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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런치북 계약인간 27화

고과는 고가

by 소소산

어김없이 다가온 고과 시즌. 고과 때면 결과를 받아들이지 못한 팀원들이 한 명씩 사라지곤 했다. 연봉 인상이 안 된다면, 인정이라도 받고 싶은 게 인지상정일터. 하지만 내가 택한 방법은 직주근접 회사를 나가는 것도, 팀 분위기를 해치는 면담 요청도 아니었다.


옆 자리의 동료가 말했다. 정량이 아닌, 정성 평가를 받는 내근직이 정시에 퇴근한다면 A를 받을 일은 없을 거라고. 음, 역시 그럴지도 모른다. 일찍 출근해서 늦게 퇴근하는 동료들이 버티고 있는 이상, 그들이 우선인 것도 당연지사. 하지만 그것은 확률을 높이는 방법일 뿐, 불확실한 시간 뭉개기 경쟁에 나까지 뛰어들 수는 없었다.


한 달에 20시간, 일 년이면 240시간이다.

퇴근 시간이 지나도 한 시간씩 뭉개고 앉아 있다면 한 달에 20시간, 일 년이면 240시간이다. 그렇게 해서 고과를 받는다면 나는 내 역량이 인정받았다고 기쁠까? 나의 대답은 ‘아니’였다. 다만 확인한 것은 그렇게 엉덩이 힘으로 받아내는 고과라면 ‘투자 시간’ 대비 너무나 비싸다는 사실이었다.


나는 노선을 일찌감치 정했다. 고과의 가능성을 바라느니 확실한 퇴근을 하겠노라고. 그러나 언젠가, 정시 퇴근만으로는 고과의 결과를 극복하지 못하는 날이 내게도 오겠지. 업무 시간 내에 능력으로 보여주자고 다짐하며 일해 왔지만, 결국 나의 의도가 전달되지 않는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나라는 계약인간을 알아봐 주는 다른 회사의 문을 두드리는 것밖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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