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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변호사 오광균 Sep 14. 2023

홋카이도 뿌개기-오타루, 삿포로, 비에이

이 글은 함께 여행한 두 명의 저자가 참여하였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에서는 여행지에서의 감상을 오변이, <강쉡의 먹방일기>에서는 여행하며 먹었던 음식에 관한 이야기를 강쉡이 썼습니다.


오변의 여행일기


도야 역에서 기차를 타고 오타루로 왔다. 중간에 노보리베쓰 역을 거쳐왔으니까 사실 왔던 길을 다시 돌아온 셈이다.


오타루는 삿포로 역에서 기차를 타고 30분 남짓이면 갈 수 있는 곳인 데다가 인구가 12만 명이 채 되지 않는 작은 도시라서 삿포로의 위성도시 같은 느낌이 있다. 관광객들은 삿포로에 자리를 잡고 당일치기로도 갔다 오곤 한다. 그런데 1920년 일본의 통계자료를 보면 당시 오타루시의 인구가 오히려 삿포로보다 많았다. 삿포로가 지금처럼 대도시가 된 계기는 1869년(메이지 2년) 당시 에조라고 불리던 곳을 홋카이도로 개칭하고 삿포로에 개척사라는 관청을 설치하여 본격적으로 홋카이도를 개발하기 시작하면서부터다. 그후 인구가 2천 명에도 미치지 못했던 삿포로는 현재 200만 인구에 가까운 대도시가 되었으니 말 그대로 상전벽해가 된 것이다.


오타루는 시내를 가로지리는 운하를 보면 알 수 있듯 홋카이도 개척의 중심에 있는 도시였다. 홋카이도 최초의 철도가 삿포로와의 사이에 부설되었고, 오타루 항은 도내 개척민의 상륙이나 물자의 유통의 중심이 되어 금융기관이나 선박회사, 무역 회사 등이 진출해 홋카이도 경제의 중심도시로 발달하였다. 특히 바다 가까이에 탄광이 있다는 점은 오타루의 큰 장점이 되었다. 그러나 목재와 석탄의 수요가 감소하면서 산지 지형은 오히려 장애요소가 되었고 삿포로를 기준으로 오타루와 반대쪽에 있는 치토세에 신치토세 공항이 건설되면서 급격히 쇠락의 길을 걷는다. 오타루의 인구는 전성기 때인 60년대에는 20만 명이 넘었는데 지금은 마을 단위에서는 인구가 제로인 곳이 생겨나면서 인구 소멸을 걱정해야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과거의 오타루가 탄광과 물류의 중심지였다면 지금의 오타루는 운하와 더불어 메이지 후기 ~ 쇼와 초기 시대의 역사전 건축물을 관광자원으로 개발하여 관광도시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2008년 10월 2일에는 관광도시로 선언까지 했다.


미나미오타루역 근처에서 본 오타루 항

우리 숙소는 미나미오타루 역에서 걸어갈 수 있는 위치에 있는 곳이었는데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아파트였다. 이곳은 시골마을이 아니라 도시인데도 미나미오타루역에서 내려 숙소까지 걸어가는 동안 사람이 별로 없었다. 숙소의 가격도 삿포로나 다른 일본의 도시에 비해서 저렴해서 확실히 인구가 줄어들고 있다는 것을 체감할 수 있었다.


우리 숙소는 완전히 주택가에 있지만 미나미오타루역에서 우리 숙소와 딱 반대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멋진 상업지구가 나오는데 이 거리는 오타루 운하까지 이어진다. 이 거리는 마치 야인시대 세트장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인데 거리도 널찍하게 가게도 널찍하다. 그중 유명한 것은 오르골당과 르타오 본점이다. 르타오는 그 거리에서만 매장이 몇 개씩 있는데 딱히 모나지 않은 초콜릿 과자를 딱히 납득하기 어려운 엄청나게 비싼 가격으로 팔고 있었다. 일본은 발뮤다의 나라이니 뭐 돈으로 감성을 하는 것이라고 할까.


오타루 사카이마치 상업지구


오르골당은 일본 최대의 오르골숍이자 박물관이다. 약 25,000개의 오르골을 전시하고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는 오르골은 사지 않고 엉뚱하게도 마그넷을 샀다. 다른 곳보다 마그넷이 굉장히 쌋기 때문이었다. 오르골당은 실은 2개의 건물로 되어 있는데 본관의 2층까지는 오르골숍이고 3층은 캐릭터숍으로 되어 있다. 2호관은 박물관으로 만들었다. 오르골당 건물은 1902년에 지어졌다고 하는데 오르골당의 개업 연도는 1967년이라고 하니 그 건물을 오르골당이 지은 것은 아니다. 2호관 앞에는 증기시계가 있는데 보일러로 증기를 발생시켜 1시간마다 시간을 알려주는 것 외에도 15분마다 멜로디를 연주한다. 


오르골당 내부


오르골당에서부터 운하 방향으로 가는 동안 아주 다양한 매장이 있는데 각종 소품 외에도 소소한 먹을 거리와 기념품들을 팔고 있어서 그냥 눈으로 구경하는 것도 재미가 있다. 


오타루 운하를 보면 구라시키 미관지구가 생각나는데 오타루 운하나 구라시키 운하 모두 운하 곁으로 창고건물이 늘어서 있다는 점이 비슷하다. 다만 구라시키는 버드나무와 벚나무 같은 나무들이 많고 창고건물을 개조한 상점들은 모두 흰색 벽으로 되어 있다. 이와 달리 오타루 운하는 나무는 잘 보이지 않고 63기의 가스등이 설치되어 있고 굉장히 커다란 붉은 벽돌의 창고건물이 늘어서 있다. 그래서 구라시키 운하는 사람이 노를 젓는 나무배가 어울리지만 오타루 운하는 왠지 증기선이 다닐 것 같은 분위기다. 


오타루 운하의 총길이는 1,140m이고 폭은 20~40m 정도 된다. 폭이 중간에 달라진 이유는 나중에 일부를 메웠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타루 운하를 지도에서 보면 내륙에서 바다로 이어진 것이 아니라 해안선을 따라 길게 이어져 있어서 도대체 이런 식의 운하가 필요했을까 싶었는데, 이 운하는  내륙의 땅을 파서 만든 운하가 아니라 일본에서는 유일하게 근해를 매립해서 만든 운하라고 한다. 1923년에 완공되었는데 오타루 항에서 취급하는 물품이 많아지자 항구에서부터 창고 근처까지 물건을 옮기기 위해서 설치한 것인데 전후 오타루 항 부두가 정비되면서 쓸모가 없어져버렸다. 그래서 1966년에 오타루 시내의 교통 정체 완화를 위해 운하를 매립하고 창고 건물들을 해체하여 도로를 6차선으로 늘리는 계획을 세웠는데, 운하와 창고건물을 보존해 달라는 시민사회의 운동이 일어나 오랜 논의  끝에 결국 운하의 폭 절반을 매립해 도로로 하고 나머지는 산책로 등으로 정비하자는 절충안이 채택되어 현재와 같은 관광자원이 되었다. 오타루 운하 매립계획이 처음 세워졌던 60년대는 오타루시의 인구가 절정이던 때였고 그로부터 반세기가 넘게 지난 지금은 인구가 절반으로 줄어들었으니 처음 계획대로 운하와 창고건물이 모두 해체되었다면 오타루시가 지금과 같은 관광도시로 그 명맥을 이어가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타루에서 2박을 하면서 실컷 구경하고 이번 여행의 마지막 도시인 삿포로로 갔다.



삿포로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도시이고 1972년에 동계올림픽 개최지인 데다가 동계 아시안 게임은 네 번이나 계최한 도시이다. 인구가 200만에 가까운 대도시인데 사실은 본격적으로 개발이 시작된 메이지 초기, 즉 19세기 중후반 이전까지는 인구가 채 2000명도 되지 않는 곳이었다. 삿포로는 홋카이도에서 하코다테나 오타루보다 개발이 되지 않을 곳이었으나 하코다테나 오타루가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확장이 어려운 탓에 메이지 정부에서는 평지에 있는 삿포로를 중심으로 개발에 나서게 되었다. 사실 일본에서는 개발이라는 말보다는 개척이라는 말을 더 많이 쓴다.


그러한 이유로 삿포로는 철저하게 도시 계획을 수립하여 그 계획에 따라 개발이 진행되었다. 그래서 삿포로의 지도를 보면 다른 곳처럼 복잡하지 않고 네모 반듯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중국의 대도시가 더 반듯하고 체계적이다라고 하면 할 말은 없다. 


삿포로는 냉대습윤기후에 속해져 있고 워낙 북쪽에 있기 때문에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도 선선하다고 하는 때가 많으나, 실제로는 꼭 그렇지만도 않은 것 같다. 1월 평균기온은 -3.2도로 서울과 많이 차이가 나지는 않으며, 8월 평균기온은 22.8도로 시원한 편이라고 하나 실제로 6월에 가도 덥긴 했다. 그러니 여름에 시원하다고 하기보다는 덜 덥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삿포로는 뒤늦게 개발이 이루어졌기에 일본어가 표준어에 가깝다는 것이다. 이곳에 정착한 대부분의 사람의 외래인이다 보니 언어에 지역색이 많이 사라져 표준어 억양에 가까워져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중국어(대륙)도 북경어보다는 하얼빈어가 표준어(보통화)에 더 가까운데 역사적 맥락이야 다르지만 표준어가 꼭 그 나라 수도에서 쓰는 말의 억양과 같아야 한다는 것은 많은 한국인이 가진 편견일 것이다.


우리가 먼저 간 곳은 홋카이도청 구 본 청사(아카렌가 청사)였다. 1888년 미국식 네오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아카렌가라는 별칭과 같이 빨간 벽돌로 지어졌다. 주변에 연못이 있어 산책하기 좋은데 우리가 갔을 때에는 전체를 공사 중이었어서 그냥 그림으로만 보았다. 유럽 여행을 하다 보면 항상 수리 중이어서 멀쩡한 유적 건물을 보기가 어려운데 딱 그 꼴이다.


공사 중인 홋카이도청 구 본 청사


어디를 갈까 고민을 하다가 여행 막바지라서 요도바시카메라와 JR타워에 가서 별로 산 것도 없이 어설프게 쇼핑을 하고 삿포로팩토리에 갔다. 삿포로 팩토리는 옛날 맥주 양조장이었던 건물을 개조하여 현대식의 쇼핑몰과 레스토랑 등이 들어가 있는데 규모도 크고 상점도 많다. 이 건물은 1876년 삿포로 개척사의 차관이었던 구로다 기요타카가 삿포로 개척사 맥주 양조장이라는 이름으로 만들었는데 이곳이 일본의 유명한 맥주 회사 삿포로 맥주의 전신이다. 아주 특별한 것을 파는 곳은 아니지만 유명 맥주 회사의 양조장이었던 100년 넘은 건물에 쇼핑몰을 만든 것이 재미있다.


삿포로팩토리 내부


다음 날 아침 일찍 예약해 놓은 투어를 가기 위해 삿포로 역으로 갔다. 네이버에서 예약을 해서 모두 관광객은 모두 한국인이고 가이드도 한국인이다. 입장료나 점심값을 따로 지불해야 하니 사실 가이드가 버스 안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과 버스이용료를 내는 것이다. 그것 치고는 가격이 싸지는 않았지만 버스로 편하게 다닐 수 있고 그만큼 시간절약도 되니 나쁘지 않았다. 다만 투어 특성상 맘에 드는 곳에 진득하니 감상할 여유가 없고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만 들르니까 어디를 가든 사람이, 특히 한국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일본 사람은 오히려 드물어 그냥 한국 관광지에 중국인 관광객이 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처음에 간 곳은 스나가와 하이웨이 오아시스라는 곳인데 그냥 고속도로 휴게소였다. 이곳의 명물이 무슨 아이스크림이라던데 과연 길게 줄이 서 있었다. 대부분 한국 사람이었으니 일본에서는 모르겠고 한국에서 명물이라고 해야 맞을 것이다. 우리는 그냥 가이드가 추천해 준 옥수수차 페트병 하나를 사고 멜론이 특산이라길래 한 조각 사 먹었다. 옥수수차는 참 진했고 멜론은 달콤하니 맛있었는데 그때는 좀 비싸다고 생각했지만 다른 곳이 더 비쌌다. 


스나가와 하이웨이 오아시스. 사실은 고속도로 휴게소


휴게소 투어를 마치고 팜 도미타로 갔다. 보랏빛 라벤더 꽃밭이 유명한 곳이다. 같은 곳에 도미타 멜론 하우스가 있는데 두 곳은 도미타 집안 형제가 운영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한쪽에서 다른 쪽 풍경을 볼 수 없도록 높은 가림막을 설치해 놓았다. 역시 죽을 때 자식들이 안 싸우게 하려면 너무 많은 것을 물려주면 안 된다. 투어로 온 우리가 신경 쓸 것은 아니지만 관광객이 하도 많아 주차 지옥이다. 


팜 도미타는 라벤더가 유명하긴 하지만 아무래도 라벤더는 한철이라 그런지 다른 꽃도 줄을 맞춰 심어 놓았다. 규모가 꽤 크고 라벤더가 볼만하지만 역시 우리나라의 안성 팜랜드를 생각하고 갔다면 많이 실망할 수 있다. 안성 팜랜드처럼 대규모는 아니고, 그냥 라벤더 밭이니 이쁘구나 정도의 감상인 것 같다.


팜 도미타 라벤더


다음으로 비에이 역으로 가서 점심을 먹었다. 여행사에서 예약을 해 놓는 것은 아니고 버스 안에서 추천해 주는 식당 중에 각자 가고 싶은 데를 가는 식이다. 미리 어디로 갈지 수요조사를 해서 사람이 몰리는 식당이 있으면 다른 곳으로 바꾸도록 유도해서 사람을 분산시킨다. 식당에 가면 줄을 얼마나 서는지 자리에 앉았는지를 조사해서 나름 시간을 맞춘다. 여행사에서 미리 준비한 음식보다 원하는 것을 먹을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 


다음으로 간 곳은 청의 호수(아오이이케)다. 여기는 사진작가 다카하시 마스미의 작품으로 유명한데 그의 작품은 맥 OS X 마운틴 라이언과 IOS 7, 8의 배경 중 하나로 사용되었다. 2012년도의 일이라 지금 내가 쓰는 맥북이나 아이폰에서는 볼 수 없었다. 일본어로는 연못인데 한국에서는 관광상품을 개발하면서 호수라고 붙인 것 같다. 자연 연못은 아니고 인공 제방을 만들었는데 그곳에 물이 고여 생긴 인공연못이다. 


1988년 도카치다케가 분화하여 화산 쇄설류가 비에이 마을까지 내려와 피해를 입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개의 제방을 만들었다. 그중 이 제방에 물이 고이면서 자생하던 낙엽송과 자작나무 등이 수몰되어 시들게 되었다. 청의 연못은 파란 연못 물과 시들어 죽은 나무들이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이 연못의 물이 파란 이유는 이 부근의 물에 수산화알루미늄 등 주로 백색의 미립자가 많이 포함되어 있는데 이 물이 비에이강 본류와 합류하면서 일종의 콜로이드가 생성되고 태양광이 수중의 콜로이드 입자에 충돌하며 산란하면서 푸른색을 띠게 된다고 한다. 


아오이이케는 투어의 하이라이트인데 하필 가는 도중 비가 어마어마하게 쏟아지기 시작했다. 당초 일기예보에 아침부터 비가 온다고 했었는데 아침에는 아주 맑지는 않았지만 또 흐리지도 않아서 그럭저럭 괜찮았다. 그래서 우리 가이드는 자기 별명이 날씨요정이라 날씨가 좋은 것이라고 그랬는데 그 말이 무색하게도 비가 어마어마하게 내렸다. 비가 오는 아오이이케도 나름 운치 있었다. 뭐 또 언제 비 오는 날 올 수 있겠나 싶었다. 


사람이 꽤 많았지만 비가 와서 그런지 다들 입구에 몰려 있어서 좀 걸어가니 사람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은 한국 사람이라서 아무래도 한국인 취향에 맞는가 싶었다.


아오이이케(청의 호수, 청의 연못)


다음으로 간 곳은 흰 수염폭포였다. 폭포의 갈라지는 물줄기가 마치 흰 수염을 닮았다고 한다. 근처까지 가는 것은 아니고 다리 위에서 보는 것인데 역시나 관광객으로 인산인해다. 아오이이케처럼 푸른 물이 인상적인데 유명하다고 하니 열심히 가서 사진은 찍었다. 대단한 볼거리는 아니다.


흰 수염폭포


흰 수염폭포를 보고 사계채의 언덕이라는 곳을 갔다. 색색의 꽃을 언덕을 따라 줄을 맞춰 심어 놓아 사진을 찍으면 굉장히 특이하게 나온다.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는데 안에서 파는 감자고로케가 유명한데 참 맛이 없다. 일본에 금상고로케라고 무슨 대회에서 금상을 받았다는 고로케 집이 있는데 몇 번 사 먹어봤지만 특별히 맛있다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그런데 여기 사계채 언덕에서 유명하다는 고로케를 먹어보면 금상고로케가 맛있는 것이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역시 고로케는 한국의 잡채 고로케다.


여기서는 트랙터도 유로로 탈 수 있고 알파카도 유료로 볼 수 있는데, 트랙터야 한국에 워낙 관광상품으로 많이 나와서 특별할 건 없고 알파카 역시 양평 알파카 월드처럼 전문적으로 사육하는 것 같지도 않았다. 사실 사계채 언덕이 우리 집에서 가까운 안성 팜랜드보다 못하기 때문에 대단스러운 흥미는 없었는데, 인스타 감성으로 사진을 찍기는 좋은 곳인 것은 맞았다.


사계채의 언덕


다시 삿포로로 돌아가는 길에 세븐스타 나무에서 멈춰 섰다. 세븐스타 나무는 같은 이름의 담배광고로 유명해진 나무다. 그 옆으로 자작나무가 줄을 세워 예쁘게 심어져 있어 다들 그곳에서 사진을 찍는다. 세븐스타 나무와 자작나무도 예쁘지만 슬슬 해가 질 무렵의 주변 밀밭의 풍경도 굉장히 아름답다.


세븐스타 나무


투어로 오니까 이동은 편해서 좋긴 한데 역시나 충분히 즐길 시간이 부족한 건 많이 아쉬웠다. 렌터카로 이동하면 더 좋긴 하겠다는 생각은 들었다. 국내에서 구입하는 패키지여행 상품이 아니라 현지 투어는 거의 이동과 가이드 비용이라 예약할 때 지불한 돈 외에 추가로 팁이나 옵션을 요구하지 않아서 편하다. 참여하는 연령대가 다양한데 아무래도 패키지여행을 싫어하는 젊은 사람이 좀 더 많은 것 같기는 하다. 우리 가이드는 입담도 좋았고 굉장히 부지런해서 저렇게 고생을 하니까 투어비가 가격이 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븐스타 나무 옆 자작나무 길


다음날 삿포로 시내를 여행하면서 다들 한 번씩 가 보면 삿포로 타워와 시계탑, 닛카상을 구경했다. 삿포로는 돌아다니기가 편한 것이 명소가 서로 멀지 않기도 하고 거의 지하로 연결되어 있다. 아무래도 눈이 많이 내리는 곳이다 보니 지하통로와 상가가 발달한 것 같다. 날씨가 어마어마하게 덥지는 않았지만 지하로 다니니 더위도 피하고 비도 피할 수 있어서 좋았다. 다만 역시 지하라서 낮인지 밤인지 시간 가는 것이 가늠이 잘 안 된다는 단점이 있다.


삿포로 타워


저녁에 쇼핑하러 나왔다가 닛카상을 또 한 번 봤는데 불 켜진 닛카상이 더 인기가 많았다. 오사카의 구리코상과 비교되는데 구리코는 과자고 닛카는 술이어서 아무래도 술이 대중성이 더 떨어지는데다가 오사카가 워낙 대도시라서 대중적인 인기는 역시 구리코가 훨씬 많은 것 같다. 


삿포로의 구리코상인 닛카상


삿포로에서 그렇게 일본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내고 드디어 두 달간의 여행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왔다.


일본 여행을 내 나름대로 구분하자면 오키나와, 온천, 그리고 나머지들로 나눌 수 있을 것 같다. 오키나와는 다른 일본의 지역과는 너무도 큰 차이가 있다. 교통도 그렇고 거리의 풍경이나 자라는 나무들, 문화, 먹을거리, 심지어 호텔 방의 크기도 본토와 많이 다르다. 그러니 오키나와 여행과 일본 여행은 같은 카테고리가 아닌 것 같다. 온천 여행 역시 일본의 다른 도시 여행과는 많은 차이가 있다. 일본의 온천 시설 자체는 한국처럼 좋지는 않은데 물이 워낙 좋고 또 한적하고 조용한 마을 분위기가 좋다. 나머지는 사실 워낙 비슷비슷한데, 대도시는 너무 시끄럽고 비싸고 볼 것도 많지 않아서 별로다. 소도시가 조용해서 좋기는 한데 다른 해외여행지처럼 대단스러운 볼거리는 없다. 그냥 조용히 산책하기 좋은 곳들이 많다.


개인적으로 좋았던 곳을 꼽자면 1위는 역시 미야코지마다. 바다가 워낙 아름답고 관광객도 많지 않아 조용하다. 다만 한국에서 가자면 한 번에 갈 수 없어서 비행기를 한 번 갈아타거나 배를 타야 한다. 접근하기가 불편해서 오히려 더 좋은 것일 수도 있다. 대중교통이 불편하고 특히 마트나 하다못해 편의점이라도 가려면 차가 있어야 할 때가 많아서 렌터카는 필수다. 다만 렌터카는 수량이 많지 않아서 예약이 좀 까다로울 수 있다.


가장 좋았던 온천은 구사쓰 온천이었다. 사실 온천물은 전문가가 아닌 일반 관광객의 입장에서는 별 차이를 못 느끼겠는데, 일단 물의 양 자체가 어마어마하게 많다. 온천 외에도 볼거리가 많고 일본인 사이에서 워낙 유명한 곳이라 편의점이나 이것저것 쇼핑하기에도 좋다. 관광객이 상당히 많다는 것이 단점이기는 한데 상대적으로 외국인이 적어서 그런지 엄청 시끄럽지는 않고, 특히 중심지를 벗어나면 아주 조용하다. 다만 역시 한국에서 가려면 비행기에서 내려서 버스든 기차든 다른 교통수단으로 갈아타서도 한참 가야 한다는 것이 문제다. 한국에서의 접근성을 생각한다면 역시 유후인만 한 곳이 없기는 한데 일본 여행을 가 본 사람은 거의 첫 번째나 두 번째로 가보는 곳이 유후인이라 좀 식상한 감은 있다. 유후인은 워낙 조용하게 온천을 즐길 수 있고 볼거리 살 거리가 많은 곳인 데다가 료칸도 저렴해서 부모님 모시고 가기에는 더 좋을 수 있다.


나머지 도시 중에서 좀 더 오래 있었을 걸 하는 곳을 꼽자면, 시마바라 일정이 워낙 짧아서 아쉬웠다. 국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관광지인데 볼 것도 많고 조용한 곳이다. 다만 외국인이 예약할 수 있는 숙박시설이 워낙 없다는 게 아주 큰 단점이다. 운젠도 천천히 온천을 하면서 휴양하기에 좋았을 것 같은데 일정이 짧아서 아쉬웠고 나라이주쿠도 아쉬웠다. 다만 나라이주쿠는 워낙 편의시설이 없어서 오래 머무르라고 하면 많이 심심할 것 같기는 하다.


이렇게 우리의 여행은 끝날 것 같지만… 이제는 동남아다.





강쉡의 먹방일기


도야호에서 기차를 타고 오타루역 전역인 미나미오타루역으로 왔다. 미나미오타루 역에서 가까운 에어비앤비 숙소를 이용했는데 기찻길을 건너면 있는 조용한 마을에 있는 숙소였다. 한적하게 머물기를 좋아해 번화한 오타루 역보다 이쪽이 더 마음에 들었다. 마을 너머로 바다가 보여 조용한 바다마을의 정취를 느낄 수 있었다.



조용한 바다마을에서 오타루 메인 스트리트로 나가면 관광지의 활기를 볼 수 있다. 오르골당과 시계탑, 다양한 디저트가게와 기념품 상점으로 사람들이 북적북적하다. 이 거리 메인에 있는 오르골당은 1902년에 지어졌다. 유럽 건물처럼 중후한 멋이 돋보이는 이곳은 숍이자 박물관 역할을 한다. 2만 여종의 오르골과 골동품, 캐릭터 샵까지 한 건물에 있어 이곳저곳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다. 마치 테마파크 갔다. 건물 앞쪽에는 증기로 움직이는 시계탑이 있어 사람들이 기념 촬영을 한다.




오타루는 유리공예품과 디저트, 해산물 등 유명한 홋카이도의 모든 것들이 모여 있어 구경하는 맛이 있다. 우리나라에도 입점해 있는 유명한 디저트 가게인 르타오는 관광객들이 너도나도 기념과자를 사간다. 곧 여행의 끝인 지라 선물을 사려했는데, 솔직히 너무 비싸서 나도 못 먹는데 싶은 억울한 맘이 생겨 삿포로에서 사기로 했다.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오타루 운하가 보인다. 위아래로 푸른 풍경과 살랑바람이 불어 기분이 좋아진다. 물을 품은 풍경 옆으로 아기자기한 창고들을 개조 한 카페와 음식점들이 있다. 햇볕은 따사롭지만 덥지는 않아 음악을 들으며 운하 옆 산책로를 한참 동안 걸어갔다. 


오타루 운하


KFC 오타루점 |


오타루 메인스트리트를 지나니 배가 고파 급하게 갔다. 메인스트리트에 먹을 곳이 많기는 한데 대부분 이곳의 특산 해물 덮밥 아니면 디저트 종류다. 가격도 비싸 거니와 점심에 날 것을 먹기가 싫어 걷다 보니 KFC가 눈에 띄어 간단하게 한 끼를 해결했다.


11가지 비밀 시즈닝과 압력 튀김기를 이용해 전 세계 시장을 휘어잡은 프랜차이즈 체인이지만 치킨 강국인 우리나라에서는 유독 힘을 못쓴다. 딜리버리 서비스의 선점에서 밀리고, 감자튀김의 혹평과 투자사 마케팅의 실패 등으로 인해 현재는 주요 시내에서만 볼 수 있는 정도다. 


반면 일본에서는 KFC는 최초 진입 마케팅을 “크리스마스에는 치킨을 먹는다”로 하여 이 마케팅이 대박 나면서 크리스마스 = KFC 치킨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잘 팔린다고 한다. 일본 크리스마스 배경의 드라마나 애니에서도 쉽게 볼 수 있다. 


치킨 콤보 세트


우리나라 KFC와 다르게 크리스피 치킨이 없고 대신 시장 느낌의 물반죽 튀김옷으로 껍질에 수분이 많고 눅눅한 오리지널 케이준 프라이 치킨이다. 세계 KFC 중 크리스피가 있는 나라는 많지 않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거의 기본처럼 팔리는 인기메뉴인 핫크리스피는 일본에 없거나 이벤트 느낌의 사이드 메뉴로 취급된다고 한다. 염지 기술이 원체 뛰어나 간이 잘 배어있어 맛은 매우 좋다. 미국의 버펄로윙의 거대한 버전 같다. 짭짤한 치킨과 궁합 좋은 새콤달콤한 코울슬로는 익숙하면서도 아는 맛으로 거부감이 없다. 



맥스벨류 |


모둠 소고기 세트


일본 대형 체인마트 맥스벨류에서 저녁식사를 위해산 모둠 소고기 세트다. 우리나와 달리 일본은 대부분의 구이용 고기도 얇게 잘라서 세팅하여 두툼한 걸 좋아하는 우리나라 사람들 입맛에 조금 안 맞기도 한다. 하지만 마감전 30% 할인으로 판매하는 구이용 소고기의 유혹은 견디기 힘들었다. 아침식사용 빵과 술까지 해서 3만 원이면 푸짐한 두 끼 식사를 즐길 수 있어 일본에 있는 동안 마트를 끊기가 어려웠다. 



마지막 여행지인 삿포로로 숙소를 옮겼다. 삿포로는 역이 매우 크고 역마다 연결되는 지하상가와 통로로 있다. 겨울이 길어서 그런지 역과 역 사이를 지하로 연결해 지하 도시를 형성해 놓았다. 우스갯소리로 지상으로 다니는 사람은 중국, 한국 관광객뿐이라고 한다. 일본의 다른 지역과는 비할 데 없이 시원하지만 지상은 여전히 더워 지하로 다니니 한결 다니기가 좋았다. 


오사카에 유명한 간판 글리코 상이 있다면 삿포로에는 닛카상이 있다. 포커 카드의 킹을 닮은 이 간판은 일본 유명 위스키 브랜드라고 한다. 간판 앞 사거리는 예스러운 노면전차가 다니고 밤이 되면 반짝이는 전광판들로 둘러싸여 또 다른 매력을 보여준다. 이곳에는 쇼핑타운도 뭉쳐 있는데 삿포로가 마지막이라 그동안 짐 때문에 미뤄왔던 쇼핑 욕구가 폭발한 나는(오변은 쇼핑을 안 좋아한다) 시내를 돌아다니며 아기자기한 일본 식기류와 조미료들을 찾아다니며 쇼핑을 했다. 그동안의 응어리가 조금 풀리는 듯했다. 



다음날 우리는 일찍 비에이 투어를 갔다. 이번 여행에 마지막으로 신청한 투어다. 비에이 지역은 가는데만 약 3시간이 걸리고 대중교통이 적다. 그래서 뚜벅이로 다니기에는 보고 싶은 곳도 많고 일정이 빠듯해 투어를 신청하기로 했다. 결과적으로 꽤 좋은 선택이었다. 비에이에는 홋카이도에서도 넓은 평야 지역이 많아 가는 곳마다 볼거리가 많다. 사진으로 담기지 않는 광활함과 탁 트인 풍경에 기분이 상쾌해진다. 


팜도미타 - 비에이 마을 - 청의 호수 - 흰 수염폭포 - 사계채언덕 - 패치워크 로드 코스로 투어를 했는데 갑자기 비가 쏟아져 투어의 하이라이트인 청의 호수를 갔을 때에는 폭우 속에서 구경을 하게 됐다. 날씨 요괴가 마지막까지 활약을 했지만 덕분에 유니크한 풍경을 봤다며 긍정회로를 돌렸다. 


안내해 준 가이드의 열과 성을 다한 사진 촬영과 각 지역 설명을 해줘 무지하게 가는 것보다 비에이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고 하루에 12시간을 달려 엄청난 압축률을 자랑하는 투어 일정은 우리를 충분히 만족스럽게 해 주었고 숙면을 하게 했다.

팜도미타의 보랏빛 라벤더 밭
비 오는 날의 청의 호수(생각보다 작았다)
패치워크 로드의 광활한 풍경은 가슴까지 시원해진다.


수프카레는 홋카이도를 대표하는 명물요리로 삿포로에 특히 맛집이 많다. 꽤 만족스러운 메뉴라서 있는 동안 각기 다른 두 집을 방문했다. 기본적으로 메인토핑을 고른 후 매운맛을 단계, 밥사이즈, 추가 토핑을 선택해 주문한다. 


히리히리 2호점 |


뼈치킨 카레 & G 프랭크 카레


멀건 국물에 구워진 채소와 각각 메인고명인 닭다리와 소시지가 들어 있다. 닭다리와 소시지는 당연히 맛이 좋지만 이 집의 메인은 국물이다. 카레맛이 나면서도 살짝 새콤하다가 이내 화하게 매운맛이 감돈다. 코코넛 밀크도 들어가서 똠양꿍도 아닌 것이 매운탕도 아니고 오묘한데 계속 떠먹게 된다. 국물러버인 나에게는 정말 맘에 드는 메뉴였다. 찰기 있는 흰밥을 떠서 국물을 적신 후 토핑을 얹어 먹으면 게임 끝이다. 안에 구운 채소들은 불맛이 입혀져 있고 미니감자는 포슬포슬 한 식감에 단맛이 돈다. 




스아게+ |


삿포로 스스키노역 번화가에 있어 항상 사람이 많다. 꼬치에 따로 구운 채소들을 꽂아 주기 때문에 비주얼에서 좋다. 웨이팅이나 주문 시 시간이 좀 걸리는 집으로 여유 있게 방문하는 게 좋다. 이 집은 페이스트와 육수를 따로 섞어 조리하기 때문에 육수를 선택할 수 있고 가라앉은 페이스트를 잘 저어서 먹어야 한다.


양고기 카레 


숯불향이 물씬 나는 양고기가 고명으로 올려진다. 기본 국물이 묽지만 농후하고 신맛이 덜하다. 버섯, 연근, 단호박등 기본 구운 채소 토핑도 맛이 좋다. 양고기는 잡내는 없지만 숯불향이 세서 카레 본연의 맛을 조금 해칠 수 있다. 



 

비에루까페 |


비에이 마을에 있는 조그마한 카페 겸 밥집. 예쁜 외관과 다르게 할머니와 할아버지 분들이 몰린 손님들을 맞아 전투적으로 운영하신다. 대부분 투어로 중간에 방문하는 비에이 마을은 점심식사를 위해 가기 때문에 항상 손님이 많고 주문하면 꽤 시간이 걸린다. 가이드들은 투어 스케줄에 지장이 가면 안 되기 때문에 실시간으로 소통해 점심식사 주문 현황을 체크하고 장소를 바꾸기도 하는데 흡사 007 작전을 방불케 한다. 



카레우동 정식 


일본 전 지역에는 우동을 이용한 다양한 메뉴가 많이 있는데 홋카이도 지역은 카레를 좋아해 카레 우동 메뉴를 개발한 케이스다. 다른 지역 카레우동과 다르게 구운 채소와 카레를 곁들인 뒤 치즈를 올려 오븐에 구워 낸다. 흡사 그라탕 같은 비주얼을 보여준다. 의외로 맛은 우리가 아는 맛이라 감명적이지는 않지만 한 번쯤 먹어볼 만하다. 달달한 계란푸딩까지 세트로 즐길 수 있다.



에비가라아게동 세트


두툼한 새우튀김과 가라아게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세트. 깔끔한 반찬과 고슬고슬한 밥, 바삭하게 튀겨진 튀김의 조합으로 실패 없는 메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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