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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디디 Jul 14. 2021

혼자 방구석에서 맥주를 마신 날

제가 행복하기를 당신이 빌어주세요.

 날이 더워졌다. 너무 습하고 찝찝해서 하루에도 샤워를 두 번은 한다. 거짓말 안 보태고 운동 끝나고부터 지금까지 몸을 움직이지 않고 그냥 앉아있어도 목 뒤에 땀이 축축하다. 여름이 그렇다. 이번 여름이 유독 더 그렇고. 앞으로의 여름에는 또 "아 올해가 제일 더운 것 같다."고 하겠지. 과거의 기억은 그립지만 어느새 없던 일처럼 바래지니까. 특히 어떤 계절의 온도나 풍경 같은 것들은 더더욱. 


 날씨는 점점 습해지고, 나는 점점 우울해졌다. 근래에. 비는 내릴 것 같다가도 내리지 않아서 괜히 비를 기다리던 몇몇 사람들을 애타게 만들었다. 쏟아질 거라던 비는 잠든 새에 어쩌다 한 시간정도만 깔짝 쏟아졌고, 애매하게 쏟아진 비는 습한 공기만 남겼다. 당연한 일이었다. 차라리 확 쏟아져버리면 좋으련만. 항상 그런 생각을 했다. 차라리 쏟아져버리면 좋으련만. 

 내가 점점 우울해진 것은 비단 날씨 탓만은 아니었다. 마지막 연애로부터 6개월, 그리고 마지막 직장으로부터도 6개월. 스스로도 점점 지쳐갔다. 그만 생각하고 싶은 것들은 더운 날씨와 습한 공기를 좋아해 틈만 나면 파고들었다. 예를 들어 경찰 공무원 준비를 하며 힘들었지만 지금까지 했더라면, 나 그래도 뭔가 해내지 않았을까? 하는 기분. 적어도 아무것도 해내지 못하는 지금의 나보다는 나은 내가 되지 않았을까? 이런 기분이 들고,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자꾸 합격한 친구들 사이에서 연락이 오가기 때문이겠지 싶었다. 실제로 그랬다. 내가 아무리 바른 사람이더라도 자격지심이 아예 없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리고 웃긴 것은 나는 애초에 바른 사람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니 연락을 할 때 마다 몰아치는 자격지심과 나에 대한 자괴는 숨길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아무리 숨기려 해 봐도 불쑥 튀어나왔다. 나는 애정어린 마음으로 내게 연락해준 누군가가 내 자격지심으로 인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다는 사실이 조금 무서워 졌고, 그래서 모두와 연락을 그만뒀다. 지난 달의 일이다. 그간 만났던 모든 인연이 고맙지만, 솔직히 순수하게 응원하기가 어려워서. 그것은 조금 뒤쳐진 내 상황과도 관련 있는 것이었다. 

 60번의 지원, 49번의 부재. 열한 번은 연락이 왔으니 좋은 것이 아니냐 싶지만, 11개 중에 제대로 된 회사라고 말할 수 있는 곳은 아마 단 한 개도 없었을 것이다. 여기에 내 미래를 전부 맡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비전이 없는 곳은 싫다는 고집 때문일까. 아니면 제대로 된 일을 좀 하라던 주변 사람들과 엄마의 말 탓일까. 아마 그 어느것도 아니라 그저 나의 '다른 사람들한테 얕보이기 싫다.'는 마음일 것이다. 누군가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으면서 동시에 들키기를 바라는 마음. 나도 알고는 있다. 내가 가진 마음은 결국 포장해봐야 자격지심 밖에는 안 된다. 수많은 부재 사이에 남겨진 내 마음 하나는 슬프거나 외롭거나 실망한 것 대신 '누군가보다는 나아야 한다'는 자격지심일 뿐이다. 그 점이 가장 슬프다. 


 또 나를 제외한 모두가 행복하고 정상적이며 건강한 연애의 양상을 보이는 것 조차 슬펐다. 나의 근래 만남과 연애는 별 것 아니었으며, 심지어 일회성이 관계도 적지 않았는데. 담배연기처럼 날아가는 인연 대신 누군가와의 견고한 끈으로 이어져있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느꼈다. 그리 초조하지 않은데 초조해졌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웃긴 것이다. 나는 이제 고작 연애를 쉰 지 6개월밖엔 안 됐다. 죽을만큼 외롭거나 슬픈 상태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조해진다. 남들에 비해 가진 것이 없다고 느껴서. 남들에 비해 내가 이룬 것이 없다고 느껴서. 남들에 비해 내가 별 것 아니라고 생각해서. 남들에 비해. 남들에 비했을 때. 남들에 비했을 때 말이다. 남들에 비하지 않으면 이러한 생각도 없을 것을 모르고. 남들에게만 비하고 있다. 여전히. 이 글을 적는 지금까지도. 

 그래서 차근차근 생각해봤다.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나는 지금 어떠한 프로젝트를 함께 끌고가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나의 꿈을 위해 차근차근 글도 적고 있으며, 마냥 놀기보다는 남는 시간에 자기소개서 한 줄이라도 더 적기 위해 노력한다. 이모티콘도 한 번은 내고 싶어 차근차근 준비중에 있고, 매일매일 저녁에 뭘 하면 좋을지를 생각하며 가족들을 위해 저녁 밥도 빠짐없이 차린다. 백수는 아니지만 반 백수로 살고 있으니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했을때 그래도 나 꽤 잘 지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에게 비하지 않으면 된다. 남들에게 내가 비해 봐야 남의 인생이지 나의 인생이 아니니까. 그들의 행복은 그들의 행복이지만, 나의 행복은 아닌 것 처럼. 어쩌다 방구석에서 마신 맥주 몇 잔이 생각을 정리해 줬다. 대단한 일이 아니었다. 나를 좀 비우고, 다시 생각해보기로 한 것이다. 




 삼 일 내내 찾아 헤맨 '곰표'맥주를 먹었다. 근처 편의점에 들어오지 않아 발만 동동 구르다가 오늘 우연히 들렀을 때, 맥주 있어요. 하는 사장님의 말에 쫄래쫄래 쫓아 들어갔다. 며칠을 어떨까 먹고싶다 생각하던 맥주가 눈앞에 있으니 기분이 좋아서 있는 걸 다 쓸어서 구매했다. 물론 장 보라고 준 엄마 카드로 구매한 거지만. 엄마한테는 빠르게 이실직고하고 용서를 구했다. 엄마는 밥값 낸 거다! 하며 오히려 좋아했다. 그 날 저녁에는 백숙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더운 날씨에 더운 불 앞에서 두 시간정도 씨름하며 닭을 삶고 손질하고 요리로 내놓은 나에게 주는 상이나 다름없었다. 맥주 네 캔. 총 만원짜리 상. 그러나 거기 담긴 엄마의 애정과 나에 대한 관심은 보다 값진 것이라고 생각했다. 

뒤쪽에 초점이 잡히지 않은 우리 집 강아지가 얌전히 누워 있다. 

 솔직히 얼마 전까지 친구들과 모여 술을 먹어도 뒤끝이 좋지 않아 '두번다시 술 먹지 말자'는 생각만 하게 만들었는데, 혼자 맥주 네 캔을 방구석에서 홀짝이던 날은 괜찮았다. 오히려 좀 더 취해도 괜찮겠는데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여전히 나름대로 잘 살아가고 있음을 상기시키게 된 저녁이어서 그랬던 것 같다. 


 아무리 생각해도 인생은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습니다.'하고 끝나지 않는다. 행복해지는 방법은 여러가지고, 행복해진다고 해서 닫힌 결말로 인생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살아봐야 아는 거지. 살아봐야. 아직 병아리만큼 살아본 내가 알 수 있는 거라고는 고작 이별은 쓰고 사랑은 달다! 그리고 소주는 쓰고 맥주는 쌉쌀하다! 이 정도니까. 섣부르게 나를 판단하고 남을 판단하지 말자. 맥주 네 캔이 준 교훈. 내가 나의 행복을 빌기가 어렵다면 남에게 부탁해보자. 내가 행복하기를 네가 빌어주겠니? 하고. 


20210714

저도 행복하기를 빌어 주세요.

제 앞 날을 저는 잘 모르겠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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