무것도 해줄 것이 없었다. 그저 평소와 다름없이 네 옆에서 웃음짓고 이야기를 들어주다 고개를 끄덕이는 정도였다. 가끔 네 손을 잡아주고 회사 이야기를 하고 사랑한다고 매 순간 속삭이고.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그 정도였다. 그래도 너는 항상 씩씩하게 웃으며 괜찮다고 했어. 그래서 너에게 뭐라도 하나 추억을, 좋은 기억을 안겨주고 싶었다.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좋았다. 그리고 네가 어느 날 갑자기.


마라톤 나갈래?


뜬금없는 말. 주절거리며 이야기하다가 나는 까짓 뛰어줄게. 하고 이야기했고. 그 날 만큼 네 환한 웃음을 본 적이 없었다.


 마치 마라톤 시작의 총성처럼 너는 그 말을 던지고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다. 이미 앙상한 손목은 정말 바스라질 듯이 말라갔고 링거 줄을 꽂았던 구멍은 아물 생각이 없는지 점점 동그란 공허로 남았다. 그 시기의 너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은 것 처럼 서서히 말라갔다. 하루가 다르게 말수가 적어졌다. 이제는 밥을 삼키지도 못했고 먹은 것도 없으면서 자꾸 게워내기 바빴다. 그렇게 일주일 하고 조금 더 지나서 너는 무지개다리를 건너갔다.




 의사는 네가 이정도 산 것만 해도 기적이라고 말했다. 내 고백 후에 3개월이 채 안 지났을 때였다. 너는 마지막으로 단 한번이라도 좋으니 달려보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언제라도 좋으니. 달리다 쓰러져 죽어도 좋으니 달리고 싶다고. 다리가 부러진 것도 아닌데 걸을 수도 없다는 게 너무 분하다고. 그 얘길 하다 엉엉 울었었다. 그리고 오늘, 그 말은 너의 마지막 말이 되어있었다. 너의 마지막 말이.


 그래서 달리기로 했다. 너를 위해서. 결코 짧은 거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훨씬 멀다는 것도. 사실 마라톤 선수들도 페이스메이커와 함께 달리는 거리인 것도. 그러나 나는 너와 둘이 달리고 싶었다.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려주고, 누군가의 응원을 들려주고, 조금 쉬더라도 다시 일어서 달리면서 쿵쾅거리는 열정과, 희열과, 삶의 의미를 찾아주고 싶었다. 그리고 길고 긴 마라톤이 끝나면 너에게 전하고 싶은 말도 있었다. 단 한 마디였다. 결혼해달라거나 나와 평생 건강하게 살자거나 하는 대단한 말들이 아니었다.


울지 마.


단 한 마디. 그 한 마디 뿐이었다.


42.195km. 너를 품고. 나는 끝이 보이지 않는 이 거리를 달린다. 쿵쾅거리는 소리와, 사람들의 응원과 함성과 열정과. 네가 동경하고 사랑했던 이 떨림 속에 달린다. 한 번도 너와 온 적 없었던 낯선 길 위를 하염없이 달린다. 널 위해서. 그리고 나의 사랑을 위해서. 한 마디를. 떳떳하게 너에게 전하기 위해서. 이젠 울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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