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초등학생들도 방학숙제가 많은지 모르겠지만 삼십여 년 전 나의 국민학교 시절에는 방학 때마다 숙제가 많았다. 기본으로 일기 쓰기, EBS 탐구생활 활동하기, 독후감 쓰기, 그림 그리기, 발명품 만들기 등의 숙제가 있었다. 순식간에 지나가는 방학을 끝 낸 개학날에는 가방 가득 방학숙제를 채우고 가방에 들어가지 않는 만들기 작품이나 큰 사이즈의 그림은 고사리 손에 들고 등교해야만 했다. 개학날부터 혼나지 않기 위해 친구와 손 흔들며 인사할 여유도 없이 두 손 가득 숙제를 바리바리 싸들고 학교를 갔다.
5학년쯤으로 기억하는데 여름방학 숙제로 식물표본 만들기가 있었다. 어렸을 때부터 식물을 좋아했기에 이 숙제는 흥미를 가지고 어렵지 않게 두꺼운 스케치북 한 권을 금방 채웠다. 숙제가 금방 끝나버린 것이 많이 아쉬웠는데, 학교에서 배운 나란히맥과 그물맥이 떠올랐다. 스탬프패드에 잎 뒷면을 눌렀다가 종이에 찍으면 잎맥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신이 나서 바로 '잎맥 도장'을 실행에 옮겼고 예상대로 잎맥이 종이에 잘 드러났다. 보랏빛으로 선명하게 찍힌 잎맥 아래에는 배운 것을 자랑하듯 잎마다 나란히맥과 그물맥을 맞추어 연필로 꾹꾹 눌러 적었다.
식물표본에 사용한 풀과 나무들은 우리 집 화단과 대문 앞 골목에 있는 식물들이었다. 우리 집 화단에는 그 시절 마당 있는 집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분꽃, 맨드라미, 공작초와 같은 화초들이 철마다 소박한 꽃을 피웠다. 하필이면 채송화! 슬기로운 의사생활 드라마로 더 유명해진 이름 채송화도 식물표본 중 하나였다. 잎이 통통하고 물기가 많아 신문지에 끼워 말리기도 어려웠는데 채송화 잎은 잎맥이 없었다. 모든 식물은 나란히맥과 그물맥으로 나누어진다고 철석같이 믿었는데 해결되지 않는 난제가 생긴 것이다. 다른 잎들은 큼지막하게 잎맥을 적어 넣었는데 채송화만 빈칸으로 두면 안될 것 같아 작고 소심하게 '나란히맥도 그물맥도 아닌 것 같아요. 잘 모르겠어요. 알려주세요.'라고 적었다.
내심 나의 알려주세요라는 물음에 선생님이 꼼꼼히 숙제 검사를 하시고 명확한 답변을 해주시리라 기대했다. 그때만 해도 선생님은 내가 모르는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찾아 주실 수 있는 사람이라 생각했다. 지금은 인터넷 검색으로 누구나 자유로이 궁금한 것을 찾아볼 수 있지만 도서관도 변변치 않았던 나의 어린 시절 궁금증은 자연백과 전집과 선생님을 통해야만 해소할 수 있었다. 기대와는 달리 돌려받은 식물표본 스케치북에는 표지에 '참 잘했어요!' 도장 하나만 덩그러니 찍혀있을 뿐 채송화 잎맥에 대한 답이 없었다. 그렇게 선생님에 대한 실망과 함께 잎맥에 대한 기억도 사그라들었다.
초등학교 기억이 가물가물한 서른 살이 되었을 때, 갑자기 '다육이'라는 단어가 회자되며 여기저기 다육농장이 생기는 열풍이 불었다. 통통하고 작고 귀여운 식물들을 일컬어 '다육이'라 부르는 것은 알겠는데 정확히 어디서 나온 말인지 어떤 식물이 '다육이'인지 모호했다. '다육이'는 내가 모르는 새로운 종류의 식물이라고 막연히 추측만 하다 지인들과 다육농장을 방문할 기회가 생겼다. 다육농장에는 나의 상상과는 달리 처음 보는 특이한 모양의 식물들 뿐만 아니라 흔히 보아왔던 선인장도 많았다. 그제야 줄기나 잎에 물을 저장하고 있는 다육식물이라는 분류를 뒤늦게 알게 되었고, 다육식물의 한 종류로 선인장을 받아들이면서 식물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졌다.
초등학교 때 배웠던 나란히맥과 그물맥을 적용하여 분류할 수 있는 잎들은 납작하고 평면적이다. 하지만 다육식물은 입체적인 잎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밖으로 잎맥이 표출되지 않는다. 대신 물을 빠르게 흡수하여 잎을 통통하게 물로 가득 채울 수 있다고 한다. 어린 시절 골목길 화단을 원색의 색종이 색깔로 알록달록 물들였던 채송화는 다육식물이었던 것이다. 다육식물이라는 분류를 알고 있다면 손쉽게 채송화를 다육식물로 받아들일 수 있지만 그 지식을 모른다면 간단한 문제라도 결국 오랜 시간 해결하지 못하는 수수께끼가 된다.
좁은 식견으로 세상을 보면 쉬운 문제도 어려워지기 마련이다. 단편적인 지식이라도 하나 둘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며 내 안에 받아들이며 배우는 자세는 바로 티가 나지는 않지만 나를 변화시킨다. 배움의 자세는 아집의 우물에서 나를 끌어올리고 나이 들어 감의 과정에서 점점 더 머리를 숙이게 만든다. 모르고자 하면 당장 오늘은 편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이라는 긴 여정에 깊이를 더하고 향기를 담고 싶다면 지식을 갈망하고 생각하며 지혜를 켜켜이 쌓아 올려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