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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복지 공무원이 되려는 자. 꼭 읽어주세요

김호연 작가의 <불편한 편의점>을 읽고

by 이춘노


8년을 함께한 내 동기 중 막둥이는 항상 마음이 아픈 형을 챙겼다. 아직도 간간이 개인적 문제가 있어서 나왔다가 들어오길 반복해도 꾸준히 유지되는 단톡방에서, 어느 날 동생이 나에게 책 한 권을 추천했다.


“추노형. <불편한 편의점> 읽어봐. 어쩐지 이 책을 읽으니 형 생각이 났어.”


나는 최근까지 집 밖을 나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해서 동기의 말이 아니었다면, 전주까지 가지도 않았을 것이고, 서점에서 직접 책을 고르는 행동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요즘 같은 인터넷이 발전한 시대에 아날로그적 매장 구매는 가성비가 떨어졌다. 저렴한 가격으로 집 앞에 바로 배송해주는 이득을 버리고, 서점에서 책을 구매한 것은 한마디로 돈지랄이었다.


나는 서른이 되기 전부터 공무원을 준비했다. 당시에는 장래를 함께 할 여자 친구도 있었고, 거창한 목표를 가진 꿈 많은 청년이었다. 목숨을 걸었다는 말로 나의 법원직 시험 준비하는 기간을 표현하면 비슷할까? 새벽부터 자정까지 그런 생활을 주말도 없이 몇 년을 쏟아부었지만, 결국 떨어진 실패자. 그런 내가 당장 신경 쓸 문제는 생계였다. 그래서 내 발로 제목과 같은 <불편한 편의점>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서른이 되기 전이었다. 집안이 폭탄을 맞을 듯. 모든 것이 무너지고, 기대하던 시험도 떨어졌다. 그리고 의지하던 오랜 연인도 점점 사이가 멀어졌다. 총체적 난국이었다. 당장 돈이 필요했던 나는 사이트에 아르바이트 광고를 보고 무작정 전화를 했고, 서울에 고속버스터미널 근방의 세븐 일레븐 편의점에서 면접을 보고 바로 일을 시작했다.

인수인계랄까? 묵은 청소를 했던 걸까? 편의점 곳곳에 묵은 때를 수세미로 문지르며 첫 편의점 하룻밤은 뻐근하게 넘어갔고, 그곳에서 만난 매니저의 인연으로 나중에는 그분을 사장님으로 모시면서 사당역 6번 출구를 오르는 대로변 세븐 일레븐에서 취업 전까지 일했다.


‘묘하게 내 삶과 겹쳐 보이네. 그래서 막둥이가 추천한 건가?’


사실 난 소설을 읽지 않는다. 작년부터 읽으려고 사둔 나쓰메 소세키 소설 <도련님>도 읽다가 말았다. 너무 간지러운 말을 상상하는 것이 부끄럽기도 했고, 소설이 오히려 더 현실 같아서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렇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좋아하는 것이 더 현실인 역사와 인문학이었다. 지금도 방바닥에 탑처럼 쌓여있는 거의 모든 책은 이른바 실용서들뿐이다.


책을 얼마나 읽었을까. 솔직한 소설의 현실에 나는 몹시 불쾌했다. 어쩐지 나를 보는 듯했다. 목욕 후에 보는 거울에 모습이 아니라, 술에 잔뜩 취해서 엉망이 된 민낯을 보는 기분이었다. 보통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하는 이유가 대리만족이다. 이루지 못하는 꿈을 대신 이루는 카타르시스가 존재해야 마약에 취한 듯 챙겨보고, 즐거워한다.

그런데 너무 어둠 가득한 현실에는 좀 불편한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맞는 말이지만 그렇다고 인정하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초라해진다. 누구나 알지만, 대신 모른 척한다. 이 소설도 내게는 그러한 감정의 버튼을 눌러 버렸다. 그래도 책장을 계속 넘기는 것은 순전히 작가의 필력이겠지.


나의 인생을 글로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해본 것은 2019년 어느 날이었다. 무작정 도전한 글쓰기 프로그램에서 30대 후반에 책을 쓰게 되었다. 물론 서점에 깔리는 책은 아니다. 국회 도서관 한쪽에 책이 있고, 손으로 잡을 수 있는 내 책이 200권쯤 생겼다. 사실 그때도 일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 중이었다. 휴직을 고려 중이었고, 그 후에는 무엇을 할지 몰랐다. 답답했다. 일을 그만두려는 사람인데, 그 고민을 담은 사회복지 책이 없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내 이야기를 써봤다. 부족하지만 브런치에도 종종 글을 올리는 중이다. 주로 먹는 이야기를 아니면 고양이 글을 썼다. 그러면서도 사회복지 관련 글은 잘 써지지 않았다. 뭐랄까? 확신이 없는 삶에서 내 이야기가 타인이 보기에는 괜한 참견이나 실패자의 변명처럼 들릴지 몰라서 조심스러웠다.

내가 도전했던 <복서원>이라는 프로그램도 올해로 10기가 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매년 15명은 꾸준하게 책을 만들고 있으니, 내가 아니어도 현장의 글을 만들어지고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내가 속한 해에 기수 중에서는 내가 제일 나이가 어렸다. 이러한 짧은 근무 기간으로 무엇을 논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브런치 유입경로 검색어에는 ‘사회복지 공무원’이라는 단어가 매주 검색된다. 뭔가 궁금해하는 그것을 알지만, 애써 모른 척했다. 솔직히 나 혼자도 버거운데, 일 이야기하기 참 불편했다.

그러다 이 책을 접했다. 그리고 책을 덮고 나서 느꼈다. 이 책을 읽고는 내가 변하겠구나, 이 글을 쓰고 나는 결심하겠구나, 또 이대로는 안 되겠구나. 나를 아는 여러 사람은 나를 규정할 때 어떻게 바라볼지. 뻔하면서도 그런 나는 어떤 모습으로 살았는지 떠올렸다. 스스로 말하기에는 좀 그렇지만, 내 인생도 참 평탄하지는 않았던 삶이었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도 그렇지만, 그 후에 삶은 단언하건대 어떠한 의미로 화려하다. 지금 현장으로 돌아간다면, 주변에서 노숙자가 편의점 야간 아르바이트가 된 것 이상으로 쳐다볼 것을 알기에 조심스러운 것 같았다.


이 책에서 느낀 것은 딱 세 가지였다. 그중에 첫 번째는 우리 과장님이나 과거에 모시던 상사들이었다. 그리고 나보다 두어 살 많았던 사당역 편의점 사장님이 떠올랐다. 나보다 큰 존재들이다. 그렇기에 내가 이곳에 있을 수 있기에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러웠다. 이것은 학교만 나가도 아는 현실이다. 어른이라고 해서 자리가 높다고 해서 모두 제 몫을 하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어른이었던 상사였다.

두 번째로는 내 주변에 항상 출몰하던 제이에스(작품에서 말하는 이른바 진상이다)들이었다. 편의점에서도 그랬던 사람이 있었다.


“담배 거.”


짧은 그 단어와 모멸감 가득한 말투로 돈도 던지고, 내 실수를 물로 늘어져서 나에게 시비를 걸던 손님들. 물론 입사를 하고는 밑바닥까지 떨어진 사람부터 일반적인 사람들을 모두 상대했다. 결론적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모두 제이에스들이었다. 어떻게든 나와의 통화나 대화로 화풀이를 하려고 했던 사람들. 특히나 사회복지 공무원들은 편의점에 던져진 야간 아르바이트생 같았다. 복지 업무를 하면서 어색하지 않게 일했던 것도 그런 비슷한 경험들 때문이겠지만, 어느 순간 그런 삶들이 나를 치게 했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이 보였다. 주인공이 이 책에서 누구일지 생각해보다가 결국은 ‘독고’라고 생각한다면, 그건 나 아니었을까? 아까 말했듯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은 여러 가지겠지만, 그다지 긍정적이지 못하다. 아마 경멸을 하거나 동정을 해주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어쩌면 보호를 받거나 배척을 당하는 어느 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는 내 일을 하면서 타인이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을 챙기며 살아왔다.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나도 누군가에게는 제이에스지만, 난 누군가에게 그 제이에스에게 온전히 고통받으면서도 그를 챙기던 1인이었다.


사실 올해는 그만두고 정말 진상의 삶을 살아볼까 했다. 떨리는 손으로 잠이 오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면, 차라리 그들처럼 누군가에게 화풀이하면서 맘 편하게 살면 적어도 수면제는 먹지 않지 않을까? 내심 내 정도의 독함이라면 ‘제이에스 오브 제이에스’가 될 자신도 있었다. 나를 힘들게 한 세상에 소리 지를 수 있게 맘 굳게 먹고 그만두려 했다. 아마 그랬다면 볼만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아무것도 거칠 것 없던 나도 편의점 사장 같은 상사의 걱정과 동기들의 마음에 차마 인간 같지 않은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더는 인간으로 염치가 없었다. 그 맘을 담은 것이 이 책 같았다. 그런 인간의 마지막 마음으로 사회복지를 시작하려는 아니면 나처럼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 책을 권하고 싶었다.

솔직히 여느 사회복지 이론서를 보거나 사례관리를 위한 책을 접해도 이런 고민을 생각하게 하는 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들의 선배들은 가족들이 가득하고, 하루하루 일을 하기에도 바쁘며, 위에서 시키는 설익은 정책을 현장에서 집행하고, 욕먹기도 바쁘다. 그럴 생각의 여유를 부릴 시간이 없다. 그런 글은 나처럼 성격이 예민한 사람이 글로 남기면 되는 것이었다. 나에게는 그 정도의 능력은 있으니까.


누구나. 독고 씨처럼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다. 타인에게 배척받는 사람이면서 반대로 타인을 구할 수 있으며, 또 누구나 제이에스가 되기도 한다는 점. 그리고 누구나 숨고 싶고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지만, 어렵게라도 돌아가고 싶다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마도 막둥이가 나에게 책을 추천해주면서 해주고 싶었던 말이 아닐지. 생각하다가 뭉클해졌다.


‘역시 너 때문이라도 돌아가야 할 거 같다. 그리고 글을 써야겠다.’


막둥이는 말했다.

“형. 편의점 차리고 맘 편하게 살아요.”


그런데 이 책에 어느 등장인물이 그런 말을 했다. 너무나 공감이 가기에 옮겨 적는다.


“힘들게 공무원이 되어봤자 결국 좀 더 큰 편의점이 아닐까? 국민의 편의를 봐주는 공간에서 또 다른 제이에스들을 만나는 삶…….”


이 말을 나에게도 이 글을 읽는 모두에게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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