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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는 것에는 도시도 포함된다

간다 세이지의 <마을의 진화>를 읽고

by 이춘노

고향에 살다 보면 좋은 것이 있다. 일단 따로 명절에 어디를 가야 하는 불편함이 없다. 약간 평소보다 주차장이 꽉 차고, 길이 막힌다는 점은 있지만 감수할 수 있을 정도이다. 아마도 명절에만 볼 수 있는 시골 풍경이기 때문에 당연했다.

그리고 서울에서는 친구에게 술 한 잔 얻어먹지만, 고향에서는 내가 술 한 잔을 살 수 있어서 그 또한 기분 좋은 일이다. 혼자 사는 고향 지킴이의 소소한 명절 행복이라면 이 정도다.

하지만, 언제까지 내가 고향에서 이러한 풍경을 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 지방 인구의 소멸이라는 주제로 대학교 강의 시간에 과제를 했던 기억이 거의 17년쯤이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서 내가 고향에 온지도 8년이 지났다. 면접을 위해서 외웠던 인구수도 이제는 앞자리도 바뀌었다. 이대로 내가 60대가 되면, 도시라고 불리던 나의 고향은 어쩌면 사라질지 모른다. 설령 그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내가 아는 행정복지센터 30%는 사라질 것이다. 아니면 도시와 도시가 통합된 곳으로 지명조차 사라질지 모르겠다.


요즘 내 방에 새로 발령받은 면 지도를 벽에 붙여 놓았다. 마을 이름을 외우기도 그렇지만, 사람도 지형도 자주 봐야 눈에 들어오니까. 커피를 마시는 도중이나 글을 쓰는 도중에도 잠시라도 지도를 본다. 그리고 가만 보면 아마 옛날에는 정말 사람이 많았을 곳이라는 것을 짐작하게 하는 마을의 위치나 공간과 길을 흐름을 읽고는 나중에 저 마을도 사라지고 난 후에 면지도를 생각하니 조금 슬퍼졌다. 아마 마을이 사라진 곳에는 푸른 표식만 있을 것이다. 마치 산에는 아무런 표식 없이 경계만 그려 놓은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지방의 모습을 남기고 싶다는 소소한 생각으로 관련된 글도 준비 중이다. 그러한 관심 때문에 우연히 본 책이 ‘간다 세이지’가 지은 <마을의 진화>이다. 사실 일본이라는 곳은 우리보다 지방자치제도가 잘 시행되는 곳이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지방 인구 감소에 더 취약하다. 아마 그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 여러 시도 중에서 성공 사례로 나온 ‘산골 마을 가미야마의 이야기’를 책으로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지방 소멸이란 주제의 해법의 힌트 정도로 보면 적당할 듯하다.

참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난 이 책의 주제와 참여자의 관점에서 모두 해당하는 사람이다. 실제로 나는 가장 귀농·귀촌이 활발한 지역에서 근무했고, 출퇴근 때문에 방을 얻어서 직접 살기도 했다. 또 주민 토론에서도 면사무소 입장에서 참여도 해보았다. 주로 환경 문제로 주민 입장과 의견 청취를 듣는 처지이었지만, 나름 애정을 갖고 공무적 입장으로 참가했었다.

그리고 돌고 돌아 지금의 면사무소로 발령을 받고는 다시금 지도를 보면서 미래를 생각하니 과연 이 책과 같은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 걱정하는 마음이 깊어졌다. 책의 내용처럼 첫째도 둘째도 결국에는 사람이 중요하니까.

책을 덮을 때까지 책 모퉁이에 메모하면서 읽다 보니 성공의 결론은 역시나 외지인에게 개방적인 희한한 마을 사람들이 적극적으로 노력했기에 이룰 수 있었던 결과였다. 실제로 도시와 다르게 마을의 변화는 무척 어렵기 때문이다. 콘텐츠도 그렇지만, 사람의 융화가 어렵다고 할까? 구체적 사례는 참고하며 읽었지만, 유독 눈길이 가는 문구가 있었다.


‘정착하실 거죠?’라는 무언의 압박을 하지 않는 것이 무척 부러웠다. 난 항상 민원대에서 전입신고를 받으면서 얼마나 지내셔야 하는지 물어야 했다. 아니면 내심 그러길 바라고 전입신고를 받았다. 아마도 절실함이 지역에서 강하기 때문이겠지만, 반대로 물으면 난 답할 수 있었을까?


“이곳에는 정착하면 제가 뭐가 좋은가요?”


솔직히 쉽게 대답을 못 하겠다는 것이 소멸 도시라는 주제에 핵심 아녔을지 모르겠다. 물론 여러 가지 해법이 있겠지만, 나도 나름대로 이 지역에 살면서 소소한 노력은 해봐야겠다. 최소한 글로 내 주변을 소개하고, 알리는 작업이라도 말이다. 그거라도 하지 않으면, 정말 내 친구와 술 한 잔 마실 기회조차 사라질지 모르겠다. 그래도 오늘은 명절이니까. 고민은 좀 더 차차 하기로 하고, 부모님과 아침 식사를 해야 하겠다. 지금 나는 고향이 있고, 또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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