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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ther Oct 07. 2023

여긴 너에게 맞는 곳이니?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

새로운 식물을 집안에 들이는 일은 항상 설렌다. 다만 슬프게도 식물을 잘 키우는 편이 아니다. 어쩌다 보니 집에 키우는 화분이 많아졌음에도 눈으로 보기에 정말 잘 자랐다 싶은 아이들이 별로 없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가족들은 근근이 살려놓는 고문 그만하고 이제 좀 놓아주라는 농담 아닌 진담을 나에게 자주 하곤 한다. 아직까지는 가족들의 구박을 꿋꿋이 버텨내며 거실 한편에 크고 작은 서른 여개 화분들의 자리를 잘 지켜내고 있다.


한 번씩 도심 외곽을 지나다 보면 큰 화원들이 발길을 유혹하고 참새 방앗간 마냥 홀려서 들러보곤 한다. 한두 개씩 마음에 들어 사 오기도 하는데 그럴 때면 항상 신랑에게 허울뿐이지만 허락을 받는 모양새를 취한다. 옷이나 가방이야 몰래 사서 잘 넣어두면 눈치채지 못할 테지만, 식물을 그렇게 키울 순 없으니 자연스레 새 화분이 거실에 있을 테니 놀라지 말라는 어쩌면 또 놀리지 말라는 뜻으로 허락을 구하게 되었다. 


신랑은 허락을 해주면서도 또 죽이려고 그러냐 몇 마디 하지만 새로운 식물 들이는 일을 반대하지는 않았다. 얼마 전 너무 마음에 드는 식물을 발견했다. 함박꽃과 비슷한 꽃이 피어 있었는데 화려한 색감은 아니지만 간결한 모양의 꽃과 잎이 마음에 들었다. 신랑을 힐끔 쳐다보며 "너무 예쁘다. 저거 하나 키우면 안 될까?"라고 허락을 구했다.


"있는 거나 잘 키워!"라고 말하는 신랑의 표정이 매우 익숙하다. 그 표정은 무슨 일이 있어도 당장은 절대 안 들어준다는 뜻이다. 일단 후퇴하고, 돌아오는 차 안에서도 찍어온 꽃 사진을 들여다보며 아쉬운 티를 내었지만 역시나 이번엔 어렵겠구나 다시금 분위기 파악을 했다.


머릿속에서 그 꽃 생각이 맴돌기를 며칠, 오기가 생기기 시작했다. 사실 지난번 새로 들여온 식물(칼라데아 오나타)이 잎이 누렇게 뜨기도 하고 돌돌 말리기도 하며 상태가 좋지 않았다. 분명 화원에서는 진초록 잎에 분홍 줄무늬가 선명하게 펼쳐진 잎이 참 매력적이었는데 몇 달 만에 그때의 모습은 찾기 어려워졌다. 이 화분 잘 살려서 신랑에게 식물집사로 인정받고 눈에 아른거리는 이름 모를 그 화분을 꼭 들여놓으리라!


분명 물도 잘 주고 다른 화분들과 같이 있는데 티 나게 상태가 좋지 않으니 해가 너무 강한가 보다 생각하고 장소를 옮겨 다니기 시작했다. 해가 덜 드는 거실 에어컨 옆, 베란다, 주방, 현관을 배회해도 내 욕심과는 달리 큰 차도가 없었다. 어쩌다 보니 무선청소기 충전기 옆 애매한 장소로 옮겨 갔는데 기대도 하지 않았던 장소에서 새 순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다른 화분들과 같이 나란히 있어주면 좋으련만 청소기를 계속 넣었다 뺐다 하는 이 장소가 화분을 놓기에는 꽤나 불안하고 신경 쓰이는 위치다.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한 번 새 순을 보여주고서는 나는 이곳이 좋아요 말하듯 가운데에서 순차대로 계속 새순이 올라와 누런 잎들을 잘라낸 후 텅 비어 있던 가운데 부분을 가득 채웠다. 대견하다 칭찬해 주고 싶은 마음에 잎도 쓰다듬어주며 닦아 주고 청소기를 놓다가도 괜히 흙도 한번 확인하게 된다. 맞는 장소를 찾아주지도 않고 '네가 견디고 버티며 알아서 잘 커야지!'라고 무책임하게 말한 것만 같아 나의 무관심을 반성하였다. 


사람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사회생활을 하려면 어쩔 수 없이 주어진 환경을 받아들이고 버텨가며 적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도 하지만 식물과 달리 사람은 내가 처한 환경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존재이기도 하다. 내가 잘하는 것은 무엇인지,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자신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다 보면 스스로에게 맞는 곳을 찾아가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자연스레 따라오게 되어있다. 



식물에게 '여긴 너에게 맞는 곳이니?'라고 친절하게 물어보듯 나 자신에게도 같은 질문을 해보아야 한다. 주어진 현재의 환경에 적응하는 노력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다 다르다. 우리는 누구와도 같지 않은 각기 다른 본인의 인생을 책임지고 있다. 내가 빛날 수 있는 곳을 찾아가기 위해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응답에 대해 진실되게 노력하는 자세로 하루하루를 임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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