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별하지 않는 자세
길을 걷다 보면 쉬이 눈길이 가지 않지만 높이 자란 가로수 나무 사이사이 나지막이 차도와 보도를 구분하는 키가 작은 나무들이 심겨 있는 길이 있다. 매년 가지치기를 얼마나 부지런히 하는지 항상 같은 크기라 더 눈에 띄지 않는 이 나무들은 늘 직육면체 모양을 유지한다. 겨울이면 잎이 없어 이리저리 빽빽하게 엉킨 회백색 앙상한 가지들이 훤히 드러나 보인다. 도로변 울타리로 흔히 쥐똥나무, 회향나무, 병꽃나무, 조팝나무 등을 심는다. 차량 매연과 가지치기로 제 모양대로 자라지 못하는 척박한 환경인데도 울타리 나무들은 다행히 매년 꽃을 많이도 피워낸다.
울타리 나무들 중 이름 때문에 손해 보는 나무는 단연 쥐똥나무라는 생각이 든다. 가을에 검게 익는 열매가 작고 동글동글하여 쥐똥을 닮았다고는 하지만 이 나무의 매력을 간과하고 마구잡이로 지은 이름이란 생각을 머릿속에서 지울 수가 없다. 비위생적인 유해 동물로 쥐에 대한 인식이 나쁜데 거기다 똥이라니, 나무 입장에서는 쥐와는 아무 연관도 없는데 억울할만하지 않은가!
위생이 좋은 시절에 태어나 쥐똥을 실제로 보며 자란 세대가 아닌 나는 쥐똥 모양 열매가 그저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얇은 나뭇가지에 한가득 까만 열매를 매달고 가을로 접어들어 노란빛으로 물든 잎의 작은 나무가 대견해 보이기도 했다. 애정 어린 시선으로 찾아보던 식물의 이름이 쥐똥나무라는 것을 안 뒤로는 가을마다 안타깝고 애잔한 감정이 일렁인다. 이 또한 쥐똥나무란 이름과 모습에서만 느낄 수 있는 매력일 것이다.
쥐똥나무의 진짜 매력은 하얀 꽃들이 가지 끝에 조롱조롱 피어나는 오월이면 확연히 알 수 있다. 꽃 한 송이만 놓고 보면 천리향 꽃과 비슷한 모양인데 천리향은 살짝 위에서 눌러 납작한 느낌인데 반해 쥐똥나무 꽃은 네 갈래로 갈라진 길쭉한 통꽃이다. 천리향 꽃과 마찬가지로 쥐똥나무의 하얀 꽃도 향기롭다. 천리향의 진하고 달달한 향은 이미 많은 이들이 알고 있지만, 쥐똥나무 꽃향기를 아는 사람은 드물다. 스치듯 은은한 봄 향기를 풍기는 쥐똥나무는 지나는 이들의 발걸음을 사로잡는다.
가로수 길에서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쥐똥나무 크기는 50~60cm에 불과하다. 본래 쥐똥나무는 2~4m까지 크는 관목이라고 하니 제 키만큼 욕심껏 자란 쥐똥나무를 봄에 만나게 된다면, 내 키보다 높이 드리워 아래로 쏟아지듯 늘어뜨린 하얀 꽃들과 진한 봄 향기가 얼마나 황홀할지 상상만으로도 짜릿하다.
식물뿐만 아니라 사람들 사이에서도 이름, 직장, 학벌 등이 누군가의 진짜 모습을 대신하는 경우가 많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우리는 사람을 만나보기도 전에, 본래의 모습을 알기도 전에 한정된 정보만으로 색안경을 쓰고 상대방을 대하기 일쑤다. 하지만 요즘 같은 세상에 만나는 모든 사람을 세세히 알아보고자 마음먹는다면 내 에너지는 금방 고갈되고 말 것이다. 우리가 마음을 여는 사람이나 관계는 대게 나와 가치관이 비슷하여 말 한마디가 편한 경우가 많다. 이런 경우에는 천천히 알아간다는 단계 없이 허물이 이 물어지고 만다. 천천히 알아갈 단계가 필요한 사이란 나와는 분명 다른 가치관, 의견, 분위기를 가지는 사람이다. 여기서 우리는 불편함이라는 늪을 회피하듯 본능적으로 관계를 단절하기도 하고, 스트레스 관리법으로 빠른 인간관계 정리가 왕왕 추천되기도 한다. 하물며 식물의 매력을 깨닫는 것도 사계절 한 바퀴를 돌아보아야 하는데 사람이라는 더 복잡하고 난해한 존재를 알아가는 데에는 시간의 여유를 더 들여야 하지 않을까!
한 사람을 온전히 알기란 본인이 아닌 다음에야 불가능한 일이나 나와 달리 보이는 사람의 매력을 천천히 알아가는 일은 나를 존중하는 한 방법이기도 하다. 입장 바꾸어 타인이 나를 선입견으로 대하고, 관계 쌓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상처를 남기는 사이가 될 뿐이다. 사람의 매력을 진중하게 알아가는 과정은 진득한 관계를 만들고 이는 인생의 큰 선물이다. 나와 다르다고 타인을 관계의 대상에서 섣불리 배제하거나 선입견으로 판단하지 않아야 한다.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이 미래에 진득한 관계로 발전하게 될지는 미지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을 차별하지 않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