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가나자와에서 기차를 타고 다카야마로 갔다. 다카야마시는 2005년 2월 주변 9개의 정촌을 합병하여 오사카부나 가가와현보다 넓고 도쿄도에 필적해 일본에서 가장 넓은 시가 되었다. 그런데 산림면적이 전체의 92%나 되어 실제로 주거 면적은 넓지 않고 인구는 8만 명 정도에 불과하다.
다카야마 역에 도착하자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예약한 호텔은 걸어가기엔 약간 멀었는데 그렇다고 버스나 택시를 타기에는 너무 가까웠다. 우리는 우산 하나에 의지해 빗속을 뚫고 호텔로 걸어갔다. 인구가 적은 도시답게 가는 길에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지나가는 자동차도 별로 없었다. 그렇다고 시골도 아닌데 정말 조용한 도시였다.
호텔에 도착해 짐을 내려놓고 배가 너무너무 고파서 근처 밥집으로 갔다. 할아버지가 하는 식당이었는데 무슨 모임이 있었는지 대낮부터 나이 좀 있으신 분들이 모여 맥주를 마시면서 이따금 주인 부부와 얘기를 하고 있었다. 그냥 동네 식당 같은 분위기였다. 주문한 음식이 나왔는데 일본답지 않게 양이 어마어마했다. 일본은 반찬이든 밥이든 맛보기용 정도밖에 안 줘서 메뉴 하나를 시키면 배가 부르다기보다는 허기를 해결했다 정도밖에 되지 않는데 이곳에서는 정말 더 이상 음식을 목 안으로 욱여넣기 어려울 정도로 배가 부르게 먹었다.
그렇게 점심을 먹고 히다 민속촌으로 갔다. 거리가 제법 있었는데 마땅히 갈 수 있는 교통편도 없고 해서 슬슬 걸어가기로 했다. 한 30분을 걸었을까, 부슬부슬 내리던 비가 제법 굵어졌다. 그러다 민속촌 입구까지 오자 거의 퍼붓기 시작했다. 날씨 때문인지 몰라도 민속촌엔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중국계로 보이는 두세 팀 밖에 없었다. 그래서 아주 천천히 둘러볼 수 있었다.
히다 민속촌은 히다 지역의 갓쇼즈쿠리 전통 가옥을 보존하고 있으며 전통 공예나 생활 용품 등을 전시해 놓은 곳이다. 원래 이곳에 있던 마을은 아니고 댐 건설 때문에 수몰될 민가들을 이축하여 보존하고 있는데 1959년에 개관하였다. 약 30동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는데 이 중 4개 동은 일본 중요문화재, 7개 동은 기후현 지정 중요문화재로 등록되어 있다. 히다 지방은 양잠과 임업, 염색, 세공 같은 산업으로 유명하였다고 하는데 이에 사용했던 전통 도구들을 일부 만져볼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런저런 것을 다 떠나서 그냥 보기에도 아름답다.
우리는 전날 이미 시라카와고에서 갓쇼즈쿠리를 실컷 보았지만 이곳에 와서 본 갓쇼즈쿠리도 또 재미있었다. 시라카와고는 실제로 벼농사를 짓는 평지의 마을이라면 이곳은 산속에 재현해 놓은 마을이라 느낌이 달랐다. 민속촌에서는 시라카와고에서처럼 사람이 실제 생활하고 있는 집이라는 느낌은 없었지만 시라카와고에서는 볼 수 없는 각종 생활 도구들을 볼 수 있고, 또 여러 갓쇼즈쿠리에 들어가 걸어볼 수도 앉아서 한참 있을 수도 있었다.
민속촌에 들어오면 아주 큰 연못이 나온다. 연못 맞은편에 아주 큰 갓쇼즈쿠리가 있는데 연못에 어우러지는 풍경이 시라카와고와는 또 다른 매력이 있었다.
연못에는 일본 연못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자라와 잉어도 있었지만 오리 식구들이 있었다. 자연스럽게 흘러들어온 것인지 일부러 키우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오리는 사람을 피해 다니지는 않았고 그냥 무시하는 것에 가까웠다. 중간에 오리나 잉어에게 줄 수 있는 빵 비슷한 먹이를 파는데 자율적으로 돈을 내고 가져가는 시스템이다.
민속촌 부지가 꽤 넓고 볼게 많은 데다가 산속에 있어서 관람하는 데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 절반쯤 보았을까 싶었을 때 비가 좀 잦아들었다. 민속촌에서 나와 호텔로 갈 때는 버스를 타고 갔다. 구간과 관계없이 동일 요금이었는데 외국인 관광객이 많은지 기사분이 영어를 꽤 잘했다.
호텔로 돌아와 온천을 했다. 우리가 묵은 호텔은 4성급이었는데 1박에 1만 엔 정도로 아주 싸지는 않지만 금요일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괜찮은 가격이었다. 거기에 맥주나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는 데다가 조식도 꽤 괜찮았고, 무엇보다 스파가 훌륭했다. 가족탕을 쓸 수도 공용탕을 쓸 수도 있는데 가족탕은 프라이버시가 지켜질 수는 있지만 아주 좁았고 공용탕 시설이 더 좋았던 것 같다. 탕에서 나오면 빙과류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어서 더 좋았다. 우리는 이 스파를 무려 세 번 이용했는데, 저녁에 이용했을 때에는 하필 한국인 젊은 남성 둘이 어마어마하게 떠들고 있었다. 온천을 이용해 본 경험이 별로 없는지 엉덩이 깔개를 탕에 둥둥 띄워놓고 자기들끼리 장난을 치는데 보는 사람이 다 민망할 정도였다. 한국에서도 저러고 놀까 싶었다. 이왕이면 다른 한국 출신 여행자에게 피해가 가지 않도록 일본어나 다른 나라 언어로 떠들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온천으로 피로를 풀고 나서 옛날 거리로 갔다. 다카야마는 두 개 지역이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로 지정되어 있는데, 소위 ‘리틀 교토’로 불린다. 리틀교토는 한 58,000개쯤 있지만 정작 교토에는 이런 한적한 옛날 거리가 없다. 옻칠한 검은 목재 주택들이 줄을 지어 있는데 고풍스럽고 멋있다. 우리가 리틀교토를 처음 봤으면 아주 흥미가 있었을 것 같은데 하도 많이 봐서 좀 흥미가 떨어지기도 했고, 사실 이곳이 관광객이 아주 많은 도시가 아니라서 해 질 녘쯤이 되니 이미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았다. 관광객이 많지 않았는데 그래도 유명 맛집에는 사람이 제법 몰려있었다. 특이한 것은 관광객 중 아시아 사람은 많지 않고 다른 지역과 달리 서양인이 많았다는 것이다. 아마 이곳이 서양에는 많이 소개되었던 것 같다.
여기저기를 산책하다가 미야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에서 재미있는 동상을 발견하였다. 밤에 보면 좀 무서울 수도 있겠다.
저녁이 되어 배가 고파 밥집을 찾는데 7시가 되기도 전이었는데 문을 연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무리 관광객이 적더라도 동네 주민이라도 갈 것 같은데 다들 일찌감치 문을 닫았다. 구글 맵에 영업 중이라고 되어 있어도 막상 가 보면 문이 닫혀있었다. 한참을 헤맨 끝에 겨우 라멘집 하나를 찾아서 허기를 해결할 수 있었다.
아침에 일어나 온천을 하고 조식을 먹었다. 일본은 샤워보다는 탕에 몸을 담그는 목욕문화가 있어서 그런지 온천이 있는 호텔이 많아서 좋다. 다카야마 역으로 걸어가 나가노 역으로 갔다. 가나자와에서 다카야마로 갈 때 도야마 역에서 한 번 갈아타야 했는데, 다카야마에서 나가노에 갈 때도 도야마 역에서 갈아타야 했다. 그래서 결국 도야마 역만 두 번 가게 되었는데 정작 역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은 없다. 일본은 철도망이 촘촘하지만 호쿠리쿠 지역은 우리나라 강원도와 같이 산림이 많아서인지 이렇게 뱅뱅 돌아가야 하는 때가 있다.
나가노는 1998년 동계올림픽 개최지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곳이다. 나가노 현은 재미있는 볼거리들이 참 많은데 정작 나가노현의 중심도시인 나가노시는 특히 동북아 문화유산에 익숙한 우리 입장에서는 딱히 대단한 흥밋거리가 없다. 그럼에도 나가노 역에 숙소를 잡은 이유는 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동하기가 편해서였다. 패스권이 있어 교통비에 부담이 없으니 이렇게 교통이 편한 곳에 자리를 잡고 주변 지역에 당일치기로 왔다 갔다 할 수 있으니 좋다.
숙소를 나가노역 바로 앞으로 잡았기 때문에 재빨리 짐을 맡겨놓고 다시 역으로 돌아왔다. 나라이 역으로 가기 위해서였다. 마침 살짝 허기가 지던 참이었는데 나가노 역 안에 소바집이 있었다. 간단하게 서서 먹는 집인데 라멘집처럼 표를 끊어서 주문하면 순식간에 소바가 나온다. 시간 없을 때 후루룩 먹고 나오기 좋았다.
나라이 역에 가기 위해서는 기차를 한 번 갈아타야 하는데 나라이 역까지 가는 기차가 많지 않다. 한 시간에 한 대가 있을까 말까 한 데다가 일찍 끊긴다. 그래서 일정을 잘 짜야한다. 아침에 다카야마에서 출발해서 나가노역까지 갔던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오후 2시가 넘어서야 다시 나가노 역에서 출발하게 되었는데 그 덕에 나라이 역에는 오후 4시가 넘어 거의 5시에 가까웠을 때에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숙소가 나가노 역에 있었고 기차가 일찍 끊기기 때문에 조금 조급한 마음으로 돌아다녔다.
나라이 역에 간 이유는 나라이 마을, 혹은 나라이주쿠를 구경하기 위해서였다. 나라이주쿠는 나가노현 시오지리시에 있는 해발 900m 정도 되는 언덕에 생긴 마을이다. 소위 ‘리틀 교토’라고 부르는 중요 전통적 건조물군 보존지구다. 나라이주쿠는 주쿠, 즉 숙소 내지 여관이 많은 마을인데 약 1km에 따라 형성되어 있는 일본에서 가장 긴 여관마을이다. 거리에 늘어선 목조주택들과 처마, 등불이 마치 에도시대로 타임슬립을 한 듯한 느낌을 준다. 우리가 가 본 수많은 리틀교토 중에서도 가장 옛날 거리 같은 곳이다.
나카센도라고 부르는 이 길은 양쪽으로 에도풍의 여관과 기념품 상점, 소품점, 식당이나 여느 동네에나 있는 가게들이 있는데 실제로 문을 연 곳은 많지 않았고 기념품 상점 역시 몇 군데 되지 않는 데다가 막상 들어가 보면 그냥 공예품이나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물건만을 팔고 있을 뿐, 이곳을 기념할만한 물건이나 하다못해 마그넷도 팔지 않고 있지 않았다. 이른 시간인데도 문을 연 식당도 찾을 수 없었다. 결국 돌아갈 때까지 밥은 먹지 못했다. 뭐랄까 에도풍이긴 한데 묘하게 서부 개척시대가 떠오른다고 할까.
이렇게 멋있는 거리가 안타까운 것인지 다행인 것인지 관광이 발달하지 않아서 지나다니는 사람이 별로 없었다. 관광객뿐만 아니라 그냥 이곳 주민 자체가 별로 없어서 길에서 사람 구경하기가 어려웠다. 평일이라도 금요일인데 이 정도로 사람이 없다면 주말에도 사람이 그렇게 많지는 않을 것 같았다.
거리가 언덕에 형성되어 있기에 걷다가 문득 뒤를 돌아보면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게 되어 더욱 장관이다. 마을 곳곳에는 샘물이 있는데 물이 굉장히 풍부한 지역인 것 같았다. 거리 끝쯤에는 신사가 나오는데 건물도 굉장히 오래되었고 주변 나무가 워낙 굵고 빽빽하고 거대해서 마치 애니메이션에나 나올 법한 분위기였다.
이곳은 특별히 무엇을 즐긴다기보다 워낙 사람이 없고 조용해 그냥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곳이었다. 여건이 되었다면 1박을 해도 좋을 것 같았다. 다만 워낙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도시에서만 살았던 우리들에게는 여러 날 지내기는 좀 힘들지 않을까 싶긴 했다.
기차시간에 맞춰 나라이 역으로 돌아왔다. 우리가 갔을 때에는 역무원이 없이 무인으로 운영되고 있었는데 항상 역무원이 없는 것인지는 모르겠다. 역 플랫폼에서 기차를 기다리는 사람은 우리를 빼고는 딱 한 명 밖에 없었다. 거리에 사람 한 명 없었던 다케하라 역시 리틀 교토였는데, 사실은 리틀 교토들은 일본에서 관광지로 인기가 없는 것 같다. 정작 교토는 옛날 풍경은 거의 없는데도 사람이 옛날 것을 찾으려고 바글바글 오는데도 말이다.
기차가 연착하여 원래 예정한 기차로 갈아탈 수 없을 것 같아 다른 열차를 타려고 시오지리 역에서 내렸다. 중간에 시간이 좀 남기에 밥 먹을 데가 있는지 찾으려고 역 바깥으로 나와봤더니 커다란 오크통이 보였다. 알고 보니 시오지리는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고 한다. 시간이 7시가 되기 전이었는데 해가 지랑 말랑한 정도였다. 그런데 이 동네에서 사람이 제일 많을 것 같은 역 주변인데도 식당들이 문을 닫고 있었다. 워라밸이 참 잘 지켜지는 곳이다. 별 수 없이 기차역 안에 있는 편의점에서 도시락을 사다가 까먹었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우리는 지고쿠다니 야생 원숭이 공원으로 가는 버스를 탔다. 나가노역에서 스노 몽키 패스라는 것을 파는데 몽키 파크 입장권을 포함에 나가노 역에서 갈 수 있는 버스, 시영 전철, 로컬 버스를 이틀간 자유롭게 탈 수 있다. 이틀을 이용한다면 더 이익이겠지만 당일치기로 다녀와도 패스를 끊는 것이 더 낫다.
버스를 타면 꽤 한참 가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차길을 좀 걷다가 입구에서부터 등산을 해야 한다. 완전 흙길은 아니고 잘 정비된 길인데 나무들이 울창하고 하늘로 곧게 뻗어있다. 걷는 길에 풀냄새 나무 냄새에 다리 피로가 많이 느껴지지 않는다. 옆으로는 계곡물이 흐르고 있다. 원숭이 공원이 없더라도 이 산길은 트래킹 코스로도 매우 훌륭한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일본은 도시 여행은 재미가 없는데 오히려 자연환경이 참 좋은 것 같다.
지고쿠다니라는 지명은 한국식 독음으로 읽으면 ‘지옥곡’이다. 일본은 화산과 온천이 많아서인지 ‘지옥’이라는 지명이 많다. 지고쿠다리라는 지명도 이곳뿐만 아니라 노보리베쓰시, 오오사키시, 다테야마정, 하코네정, 운젠시 등 여러 곳에 있다. 이곳에 지고쿠다니라는 명칭이 붙은 것은 역시 온천이 있기 때문이다. 유다나카 온천과 시부온천이라는 유명 온천이 지척에 있는데 스노 몽키 패스를 이용해 나가노 역에서 전철을 타고 유다나카 역에 내리면 가깝게 갈 수 있다. 원숭이 공원에서도 버스를 타면 금방이라 시간이 넉넉하다면 근처 온천에서 하루 정도 머무르면서 원숭이 공원까지 갔다 오면 스노 몽키 패스의 뽕을 뽑을 수 있을 것 같다. 아마 패스가 1일권은 없고 2일권만 파는 것도 관광객들이 주변 온천에서 1박을 하는 것을 기대하는 것 같다.
산 입구에서 한 30분쯤을 걸어 올라가면 드디어 원숭이 공원 관리 사무소가 나온다. 이 공원은 1964년에 개원하였는데 스노 몽키라는 원숭이 종류가 있는 것이 아니라 겨울에 온천에 들어가는 일본원숭이의 모습을 보고 이름을 지은 것이라고 한다. 눈 쌓인 노천온천에서 원숭이가 온천을 즐기는 모습은 이제는 미디어에 많이 나와 익숙해져 있지만, 이곳이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것은 나가노 올림필 때문이라고 한다. 스노 보드 경기장이 이 주변에 건설되어 나가노 올림픽 때 원숭이 공원이 전 세계에 소개되었고 이것을 계기로 관광객이 많이 늘었다고 한다.
공원이 개원하기 전에는 사람들의 임업 활동으로 인하여 원숭이의 먹이가 부족해 지자 원숭이들이 산에서 내려와 민가에 피해를 입히게 되자 현지인들은 농림수산성에 허가를 요청하게 되었고, 이후 원숭이는 유해동물로 인정되어 50마리의 사살 허가가 떨어졌다. 이에 일부 사람들이 민가에서 떨어진 상류에 먹이를 주면 원숭이가 내려오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하며 원숭이를 사살하는 것에 반대하였고 결과적으로 지금의 원숭이 공원을 개원하기에 이르게 된다.
이 공원을 찾는 사람들은 대부분 원숭이가 온천을 하는 것을 구경하려고 온다. 공원입구에서 조금 걸어가면 넓은 계곡이 있고 다리를 건너 가면 원숭이 전용 노천탕이 나온다. 이 노천탕과 계곡에는 CCTV가 설치되어 있어 인터넷으로 실시간 상황을 볼 수도 있고 산 입구에도 TV화면이 마련되어 있어 원숭이가 온천을 하고 있는지 아닌지를 볼 수 있다.
이곳 원숭이들이 온천을 하게 된 계기는 주변에 있는 료칸의 인간용 노천탕 때문이었다고 한다. 원숭이 중 하나가 인간이 온천을 하는 것을 보고 모방하였는데 그것을 계기로 원숭이들이 온천을 하기 시작하였고, 결국 위생문제로 원숭이 전용의 노천탕을 만들었다고 한다. 원숭이가 온천에 들어가는 이유는 몸을 청결히 씻기 위해서가 아니라 추위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수컷 원숭이는 털이 물에 젖어 몸이 작게 보이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온천에 들어가는 원숭이들은 대부분 암컷과 새끼 원숭이들이라고 한다. 이러한 이유로 더운 날에는 CCTV를 보고 원숭이가 온천을 하고 있는지를 보고 들어갈 수 있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설명과 달리 우리가 갔을 때에는 엘리뇨로 인한 무더위가 한창이었는데 온천을 즐기는 원숭이가 참 많았고 게 중에 수컷도 많았다. 그러니 여름이라고 온천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그냥 겨울보다는 덜 즐기는 것일 수도 있는 것 같다.
이 공원 관리소 입구에서부터 원숭이 천지이다. 관광객도 많은데 그 많은 관광객보다 원숭이다 더 많다. 원숭이는 사람을 전혀 경계하지 않는데, 경계하지 않는 정도가 지나쳐 한눈팔고 다니면 다리나 꼬리를 밟을 수도 있으니 발 밑을 잘 보고 다녀야 한다. 원숭이들은 사람이 있건 없건 자기 일을 알아서 하는데 길에 누워서 자는 애들이 많다. 인간도 아니고 원숭이가 길막을 해서 곤란한 때가 종종 생긴다. 그렇다고 사람한테 먹이를 구걸하거나 물건을 훔쳐가지는 않았는데 공원에서 자주 먹이를 주고 있기 때문인 것 같았다. 우리가 갔을 때에도 먹이를 주고 있었는데 관리인이 먹이 통을 들고 나타나자 어떻게 알았는지 수십 마리의 원숭이들이 사람을 뚫고 먹이로 달려드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노천탕의 원숭이는 다 재각각이어서 느긋하게 온천을 즐기는 애들도 있고 수영을 하는 애들도 있다. 온천 바닥에 먹이가 떨어져 있는데 잠수를 해서 무언가를 꺼내 먹는 애도 있었는데, 그러고 보면 참 인간다운 것 같기도 하다.
이렇게 노천탕을 중심으로만 원숭이가 있는 게 아니라 길가에도 있고 계곡물에 무언가 씻고 있는 애들도 있다. 그런데 종종 피부병에 걸린 것인지 싸우다 다친 것인지 털이 뭉텅 빠진 애들도 있어 불쌍해 보이기도 했다.
이곳은 원숭이도 원숭이지만 올라가는 길의 풍경이 워낙 좋아서 시간을 내어 가 볼만한 곳이다.
우리는 원숭이 공원에서 나와 유다나카 시내로 가는 버스를 탔다. 이곳은 인구가 많지 않은 곳이라서 그런지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정도 꼴로 오는데 하필 우리가 내려온 시간에 버스가 없어서 한참이나 기다려야 했다. 버스는 꽤 뱅뱅 돌아서 유다나카 역으로 가는데 가는 길에 유명한 시부온천도 창밖으로 볼 수 있고 그냥 시골풍경도 볼 수 있다.
유다나카 역 근처에서 허기를 채우고 나서 역 근처에 있는 공중 온천에 갔다. <가에데노유>라는 이름의 이 온천은 유다나카 역전 온천이라는 별칭이 있을 정도로 역에서 가깝다. 가까운 정도가 지나쳐서 그냥 역사와 하나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도 있을 것은 다 있어서 실내탕도 있고 노천탕도 있다. 가격이 300엔으로 저렴한 편인데 이 가격대의 공중 온천치고는 시설이 나쁘지 않았다. 물론 고급 료칸에 있는 공용탕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말이다. 별 기대를 하지 않고 갔는데 물도 좋았고 생각보다 사람이 아주 많지도 않았다. 기차가 자주 있지 않으니 기차를 기다리는 시간에 잠깐 짬을 내서 피로를 풀고 오기에 딱 좋은 것 같았다.
그렇게 우리는 그다음 날 유명 온천 마을 여행이 예정되어 있음에도 온천을 하고 나서 나가노로 돌아가는 기차를 탔다.
다카야마는 자체가 높은 산이라는 뜻인데 고도가 600m 이상 되어 선선했다. 역은 세련되고 모던한 느낌으로 지어져 있지만 주변 풍경은 고층 건물 하나도 없는 조용한 시골의 풍경이다. 가나자와보다는 서양 관광객이 더 많은데 등산 맛집인지 다들 등산용 폴대를 가지고 있었다. 일본이 워낙 관광대국이고 여행자들이 많다 보니 동네마다 많이 방문하는 관광객을 위한 요소들이 보이는데 우리가 묵은 숙소 콘셉트는 서양에서 바라보는 오리엔탈 느낌이 많이 난다.
짐을 풀고 다카야마에서 유명한 관광지인 히다 민속촌으로 갔다. 점심을 좀 많이 먹어 몸이 무거운 데다가 버스 시간이 안 맞아서 소화도 시킬 겸 약 3km 정도 걸어갔는데 이곳이 산에 있다는 사실을 깜빡했다. 가는 길이 꽤나 가파른 언덕인 데다가 갑자기 비도 세차게 내려가는데 고생을 좀 했다.
다카야마는 시라카와고처럼 눈이 많이 오는 동네라 갓쇼즈쿠리 스타일의 옛집으로 생활을 했는데 이곳은 그 생활 방식을 구현해 놓은 민속촌 같은 곳이었다. 전날 사라카와고에서 더 예쁘고 실제 생활하는 동네를 본 상황에 날씨요괴의 은총으로 비까지 많이 와서 감흥이 조금 덜했지만 여기는 민속촌답게 또 다른 매력이 있다.
우선 지대가 높은 산속에 있어 소박하고 조용하다. 이 동네 메인거리에는 조그마한 연못과 물레방아가 있어 예스러운 풍경을 더했다. 시라카와고는 실제 사람들이 살기 때문에 내부 자체 구경은 힘든데 이곳은 집집마다 옛날 생활들을 소개하고 알려준다. 각 집에 들어가 옛날 생활 용품, 결혼식 풍경, 집을 짓던 기구 등을 보는 것이 재미있다. 동네 앞에 연못에는 이곳에서 키우는 오리와 잉어들이 돌아다니는데 먹이를 구매해 주는 소소한 재미도 있었다.
조그마한 옛날 카페 같은 실내에 자리 몇 군데가 전부인 작은 경양식 집이었다. 오픈시간쯤 우리가 들어가니 동네 나이 드신 셰프님이 동네분들과 수다 떠시다 부랴부랴 영업 준비하는듯한 느낌이었다. 관광객이 원체 적은 지 동네 어르신 분들의 아지트 같은 느낌이었다. 주문을 받고 조리를 시작하셔서 약 30분 간을 지지고 볶고 튀기신 거 같다.
믹스카츠세트
천 엔이 조금 넘는 믹스카츠 세트에 3종류의 다른 조리법의 반찬이 나왔다. 절임반찬, 찜반찬, 나물반찬이 나왔는데 하나같이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메인 튀김에 곁들인 사이드는 에그 샐러드, 고봉 양배추, 고봉밥(일본에서 시킨 정식 중에 밥이 제일 많았음)까지 푸짐하게 주셨다. 역대급 시골 인심의 푸짐한 밥상이었다.
돈가스 소스에는 백된장이 믹스되어 부드럽고 달달한 맛이 난다. 믹스카츠는 히레카츠와 에비카츠의 두 종류가 나왔는데 부드럽고 바삭했다. 식사 중 안 주신게 있다고 반찬으로 준 냉 채소찜이 너무 좋았는데 미리 쪄 놓은 반찬을 차게 식혀 내준 반찬이다. 오동통한 산고사리와 두부, 곤약, 단호박의 조화가 푸근하고 기분 좋은 맛이었다.
역대급 푸짐함과 맛으로 오랜 시간 기억에 남는 맛집이다. 남자 할아버지 셰프님 혼자 운영하시는 터라 오픈시간에 안 갔으면 못 먹었으리라 생각한다.
히다 민속촌을 관광한 후 숙소에 돌아와 잠시 휴식을 했다. 우리는 와트호텔 &스파 히다 다카야마라는 호텔에 묵었는데 이번 여행 탑 티어 호텔로 정말 역대급 가성비 호텔이라 추천하고 싶다. 옛날 산장느낌의 디자인에 당일 9시까지 쓸 수 있는 프리드링크 쿠폰을 주는데 생맥주를 공짜로 마실 수 있다. 조식의 퀄리티도 좋으며 호텔 이름에 스파가 붙은 만큼 온천이용이 가능한데 대욕탕 외에 가족탕이 3개나 있다.
대욕탕은 노천온천에 사우나 시설도 있다. 휴게 공간에는 아이스크림이 보관되어 있어 하나씩 빼먹을 수 있다. 일본숙소는 유난히 방이 작은데 이곳은 방도 넓고 침대도 커서 안락하게 보낼 수 있다. 다음에 시라카와고를 가게 된다면 여기를 출발지로 세팅하고 싶을 정도였다. 덕분에 온천을 즐기며 컨디션을 회복했다.
늦은 오후 숙소에 나와 산마치스지 거리로 갔다. 이곳은 옛 건물을 그대로 유지해 놓은 거리로 가나자와, 교토와는 또 다른 예스러운 맛이 있다. 이곳의 옛 거리는 관광지와 다르게 사람이 거의 없어 조용히 힐링하기 좋았다.
일본의 워라밸은 생각이상으로 잘되어 있어서 오후 5~6시가 넘어가면 대부분 상점은 문을 닫고 저녁에 오픈하는 이자캬야만 간간이 보인다. 예약을 안 하면 그 간간한 이자카야는 동네 단골들이 점령하고 있기 때문에 가기 힘들다. 시골은 특히 더한데 마땅히 갈 데가 없어 저녁식사를 해결하기 힘든 상황에서 1시간가량 동네를 뺑뺑이 돌다 찾아들어간 라면집이다. 고즈넉한 옛집에 다리를 넣어 앉는 좌식 테이블이 인상적이다.
디럭스라멘
닭국물이 베이스로 한 소유 라멘에 다양한 고명을 넣는데 게 중 가장 푸짐한 디럭스라멘으로 시켰다. 오동통한 죽숙이 아삭하고 고기와 숙주, 대파향이 조화롭다. 숙주가 한국과 다르게 짥고 통통한데 씹는 맛이 좀 더 좋다. 계란 반숙과 차슈가 푸짐하고 국물이 짜지 않아 후루룩 잘 넘어간다.
다카야마에서 나가노로 가서 숙소에서 체크인 후 나라이주쿠를 당일 치기로 갔는데 빡센 일정이었다. 편도로 약 3~4시간 기차를 타고 세 번이나 환승을 하니 정신없고 허리가 아팠다. 원래는 이날 휴식 후 다음날 나라이주쿠를 갈 일정이었는데 교토를 지나 산마치거리 외에도 여러 옛 거리를 많이 본 상황에서 나라이주쿠 한동네에 하루를 할애하기가 조금 아까워 무리하게 당일 치기로 방문하기로 했다. 옛 거리를 한 대여섯 군데 보니 막눈인 내가 보기에는 비슷비슷해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나라이주쿠가 궁금해서 안 가기에는 아쉬워 결론적으로 몸고생을 좀 더 하기로 했다.
가는 길에 나가노역에서 먹은 서서소바집에서 끼니를 해결했는데 재미있는 경험이었다. 일본은 아직까지 스탠딩 식사 문화가 있는 곳이 종종 있는데 사람이 은근히 많다.
가키아게 소바
저렴한 가격과 빠른 스피드 채소를 튀긴 건지 튀김반죽을 튀긴 건지 모르겠는 밀가루 함량이 높은 튀김이 소바 국물에 부들부들하게 풀려 국물이 기름져진다. 이 국물에 시치미를 듬뿍 뿌리고 대파를 곁들이면 감칠맛과 개운함을 잡는 멋진 한 끼 식사가 된다.
일본은 저가로 배 채우기에 나쁘지 않고 오히려 맛난 것들 투성이다. 다만 탄수화물, 지방, 알코올(이건 선택사항이지만)을 과다 섭취하게 된다. 특히 면류 밀가루류의 유혹이 많고 자주 먹게 되는 거 같다. 한국에서 면식이 주식이던 내가 밥을 찾게 되는 기현상이 발생하기도 했다.
나라이주쿠를 도착했을 때는 이미 오후 5시 정도였다. 기차에서 서둘러 내려보니 물이 흐르는 언덕에 계단이 있는 희한한 풍경이 눈앞에 보였다. 상점가는 이미 문을 닫았고 거리에는 조용히 관광객 몇 명만 돌아다니고 있었다. 출발 전에 짐 되는 게 싫어 놓고 온 잠바가 그리울 정도로 산속 동네는 꽤나 추웠다. 몇 걸음 걸어가니 일본 역사물에서나 보던 희한한 풍경이었는데 산을 뒷배경으로 한 일본 옛 거리가 CG로 붙여놓은 듯 신비롭고 적막하다. 공기가 맑아서 그런지 그림으로 그려놓은 듯한 하늘과 풍경이 선명하게 보인다. 돌아가는 길 역시 빡세 오래 머물지 못했지만, 낯선 곳에서 느끼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오래 기억에 남는다.
원래는 일정에 없었는데 온천을 하는 원숭이로 유명한 야생 원숭이 공원을 가게 되었다. 인간 외의 동물을 보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나가노역에 공원 패스를 끊어서 갔는데 여름에는 더워서 원숭이들의 생활반경이 넓어지고 온천 하는 원숭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설명이 있어 조금 걱정을 하였다.
아침 일찍 나가노 역에 있는 원숭이 공원행 버스를 탔다. 이곳은 하이킹 코스가 꽤 긴데 2km 정도의 하이킹코스 안쪽에 공원이 있었다. 단순히 원숭이만 보러 가는 게 메인이라 생각했었고 구글에서 가는 길에 진흙길을 피할 수 없다고만 나와서 잘 몰랐는데 이 공원 가는 길은 천혜의 자연을 보여주는 거대한 산이었다. 길 옆에 시원하게 흐르는 개천과 거대한 절벽, 끝이 안 보이는 나무로 둘러싸인 길은 그동안 접하지 못한 멋진 풍경이었고, 이러니까 원숭이가 살지라고 생각하며 연신 감탄했다.
온천수가 뿜어지는 계곡을 건너 입장권이 포함된 패스를 보여주고 공원에 입장했다. 원숭이를 못 볼까 걱정했던 것이 도착해 보니 얼마나 기우인지 깨달았다. 입장하자마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원숭이, 걸어 다니는 원숭이, 이 잡아주는 원숭이, 점프하는 원숭이 등 그냥 원숭이 마을이었다. 공원 안쪽에 사진 찍기 좋게 마련된 노천 온천이 있었고 첨벙첨벙 놀고 있는 원숭이들도 있어 관광객들을 즐겁게 해 줬다. 그냥 더우니까 온천탕에 있는 원숭이를 못 볼 수도 있다는 말이었던 거 같다.
사육사가 언덕에 먹이를 뿌려주니 공원에 있는 모든 원숭이들이 모여드는 이색풍경도 볼 수 있었다. 정말 하루 일정을 수정하여 여기 온 것이 너무 잘한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점심 전 검색을 해보니 근처에 먹을 데가 마땅지 않고 몇몇 카페가 가격이 사악해 그냥 버스를 기다려 유다나카역으로 넘어갔다.
유다나카역에서 좀만 더 가면 더 유명한 시부온천이 있지만 대낮에 가봤자 별로 감흥이 없을 거 같아 가까운 역 근처에서 놀기로 했다. 전날부터 이어진 강행군에 조금 지쳤는데 돌아가는 기차가 있는 유다나카역에는 온천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름 그대로 역 옆에 있어 온천을 하고 바로 시간에 맞춰 역으로 들어갈 수 있는 아주 꿀 같은 온천이다. 덕분에 오전에 원숭이 공원 하이킹의 피로도 풀고 휴식도 취할 수 있었다.
근처에 빠르게 검색한 특이한 라멘집이 있어 찾아갔다. 브레이크 타임 전 마지막 손남으로 들어갔는데 넓은 가정집을 개조한듯한 실내에 다양한 담금주와 특이한 불상들이 있는 특이한 가게였다.
순두부 라멘
그러면 안 되는데 자꾸 일본 와서 얼큰한 것을 찾게 된다. 이곳을 찾은 이유도 순두부라멘이라는 특이한 메뉴가 있어서였다. 비주얼상 얼큰해 보이는 마파두부 맛의 중화풍 라면일 것으로 유추했다. 막상 확인 주문해서 확인해 보니 매운 베이스가 아닌 미소된장 베이스였다. 매운맛 표시를 확인하는 건데 비주얼에 홀랑 넘어갔구나 싶었다.
매운맛과 별개로 맛은 훌륭했다. 볶은 고기에 미소된장과 소유로 맛을 내고 두부와 부추와 듬뿍 올려져 있다. 우리나라 순두부보다는 탄탄하고 연두부보다는 부드러운 그 사이의 정도였는데, 탱글탱글하면서도 부드럽게 넘어가는 두부의 식감은 훌륭했다. 양배추와 많이 들어가 국물은 달짝지근했고 부추향이 향긋해 더운 날 먹는 보양식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