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 가치가 아닌 삶의 가치로 집을 보다
올해 초 아파트 재건축 설명회에 다녀왔습니다. 부동산도 재테크도 잘 모르지만 1기 신도시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진다는 뉴스를 보니 호기심이 생기더군요.
재건축만 기다리며 나이 들어가는 강남 아파트도 아직 멀어 보이는데 선도지구에 선정되기만 하면 정말 빠르게 진행될까? 집값은 얼마나 오르는 걸까?
부슬부슬 비가 오는 날이었지만 중학교 강당을 거의 가득 메울 정도로 많은 사람이 참석했고, 이들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고 대단한 결심이라도 한 듯이 설명회는 꽤나 거창했습니다.
새로운 국회의원 당선인과 이전 국회의원이 축사를 하고, 재건축 전문가가 정부 정책을 설명하고, 법무법인이 진행 절차와 방식을 설명하고, 마지막으로 건설사 두 군데가 재건축될 아파트의 미래를 제시했습니다.
건설사들은 웅장한 이름을 붙인 강남의 재건축 아파트 사례를 보여주며 이번 재건축으로 ‘강남 같은' 명품 아파트 단지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저는 그 계획이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습니다. 건설사가 보여준 미래에 사람은 없고 재산만 있었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나라에 살면서 집값에 초연해지기는 힘들 겁니다. 집을 소유하는 건 인생 최대의 쇼핑이니까요. 사는 순간부터 점점 가치가 떨어지는 게 당연한 자동차와 달리 우리나라 부동산은 사는 순간 가격이 오를 것을 기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산 집은 가격이 오르는데 내가 산 집의 가격은 떨어진다면 나만 경쟁 사회에서 뒤처지는 것처럼 느껴지죠.
하지만 비교의 대상, 자랑의 대상으로만 삼기에는 집이 우리 삶에 미치는 다른 영향이 너무 많습니다.
밖에서 긴장했던 몸과 마음의 휴식처. 내 취향이 오롯이 담긴 나의 작은 우주. 평범한 매일이 쌓여 한 사람의 인생이 되는 공간. 물론 신축 아파트라면 모든 것이 더 편하고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더 행복할 수도 있겠죠.
문제는 집을 사려는 사람에게 집의 가치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강남, 최고급, 명품처럼 계산적인 표현 말고 집에 머무는 사람이 중심이 되는 인간적인 표현을 쓸 수는 없을까요?
이런 관점에서 제 마음을 움직인 부동산 브랜드가 있습니다. 색다른 공간 경험을 제공하는 매물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부동산 '별집'입니다.
차곡차곡 쌓은 집의 디테일
독서가이거나 업무 특성상 책을 가까이해야 하는 경우 집에 책을 보관할 수 있는 책장이나 별도의 수납공간은 필수적입니다. (중략) 이 집은 이런 원룸의 부족한 수납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기성 가구를 사용하지 않고 테이블과 수납장을 맞춤 제작하여 공간의 활용성을 높였습니다. 이 수납장에 크기별로 꽤 많은 양의 책을 정리할 수 있어 책과 함께 사는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집입니다.
이렇게 집의 차별성을 콕 집어 사용자 입장에서 소개하는 온라인 부동산은 처음 봤습니다.
별집의 사진 촬영과 소개글 작성은 건축을 전공한 전명희 별집 대표가 직접 한다고 해요. 동네와 외관부터 집 내부의 공간별 특성, 창의 위치, 빛의 방향과 세기까지 다정하고 세심하게 알려줍니다.
같은 매물이 네이버 부동산에 올라왔다면 역세권, 신축, 19평, 쓰리룸, 남향 같은 조건 키워드만 적혀 있었을 거예요. 가격은 설명할 수 있어도 가치는 설명하지 못하는 정보죠. 집을 직접 보러 가도 일반인이 짧은 시간 안에 디테일까지 파악하기는 어렵습니다.
별집은 부동산 시장에서 이러한 정보의 비대칭성을 줄이고자 노력했습니다.
저서 <나다운 집 찾기>에서 전명희 대표는 투자 목적의 매물을 찾는 손님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던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에서 소외되었던 사람들을 위한 부동산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세심한 배려가 가득한 집’, ‘명상하는 기분이 드는 집’, ‘일상이 예술로 변하는 순간’, '공식을 따르지 않은 타당한 이유' 등 집을 소개하는 타이틀만 봐도 별집이 주거 경험의 다양성을 추구하는 부동산이라는 게 한눈에 드러납니다.
별집의 비전(브랜드의 원대한 목표)을 어떤 고객에게 어떤 언어로 소통하고 있는지 간단히 정리해 보겠습니다.
비전: 모든 사람이 잠재되어 있는 감각을 일깨우는 즐거운 공간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다.
타깃: 투자를 위한 매물이 아닌 나의 취향과 라이프스타일에 맞는 집을 찾고 싶은 사람들
언어: 집의 특성이 삶에 미치는 영향을 사용자 입장에서, 눈높이에 맞게 소개한다.
(브랜드 비전과 타깃은 <나다운 집 찾기>의 내용을 참고했습니다.)
집을 보는 관점이 달라지면 시야가 넓어질 수 있습니다. 입지나 학군, 아파트 브랜드, 미래 가치만 보면 선택이 폭이 좁아지고 터무니없이 비싼 집만 보이지만 라이프스타일, 행복을 느끼는 조건으로 바라보면 '모두가 선호하는 집'이 아닌 '나에게 좋은 집'을 찾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별집 같은 언어를 쓰는 부동산이 많아지면, 그런 언어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이 조금은 더 건강해질 수 있지 않을까요?
언젠가 제 취향에 맞는 '나 닮은 한 채'를 구하고 싶을 때 저는 별집에 올라온 매물을 먼저 찾아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