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안목은...
되돌아보면 큰 수익은 언제나 개별 종목에서 나왔다. 그러나 큰 손실을 본 것도 개별 종목이었다. (중국 ETF는 예외. 흑.)
이제, 손실을 피해야 한다는 압박이 강해지다 보니 아무래도 ETF 쪽에 더 관심이 생긴다. 치기 어린 2-30대 시절에는 내가 세상의 이치를 꿰뚫고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는데, 나이가 들며 점점 모든 것에 대해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고, 알 수 없다는 쪽으로 바뀌고 있으니 개별 종목에 투자하기가 꺼려진다. 퇴사 후 업계 소식에 무뎌진 것 역시 한몫을 한다.
십 수년 전부터 장기적으로 크게 성장할 거라고 생각한 지역이 있었다.
베트남, 인도네시아, 폴란드 - 현지 업체와 협업을 하며 출장을 다녀보니 크게 성장할 나라들이라 느꼈다.
인도, 중국 - IT 기업 성장세가 크고, 우리나라보다 기초 분야도 탄탄하고, 인구도 많고, 해당 국가 출신들이 미국 IT 분야를 주름잡고 있으니.
아프리카 - 인구도 많고, 자원도 많고, 대륙 크기도 크고, 지구상에서 성장 여지가 남아있는 마지막 지역이 아니겠나 싶었다. 중국 지수 ETF를 매수했던 이유 중 하나가 중국이 아프리카에 적극 투자한다는 사실 때문이기도 했다.
이제 와 이들을 되돌아보면 대부분 성과가 지지부진하다. 10년이면 충분히 장기적인 기간인데도 주가지수 관점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나는 위에 언급한 지역이 (중국 제외) 여전히 유망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왜 성장하지 못했을까? 실제로 성장을 못한 걸까, 투기 자본의 흐름 때문에 주가지수의 왜곡이 있던 걸까? 모르겠다.
인도, 인도는 위에 언급한 나라 중에 유일하게 꾸준히 성장한 나라다.
미국 유수 기업에 인도 출신 CEO들이 많다. 이미 20년 전부터 인도인이 없으면 미국 대학원 연구실이 안 돌아간다는 말이 있었다. 이들은 영어로 소통하는데도 문제가 없고, 동양인과는 달리 특유의 자신감 넘치는 태도가 있어 문화적으로도 어울리기 쉽다. 인도공대의 명성은 말할 필요가 없고, 인적자원이 워낙에 훌륭하니 나라가 발전하지 않을 리 없다 싶다.
나머지 국가들은 비슷하게 그저 그렇다.
아프리카는 아는 바가 전혀 없어서 10년 전에도 차마 ETF 매수를 해야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느낌상 꼭 폭풍 성장할 것만 같은데 정말 내 느낌이 맞을지 궁금하여 지수는 계속 보고 있었다. 결과는 보다시피. 아프리카 역시 여전히 발전가능성이 큰 지역이라 계속 생각은 한다. 무엇보다도 지금 인구가 증가하는 유일한 대륙이 아닌가. 2050년에는 청년 3명 중 1명이 아프리카인일 것이라 하니. 그러나 단기적으로 이 지역에 변화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중국은, 음, 마음 아프니까 제외하자. 정치적 리스크와 예상되었던 인구구조 변동을 너무 간과했던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도 전혀 감이 안 온다.
이상의 현상을 어떻게든 해석해 보려고 머리를 굴려 보았다.
인당 명목 GDP 순위는 현재 다음과 같다.
한국 > 폴란드 > 중국 > 인도네시아 > 베트남 > 인도 > 아프리카
저개발 국가일수록 상승여력이 클 것이다,라는 가정으로 인도를 설명하기에는 베트남과 인도네시아를 이해할 수 없다.
GDP와 주가지수가 장기적으로 일치한다고 가정하고, 인당 명목 GDP를 normalize 하여 10여 년간의 그래프를 그려보았다. 어쨌든 인도의 성장세가 최상위를 차지하고는 있다. 인도와 인도네시아가 가장 성장했고, 나머지는 한국보다도 아래에 있으니 주가 성장이 좋지 않았던 게 당연하겠다고 납득해 보자.
그러면 여기서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차이가 무엇일까 생각해 보다가 불평등지수를 찾아보았다. 상위 0.1%의 소득 비중을 확인했다. 세계적인 기술 선도 기업이 대부분의 부를 독식하기 때문에, 성공한 초거대 기업이 있는가 여부가 암묵적으로 이에 반영될 것이라 생각해서이다. 물론, 기술/제조 기업이 아니라 부동산 부자 등이 나타나서 부를 독식했다면 이야기가 다르겠지만.
인도는 최근 데이터가 비어있긴 한데, 미국과 버금가는 불평등한(?) 나라이며 급격히 부가 쏠리고 있다. 반면 인도네시아는 훨씬 아래에 있다. 물론 불평등 지수를 가지고 거대 기술 기업이 존재할 것이라 단정하기에는 영향을 미치는 다른 조건들이 많이 있다. 그리고 일반적으로 빈곤율이 높고 빈부격차가 크면 건전한 경제구조라 할 수도 없다.
어쨌든 위의 두 그래프를 종합하여, 인도와 인도네시아의 국민들이 상대적으로 빠르게 부를 쌓고 있는데, 아마도 인도에는 부를 독점하는 거대 기업이 더 많이 있는 것 같다, 정도의 해석을 해본다. 마침 글로벌 시총 100대 기업을 보니 중국과 인도 기업이 올라 있고, 폴란드, 인도네시아, 베트남 기업은 없다.
다시 한번 왜 내 예상만큼 저 지역들이 성장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세계화된 현재 지형에서 경제적 정치적 기득권을 뒤엎는 일이 너무 어려운 것은 아닐까. 혹시 글로벌 대기업들에게 저렴한 노동력을 제공하고 물건을 사주는 시장의 역할로만 고착되는 것이 아닐는지. 그리고 정치/사회적으로 얼마나 안정되고 투명한지도 무척 중요한 것 같다. 이는 국가의 방향을 결정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회가 불안정하면 가장 유능한 인재들이 미국이나 다른 선진국으로 빠져나가버려 인적 자원을 잃기 때문이다. 그전에 수준 높은 교육 시설이 필요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근래에 해당 국가들을 방문해보지 않아 실제 그 나라 국민들의 삶이 어떻게 바뀌었는지는 모르겠다. 다시 가보고 싶다. 언제쯤이 될는지.
오늘의 결론은, 내 안목으로는 ETF를 고르는 것조차도 녹록지 않다는 것이랄까.
데이터는 아래 사이트에서 가져왔다.
https://etf.com
https://www.imf.org
https://ourworldindata.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