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를 통한 성장, 그 '포만'을 열다

[응답하라1994 리뷰] 커플리뷰

by 소소랍

<응답하라1994> 9화의 초반부, 법정연령 18세의 한 소년이 20세의 한 소녀에게 목이 졸리고 있다. 뒤로, 기괴한 소리가 지나가는데, 1994년 서태지의 교실이데아 백마스킹 논란에 대한 방송이 흘러나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소년이 마침 소녀에게, 악마의 소리가 백마스킹 된 것이 맞다고 말을 던진 모양이다. 20세의 소녀는 서태지의 광팬이다. 소녀는 소년의 목을 조르며 그건 루머라고 그런 말 하지 말라고 한다. 소년은 억울한 듯이 티비에도 그런다며, 왜 자기에게만 이러냐고 하면, 소녀는 소년이 재수없어서, 싫어서 그렇다고 말한다.


9화의 부제는 [그러니까, 내가 하고 싶은 말은]인데, 9화에선 교실이데아 악마소동과 함께 빙그레의 음악에 대한 고민과 나정의 매직아이 문제가 나온다. 빙그레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몰라서 막연히 있을 때, 쓰레기는 음악을 해보라며 넌지시 말을 던지고, 나정이 칠봉이가 내준 매직아이 문제를 풀 수 없어 고전하고 있을 때, 쓰레기는 옆에서 그 문제의 답을 눈치챈다. 목조름 소동이 끝난 후 소년, 그러니까 삼천포가 해태 옆에 앉자, 해태는 무심코 둘이 결혼할지도 모른다는 말을 던진다. 9화는 타인이 보았을 때는 명확해 보이지만, 자신에게는 쉽게 보이지 않는 스스로의 진심을 이야기하고 있다. 나정은 칠봉이의 마음을 모르고 관심도 없으니 끝까지 매직아이가 보이지 않고, 빙그레는 쓰레기가 직시해준 대로 음악을 해보겠다며 대학가요제에 나가보기로 한다. 그러니까, 9화에서 하고 싶은 말은, 내 마음 속에 담긴 진심을 알아내는 것, 그건 어렵지만 삶에서 중요한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소녀의 어머니는 귀가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마치 소녀도 그런듯 세상과의 교류를 닫고 긴 옆머리로 자신을 감춘다. 소년은 결벽증이 있다. 사람들 사이에 사는 것은 지저분하고 완벽하지 않고, 비합리적인 소모전인 것 같다. 소년은 정직하게 탄 가운데 가르마처럼, 자신의 믿음대로 자신의 가치관을 지키며 살아왔다. 소년과 소녀는 타인과 진심어린 교류를 나눌 생각이 없다는 데서 서로 닮았다. 사회라는 거대한 교류의 장에 입장하기에 앞서, 소녀는 방패를 들어올려 두려운 눈을 숨기고, 소년은 온갖 생채기에도 어깨에 힘을 빡주고 버티고 있다. 그러다 둘 다 뒷걸음질 쳐 걸어들어간 자리에서 서로의 등에 맞닿는다.


고만고만한 두 꼬맹이는 마찬가지로 고만고만한 상대를 보고 어떻게 행동했을까? 서로를 믿고 의지했을까?


8화에서 귀가 들리지 않는 소녀의 어머니를 소년은 말없이 배려하고 그런 소년을 소녀는 놀라운 표정으로 바라본다. 귀가 들리지 않는 그녀의 어머니와 대화하고 딸에 대해 걱정 끼치지 않으려고 한 그 마음이 읽혔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삼천포는 윤진의 마음에 처음으로 발을 들인 타인이 된 것 같았다. 그런데 둘은 이어진 9화의 장면에서 목을 조르고 싸우고 있는 것이다. 고만고만하게 닮은 둘은 서로의 머리를 누르며 키재기에 바쁜 것도 같다.


소년과 소녀, 그러니까 삼천포와 윤진이가 아등바등 싸우는 광경을 뜯어보면, 먼저, 윤진이는 같은 소리를 하는 해태에게는 소리를 지르는데 그친다. 윤진이는 해태의 다름에는 큰 관심이 없지만 삼천포의 다름은 목을 조르고 싶을 정도로 화가 나는 모양이다. 삼천포는 타인에게 관심을 잘 두지 않는데, 성동일이 윤진 앞에서 악마소동에 관한 기사를 읽어내리자 성동일의 신문을 빼앗는다. 눈치없기로 유명한 삼천포가 윤진의 불편한 심기는 눈치채고 조심한다. 소년이 소녀가 노는 고무줄을 끊고 달아나면 소녀가 다른 소년들은 무시하고 한 소년만을 쫓아가 혼쭐을 내는 모양새다. 삼천포와 윤진이는 서태지의 테이프를 두고 소리 높여 싸우는 척 관심을 드러내고 확인하는 그들만의 놀이 중인 것이다.


소년과 소녀는 서로가 싫은 것이 아니라 다만, 아무런 준비가 되지 않은 채 서로가 서로의 마음에 들어온 것이다. 그러니 과잉 반응으로 자신의 마음에 들어온 타인을 밀어내기 바쁘다. 그들은 키재기 싸움을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마음을 보호하기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다. 하지만 그 노력은 관심을 받고 싶은 욕구와 서로를 향한 무의식적인 시선을 이길 수가 없다. 이미 서로를 확인했는데 감추려고 한다고 감춰지고, 떨쳐내려 한다고 떨쳐지겠는가.


고무줄을 끊고 쫓아가서 소리를 지르는 놀이처럼 유치한 소년과 소녀의 싸움 속에서도 그들의 사랑은 무럭무럭 자라나 10화에서는 의식적으로도 서로를 좋아하게 되고, 자신을 위해 노력하는 상대의 모습을 알게 된다. 타인을 들이지 않았던 둘은, 못 마시는 커피를 원샷하고, 찬물에 손을 담그고, 상대의 어머니를 도와드리며, 상대가 자신을 좋아한다는 걸 알고, 상대를 위해 커피를 코코아로 거짓말을 할 정도로 변해간다. 그렇게 11화에서 윤진이는 긴 단발을 뒤로 모아 묶고는 화사한 얼굴로 아침 식탁에 등장한다. 윤진이는 사랑에 빠졌고, 그 사랑은 세상에 내밀었던 방패와도 같았던 긴머리를 순식간에 걷어버린다.


무서워서, 혹은 관심이 없어서 세상과 닫힌 채로 있었던 소년과 소녀는, 비슷한 서로를 만난다. 어쩌면 비슷한 상대를 만나면 서로에게 끌릴지언정 서로에게 필요는 없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에게 필요한 역할을 상대에게 해주면서 서로의 성장을 견인한다. 나에게 가장 가까운 타인이 되어 낯설고 서툰 세상과의 교류를 시작하는 계기가 되는 것. 소년과 소녀가 마음 속에 간직한 진심은, 그들의 행동을 거꾸로 돌리면 보이는 것, 즉, 서로에 대한 관심이다. 관심은 새싹처럼 돋아나 소년과 소녀를 하나로 묶어주고, 그 관계는 그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갈 자양분이 되어 함께 한다.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고 인정하는 것, 그것은 성장의 포문을 연다. 상대에 대한 마음은 관계맺음의 동인이 되고, 관계맺음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발점이 된다. 그것은, 사람들이 힘겨운 사회생활에서 살아 남기 위해 다른 무엇이 아닌 사랑을 찾는 이유일지도 모르겠다.



2013년의 겨울쯤

응갤, 이전 블로그에 썼던 리뷰 재업.


- 포만은 윤진이와 삼천포의 커플명입니다. 삼천'포'와 윤진이의 머리모양 때문에 붙은 별명인 정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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