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끝나기 전에 굴순두부를 먹자

남원 <굴세상>에서 추억을 먹다

by 이춘노

"통영에 가면 굴을 사서 라면에 넣어 먹을까?"

살면서 통영은 관광버스로 우루르 갔다가 회에 소주나 마시고 왔던 내가 처음으로 김과 굴을 샀을 때 들었던 말이다.


굴이라고 하면 역시 통영이 생각나는 것도 눈 내리는 날에 물메기탕을 먹고 시장에서 샀던 싱싱했던 굴 한 봉지가 함께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보쌈에 굴도 좋았고, 국물 안주로 만들었던 매콤한 굴라면도 진국이었는데, 소주는 마셨어도 올해는 굴을 먹어보지 못하고 끝나나 싶어서 내가 자주 갔던 굴국밥집으로 향했다.

누가 그랬던가? 그 지역에서 맛집을 찾으려면 관공서 근처에서 찾아보라고 말이다. 그것도 일리가 있다. 내가 일했던 시청 근처에 오래 살아남는 밥집이라면 그래도 기본 맛은 보장되었을 것이고, 덩달아서 주차도 편하다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라서 주말에 갑작스러운 시골 방문이 있다면 시청이나 군청 근처 식당도 조심스럽게 추천해 본다.


내가 이런 경험을 했던 것도 7년 전에 시청에 근무하면서 종종 먹던 굴순두부 맛을 알기 때문이다. 뜨겁고 매운 것을 먹으면 땀이 줄줄 흐르는 체질이라서 결코 타인과는 함께 먹지 않는 국밥류를 야근을 하는 밤에는 종종 찾아 먹었다.

물론 야근은 요즘 새로 들어온 신입 직원이 말하는 것처럼 결코 옳은 일은 아니지만, 먹고살려면 어쩔 수 없었다. 미친듯한 업무 강도와 쌓여있는 메일과 공문을 처리하기 위해선 저녁이 있는 삶은 접어두는 것이 그때는 당연했다. 오히려 개인적 무능이 있기에 이토록 시청에 지박령이 되었는지 싶었지만, 유일한 낙이라는 저녁도 부담스러운 사치였다. 냐면 배가 부르면 그나마 남은 시간도 나른해져서 새벽에 나와서 일을 할까 싶은 욕구가 스멀스멀 올라오기 때문이랄까?

그래도 허기지고, 마음이 우울할 때는 책상에 서류를 잠시 두고는 종종걸음으로 국밥집에 갔다. 굴국밥 전문점이라서 굴국밥도 유명하지만, 나는 유독 뻘건 굴순두부를 즐겨 먹었다. 간단하게 나온 밑반찬에 기다리면서 고추에 장을 찍어 먹고는 콩나물이며 김치를 하나씩 먹으면서 긴장할 위장에 신호를 줬다. 그리고 나온 뜨거운 뚝배기에 부추까지 올라온 시뻘건 국물이 보글보글 끓어오르는 국밥에 숟가락을 떠서 먹고 싶지만, 뜨거우니까. 앞접시에 조금씩 순두부와 굴을 담아서 후후 불어 먹었다.

밥은 결코 말지 않고, 한 숟가락씩 떠서 살포시 적셔 먹으며, 탄소화물과 순두부와 굴을 적절하게 숟가락에 담아서 흡입했다. 그러다 보면 땀이 났고, 땀을 닦아서 쌓인 휴지 더미와 빈그릇만 남기고 다시금 시청 사무실에 가서 일을 했던 기억. 먹은 것만 생각하면 추억인데, 사무실 분위기까지 떠오는 것을 세트로 보면 결코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그래도 종종 다른 면사무소에서 일을 하다가도 퇴근길에 이곳에서 굴순두부를 먹고 갔는데, 이번에 사장님은 나을 알아보고 말을 걸어 주셨다.


"살이 많이 찌신 것 같아요.?"

참 오랫동안 못 봤다는 표현인데, 느껴지는 턱살을 부정하고 싶었던 나는

"그래도 이거 살을 좀 뺀 건데..."

소심한 반박을 하면서 평소처럼 국밥을 먹었다.


계산을 하고 나오면서 오래된 간판을 찍어 보았다. 그리고 명절에 부모님이 자녀 부부에게 맛집이라고 소개하며 오손도손 먹는 와중에 생각했다. 내가 이 굴순두부를 기억하는 것은 결코 맛으로만 생각하기 어려운 희소성 때문 아닐까?

아무리 맛이 좋아도, 겨울이 지나면 먹을 수 없는 계절 메뉴라서 그렇기도 하고, 또 그 계절에 느꼈던 추억 하나하나가 쌓여서 크리스마스 같은 음식이라서 생각이 났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겨울이 다 지나가고 있다. 2년을 쭉 이어온 나의 겨울 이야기도 슬슬 다른 계절을 준비해야하는 애매모호한 시기에 혹시나 아직은 파카를 입고 돌아다니는 지금이라도 굴국밥 한 그릇 드셔보시면 어떨지?

춘아재도 이제 한 꼭지 남은 맛있는 겨울 이야기를 고민하며 겨울을 떠나보낼 준비를 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