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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글을 잘 쓰고 있을까?

샌드라 거스의 <묘사의 힘>을 읽고

by 이춘노

내가 글을 남에게 처음으로 보여 준 것은 아마도 일기장일 것이다. 숙제 검사를 위해서 불가피하게 써야 했던 일기는 그래도 선생님만 보고 넘어갔다. 그 후로 공개적인 자리에서 글을 내보인 것은 아마도 중학교 시절에 쓴 독후감인 것 같다. 책은 <노인과 바다>였다. 그 자리에서 내가 쓴 글을 각 학교 2학년 대표와 고등학교 2학년 앞에서 낭독하는 자리였는데, 무척 떨렸다. 그중에는 원고를 보지도 않고 암송하던 누나가 있었는데, 난 보고도 더듬더듬했던 악몽이 내 글을 더 수줍게 만들었다.


기가 꺾였던 것일까? 어느 순간 문학 소년이라 칭했던 나는 글을 쓰지 않았다. 평생 남에게 보일 글은 나와 인연이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서른 중반에 우연한 기회로 ‘복서원’이라는 책 만들기 기획에 참여해서, 오송과 남원을 왔다 갔다 했다. 아마도 그 기간에서 가장 불편하고 두려웠던 시간은 중간마다 점검하는 글 검토 시간이었다. 글쓰기 멘토님의 지적은 둘만의 이야기로 끝나지만, 출판 멘토님 시간은 걱정 그 자체였다.

일단 팀별로 자리에 앉고, 내가 쓴 글을 큰 소리로 읽었다. 대충 A4 세 장 정도를 읽는 와중에 말이 안 되는 문장에서 버벅거렸다. 게다가 비문과 띄어쓰기 등에서 문제는 바로바로 지적이 들어갔다. 얼굴이 화끈거리는 것은 오로지 내가 감당해야 할 일이었다. 한마디로 초고는 쓰레기라는 말을 절감하는 시간이었다.

브런치에 글을 올리기 시작한 3년 차에 문뜩 그런 생각이 들었다. ‘과연 나는 글을 잘 쓰고 있을까?’ 이러한 의문이 들었을 때. 다른 브런치 작가님이 읽고 쓴 글에서 <묘사의 힘>이라는 책을 접했다. 솔직히 글쓰기 책은 많이 접했지만, 구체적인 글쓰기 책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다. 보통은 어떤 글을 써야 하는 주제 의식과 목차를 짜는 방법을 제시했다면, 이 책은 그냥 글 자체의 체질을 말하는 실용서이다. 짧은 글을 쓰는 나에게는 좀 벅찬 내용임은 틀림없다.


다만 이러한 글쓰기 연습이 꽤 필요하다는 점에서는 깊은 공감을 했다. 지난 시간 동안 나는 나를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지? 그러한 생각으로 고민했다. 아무래도 그런 드러내는 기준이 없다면 글은 자기 검열에 빠지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공개했으면, 일단 많이는 아니더라도 꾸준하게 써야 했다. 그런 점에서 브런치는 나에게 자극이 되었다는 점은 확실했다. 한 주에 2편이라는 글을 꼬박꼬박 올리는 작업은 쉬운 일은 아니니까. 주제도 고민하고, 깊은 사색을 했지만, 그래도 뭔가 부족했다.


그것이 아마 묘사가 아니었을지. 그동안 나는 말하는 글을 써온 것도 사실이다. 쓰기도 편하고, 빨리 글을 올리는 점에서는 퇴고가 부족하더라도 가능한 글쓰기였다. 다만 그것이 완성된 글이었느냐는 점에서 처음에 내가 접했던 초고를 남들 앞에서 읽는 부끄러움을 피할 수 있을지? 그 자체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전문적인 글쓰기를 배우지 못한 아마추어 작가 지망생의 열등감으로 치부하기에는 작가의 지적이 꽤 뼈를 때린다. 언젠가는 책을 내고, 유명해지는 것이 막연한 목표라면 오히려 쉬울지 모른다. 하지만 내 글이 작품이 되는 것은 브런치에서의 수많은 작가 말고도 지금 서점에 책들 틈에서도 참 어려운 일이 아닐지. 곱씹어 보는 시간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난 글을 잘 쓰고는 있으나, 작품이 되려면 아직 먼 작가 지망생이라는 것.

노력이 답일 것 같다. 고민보다는 글을 써봐야겠다. 지금 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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