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지나다니는 장소는 눈에 익어 잘 살펴보지 않을 때가 많다. 도로 중앙선 대신 종종 보게 되는 화단형 중앙분리대도 우리 눈을 사로잡지 못하는 구조물 중 하나이다. 어쩌면 우리가 화단형 중앙분리대를 잘 인지하지 못한다는 것은 화단이 제 역할을 잘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무성해진 잎 때문에 운전 시야가 가려져 불편할 때나 화단으로 올라 탄 사고차량을 볼 때면 차도 중앙에 식물이 심겨 있었다는 사실을 간간이 깨닫게 된다. 화단형 중앙분리대는 무단횡단이나 불법유턴을 방지하기 때문에 교통사고를 줄이기 위해 설치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미세먼지 저감을 위해 도시의 녹지 공간을 넓히고자 확대하는 지자체도 많다고 한다.
식물을 사랑하고 주변에 식물이 많아지길 바라기는 하지만 식물의 생장을 고려하지 않거나 운전자에게 방해가 되도록 마구잡이로 조성된 중앙분리대를 볼 때면 마음이 불편하다. 좁은 공간과 매연이라는 가혹한 환경인 것을 뻔히 알면서도 인간의 욕심으로 만들어 낸 시설 같이 생각되어, 필수적인 장소가 아니라면 다른 장소에 녹지공간을 조성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더욱이 양방향으로 달리는 차들 사이 좁은 공간에서 아슬아슬하게 제초나 가지치기 작업을 하고 계시는 분들을 보면 안전사고의 위험도 커 보인다.
몇 해 전 출퇴근 길 한 곳에 갑자기 화단형 중앙분리대가 생겼다. 심긴 나무는 주심이 얇고 윗부분에 여러 갈래로 뻗은 가지가 달린 2m가 채 되지 않는 대여섯 그루의 나무가 심겼다. 앙상한 가지는 봄이 오기 직전에 공사를 하여 잎도 없이 연약해 보였다. 새로 생긴 중앙분리대가 익숙하지 않기도 하고, 잎이 달리지 않은 저 나무들이 과연 무슨 나무일지 궁금해하며 매일 출퇴근 길에 중앙분리대를 유심히 관찰하였다.
이윽고 완연한 봄이 되자 잎들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봄의 싱그러움을 알리는 초록 잎이 아니라 검붉은 빛이다. 그러고 보니 위쪽 가지들이 아래로 늘어져 펼쳐진 모양새가 딱 공작단풍이다. 중앙분리대에 공작단풍이라니! 너무 가늘고 어린 나무라 시야를 가리지는 않았지만 공원에서 마주했던 공작단풍의 모습은 풍채가 크고 나뭇잎을 바닥까지 풍성하게 늘어뜨리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잘 못 심었구나!' 생각하던 찰나 차선 끄트머리 마지막 공작단풍은 잎색 마저 초록색이었다. 장소에 맞지 않는 나무를 심었는데 심지어 나뭇잎 색도 달랐다.
초록잎 공작단풍의 잘못은 아닐진대 그 길을 지날 때마다 혼자 튀는 초록 공작단풍이 괜히 안쓰럽고, 어떡하면 좋을까 마음이 쓰이고 눈길이 갔다. 몇 주에 걸쳐 새로 생긴 중앙분리대가 익숙해지고 초록 공작단풍도 눈에 익었을 즈음 다시 보니, 초록 공작단풍이 있던 자리를 붉은 공작단풍이 자리 잡고 있었다. 분명히 새로 심지는 않았는데 어느샌가 잎 색이 옆의 나무와 같이 붉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궁금하여 이곳저곳 뒤적여 보았지만, 공작단풍에 대해 체계적으로 분류하거나 생태적 특성을 제시한 국내 문헌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다만, 편히 알기 쉽도록 공작단풍, 홍공작단풍, 청공작단풍으로 뭉뚱그려 나누어 부르는 듯하다. 일반적인 단풍나무와 달리 공작단풍은 봄에는 붉은 잎을 띄고 여름엔 초록잎으로 바뀌기 때문에 가을에 단풍을 볼 수 없다는 글이 있었다. 홍공작단풍은 그 이름답게 봄부터 가을까지 내도록 붉은 잎을 달고 있고, 가을이면 색이 조금 더 진해진다고 한다. 청공작단풍은 일반 단풍나무와 마찬가지로 가을이 되면 초록 잎이 붉은 잎으로 물든다.
사람도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다르듯이 단풍나무도 여러 종류로 나뉠 것이다. 같은 황인종 이더라도 나라마다 다른 특색이 있다고 느끼고, 개별로 보면 우리는 다 다른 고유한 개체적 특징, 유전적 변이를 가진다. 이제 막 첫 돌을 지난 아이들을 살펴보아도 어른 손을 붙잡고 서있는 아이, 혼자 아장아장 걷는 아이, 뛰어다니는 아이까지 성장 발달도 제각각이다. 사람도 이렇게 다른데 식물도 다 같을 순 없을 것이다. 초록잎을 내보여 나의 관심을 끌었던 그 나무를 보고 잘못되어서 어쩌나 감정이입 했던 것은 참으로 오지랖이었다. 나무는 잘못이 없다. 똑같이 맞추어야 한다고 고정관념에 갇혀 잘못되었다고 판단한 내가 반성할 일이다.
비교하지 않고 하나의 고유성을 인정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우리나라는 개인의 고유성보다는 집단의 일관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크지 않은가! 개인의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서로의 아름다움을 존중할 줄 아는 법을 알게 된다면 빛나는 별과 같은 이들을 우리 인생에서 얼마나 많이 만나게 될지 상상해 보라! 같아지길 강요하지 않고 다름을 인정하고 함께 빛날 수 있는 일을 만들어 간다면 우리는 서로에게 빛나는 별이 될 수 있다.
사진: Unsplash의Nick Fewing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