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other Oct 26. 2024

결핍이 아닌 염원

이팝나무와 국수나무

결핍이 아니라 염원

올봄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서 이팝나무 꽃 축제가 개최된다는 뉴스를 보게 되었다. 남쪽에 자생하는 이팝나무를 서울에서 본 적이 있었던가 기억을 들추던 찰나 뉴스 기자는 20년 전 이팝나무를 청계천에 처음 심었고 현재 서울에서 다섯 번째로 많은 가로수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팝나무의 새하얀 꽃이 나무를 뒤덮이면 어슴푸레 이제는 여름으로 접어드는구나 직감하게 된다. 실제 이팝이라는 이름이 '입하'에 꽃이 피는 입하나무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리고 하얀 꽃이 조선 이 씨 왕조가 먹는 밥을 연상시킨다는 뜻에서 '이밥'으로 불렸다는 설, 보릿고개를 넘는 백성들이 꽃을 보고 배고픔에 쌀밥 '이밥'을 떠올렸다는 설, 꽃이 풍성하게 피면 쌀농사가 잘되기 때문에 쌀밥 '이밥'으로 이름 붙었다는 설이 있다. '입하나무', '이밥나무'로 불리다 발음 상 이팝나무로 정착되었다고 한다. 


어느 한 가지 설이 전적으로 맞다기보다 여러 사람이 이팝나무로 부르고, 뒤이어 각각의 해석이 덧붙여진 면도 없지 않을 것이다. 어떤 설이 맞든 간에 그 옛날 배고픔의 시기인 보릿고개, 귀한 쌀밥을 원하는 열망, 풍요에 대한 소망이 담겨 있기에 공통적으로 식(食)에 대한 결핍을 표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존과 직결된 주식의 결핍이 투영된 이름이라니, 화사한 꽃이 풍성하게 펴 완연한 아름다움을 뽐내는 이팝나무의 모습과는 참으로 역설적이다.

결핍을 이름에 담고 있는 또 다른 나무는 국수나무이다. 산길에 너무 흔하게 발견할 수 있어 오히려 더 눈에 띄지 않는 국수나무의 이름을 듣고 정말 먹는 국수일까 의아했었다. 어디를 보아도 국수와는 전혀 연관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한데 가느다란 가지 껍질을 벗기면 하얗게 속대가 드러나는데 마치 기다란 국수 가락과 닮았기 때문에 국수나무로 불린다고 한다. 껍질을 벗기기 쉽지 않을 정도로 가는 가지인데 껍질을 벗겨 볼 생각을 했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배고픈 시절 무엇이라도 먹을 것을 찾다 산에 지천으로 흔한 국수나무의 가지를 찧어보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하지만 옛 문헌상에는 국수나무가 구황식물로 적시되어 있지 않은 것을 보아, 순전히 가느다란 가지들이 길게 뒤엉켜 있는 모습만으로 우리 조상들은 국수를 떠올렸던 것이다.


지금은 국수가 흔하고 저렴한 음식으로 생각되지만 오래전 국수는 큰 잔치가 있는 날 먹는 고급 음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우리나라는 예전에도 밀 재배가 많지 않았고, 국수를 먹으려면 밀을 어렵게 구해야만 했다. 평생의 중요한 날에만 먹을 수 있었던 국수, 혼례날 긴 국수가락을 먹고 오래오래 행복하고 건강하게 함께하길 바라며 귀한 밀을 구하여 국수를 만들어 대접했던 그 마음이 참 고결하다. 


그러고 보면 우리 조상들은 주변의 흔한 나무에(이팝나무는 남부지방에서는 흔한 나무였다.) 결핍을 투영한 셈이다. 눈만 뜨면 보이는 나무들에 쌀과 국수라는 이름을 붙인 연유는 무엇일까? 자주 먹지 못하는 쌀과 국수를 굳이 나무에 이름 붙이고 그 이름을 부르는 것은 미련일까? 욕심일까? 눈만 뜨면 보이는 나무를 보며 쌀과 국수를 떠올리고 그때마다 고통스러웠다면 아무리 꽃과 가지가 쌀과 국수를 닮았다고 해도 분명 다른 이름을 붙였을 것이다. 오히려 언젠가 내가, 내 자식이, 내 이웃이 먹을 쌀밥과 국수를 염원하고 기쁜 날을 기대하는 염원이 담긴 작명이었을 것이다. 간절히 염원하면 이루어지리라는 긍정의 마음을 이팝나무와 국수나무에서 찾아볼 수 있다.



누구나 현실에서 크든 작든 결핍이나 걱정거리 한두 가지쯤은 가지고 산다. 결핍을 직시하고 앞으로 나아갈 원동력으로 삼느냐 결핍을 회피하고 불평하며 현실에 안주하느냐 하는 문제는 지금 당장에는 사소한 차이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이 조그만 차이는 우리가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결정하는 단초이다. 힘들고 어려운 일은 우리의 바람과 달리 어느 때든 찾아온다. 밀려드는 파도와 같은 여러 일들에도 불구하고 항상 희망과 긍정의 마음을 먹기는 쉽지 않지만, 그럼에도 그 어려움에 발목을 잡히지 않고 잘 될 것이라 확언하고 노력하는 자세는 나를 변화시키고 나의 인생을 알알이 채워갈 수 있도록 해준다.   


이전 12화 여긴 너에게 맞는 곳이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