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편https://brunch.co.kr/@sosorap/14 에서 이어집니다.
딸딸아들에 끼인 둘째로 자라다보면 익숙해지는 몇가지 중에, 학교가 끝날 때 비가 오면 나의 엄마는 우산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사실이 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수업이 마치고 담임선생님께 인사를 하는데 밖에서 천둥번개가 치며 비가 내렸다. 당시 살던 곳은 바닷가여서, 태풍이 오면 집에 오가는 길에 우산이 뒤집어지기도 다반사였는데, 그 날은 우산정도가 아니라 내가 날아갈 것 같은 기세의 바람이 불었다. 하늘도 그렇게 '노란' 색이 될 수 있다는 것도 - 몇십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날 정도로- 알게된 무서운 날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엄마가 그냥 맞고 오거나 기다렸다가 오라고 했던 것이다. 나는 기다리다가 할 일이 없어 비를 맞으며 집에 갔다. 언니는 친구의 우산을 함께 쓰고 친구집에 가서 우산을 빌려왔기에 집앞에 우산이 하나 놓여있었다. 집에 가서 비에 쫄딱 젖은 나를 보면서 엄마가 빨리 옷 벗고 씻으라고 하시는 게 못내 서운했다.
경험은 어떤 것에 이해와 의미를 부여하는 것 같다. 비가 왔을 때 내게 오지 않은 엄마의 우산이, 몇 년이 지나 동생의 엄마에게서는 가더라. 한동안 비냄새가 나면 나는 '비참한 느낌'과 '챙김받지 못하는 슬픔', '버려진 느낌' 같은 부정적인 감각이 되살아났다. 비에 젖는 것은 엄마에게서 버려진 것, 같이 우산을 나눠쓸 친구도 없는 것이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니, 우산이 없어서 비를 쫄딱 맞은 경험이 타인과 삶을 공유하는 연결선을 제공하는 역할을 한다. 머나먼 이국땅에서 보이는 풍경에 그들의 삶을 읽는 코드가 되었다. 빨간 우산이 집주인의 것인지, 집주인 딸이 학교친구에게서 빌려온 것인지, 비가 와서 길에 있는 것을 주워온 것인지 그 실상은 알 수 없지만. 현재는 맑은 날씨인데 젖어서 밖에서 말리는 중인 우산 하나에, 저 집도 누군가 우산을 가져다 줬을까, 아니면 나처럼 비올 확률 10프로여도 우산을 들고 나가는 사람일까, 생각하게 된다. 이국적인 풍경에 삶이 깃든다. 저 우산이, 보이지 않는 저 우산의 주인을 비참함의 비에게서 보호해줬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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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적인 고통의 벼랑 끝에서 고통이 왜 찾아오는지를 생각한다-
고통스러우면 과거를 향수하지도 미래를 꿈꾸지도 못하게 된다. 사실상 그럴 여유가 없어진다. 그래서 참 아이러니하게도, 현재를 살아가게 만든다. 끊임없이 과거나 미래로 돌아가려는 고개를 고통이 붙들고 현재를 바라보게 한다. 그래서 현재의 감각이 스민다. 그 기억엔 냄새도 나고 촉감도 있다. 아이를 키우며 무슨 생각을 했는지 무슨 이야기를 나눴는지는 기억에 없는데, 아이가 분수토를 했던 순간의 냄새와 어깨에 느껴지던 이물감, 당혹감같은 것들은 어제의 일처럼 생생하다.
고통은 그러므로, 내 삶을 영화나 드라마, 여행가서 창밖으로 스치는 풍경과 달라지게 한다.-그리고 그 풍경을 내 삶을 통해 풍부한 감각으로 꾸밀 수 있게 하기도 한다- 영화에는 복선이 아닌 이상 집에 거미줄이 나오지 않지만 내 집에는 거미줄이 있다. 창밖으로 스미는 풍경은 만질 수 없지만 내 것은 만질 수 있다. 드라마에선 냄새가 나지 않지만 내 삶은 냄새들로 가득차 있다. 모든 체험을 5D로 가능케 하는 것은 그것이 내 삶이요, 내 경험이기 때문이다. 고통이 있기에 나는 현재에 머물러 내 삶의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체험한다.
고통은 목격한다, 나의 지금을.
내가 내 삶에 속해있지 않으면, 내가 내 삶이 주는 감각에 속해있지 않으면, 아무도 내 삶의 감각과 내 삶만이 주는 경험을 겪을 수 없다. 내 삶의 민낯을 아는 것도 나요, 내 삶의 풍경이 어떤 냄새와 촉감을 가지고 있는 것도 나다. 내 삶을 체험하려고 내 삶이 상영되는 영화를 관람한다고 해도 알 수 없는 것들을, 나는 오롯이 경험한다.
2025.3.10
고통의 한복판에 있는 동지들에게 던지는 말처럼 씁니다. 그래도 살아보자고.
- 비냄새는 지금은 좋은 느낌을 더 많이 줍니다. 중학교 때 비맞으면서 ㅁㅊㄴ처럼 뛰어놀다가 학교의 잘생긴 오빠들이랑 놀게 되었던 경험 ㅋㅋ 등등등 좋은 경험도 많이 있었으니까요.
- 엄마도 지금은 이해해요. 어린 동생이 있어 두고 나갈 수 없었던 것도 있겠고 언니처럼 우산가진 친구가 하나는 있겠거니, 했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