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장에 왕점을 찍다

광주 유스퀘어 터미널 <서안>에서 매운 짬뽕 먹기

by 이춘노

올해는 한 가지 결심한 것이 있다. 한 달에 한 번은 그래도 서점에 가자. 그런데 이러한 결심은 동네 마실 가는 수준은 아니기에 필히 버스나 기차를 타고 대도시를 가야 하는 불편함도 있고, 바쁜 시기에는 깜빡하는 것도 사실이었다. 그래도 다짐이라면 실행을 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움직일 수 있는 순간이 오면 가겠다고 달력에 빈 공간을 내내 보고 있었다.


하지만 항상 그렇듯이 바쁘다. 아마 저번주에도 서울을 간다고 달력은 빼곡했고, 급작스러운 감기 몸살에 누워 있어야 했던 연초. 토요일에는 오전에는 사무실에서 일을 하고, 지저분한 방청소도 해야 했다. 그리고 일요일도 비슷한 무언가를 했을 것이지만, 대뜸 점심 무렵에 광주 가는 버스를 타고, 유스퀘어 터미널로 향했다.

역시 결심에는 행동력이 필요하다. 짧은 시간의 틈에 오전 일을 급하게 마치고, 버스에 오른 나는 1시간 동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았고, 배고픈 위장에 뭘 채울지 고민도 가능하니 그리 지루한 시간은 아니었다.


그리고 광주에 도착하자마자 2층으로 향해 구매할 고양이 그릇이 있을지 눈으로 점찍었다. 앞접시 용도로 샀던 고양이 그릇이 맘에 들어서 새로운 것이 있을지 싶은 마음에 항상 둘러보는 습관이 생겼다. 이번엔 한 그릇에 담을 수 있는 양념을 담을 그릇 두 개를 골랐다. 치즈와 삼색이로 말이다. 딱 초장과 간장을 각각 담아서 포장한 회를 찍어 먹으면 좋을 아이템. 기분 좋은 출발이니, 바로 식당으로 향했다.

배가 고팠다. 버스 멀미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배가 너무 고파서 위가 어눌해진 걸까? 덕분에 매콤한 것이 당기는 마음으로 <서안>이라는 중식당에서 딱 보아도 매울 것 같은 매운 해물짬뽕과 그 맛을 중화시켜 줄 군만두를 주문했다.


사실 중식당에 오면 고민이 많다. 짜장과 짬뽕. 군만두인가 탕수육인가? 배고픈 상태에서 오는 삶의 큰 고민이 귀찮아서 나는 원칙을 정했다. 혼자면 짬뽕과 군만두. 둘 이상이면 짜장과 탕수육이라는 것. 물론 이건 내 개인적 상황 때문이다. 땀이 평소에도 많이 내가 혼자 있을 때는 휴지를 뽑아대면서 땀을 흘리며 먹기 편하고, 아무리 그래도 혼자 탕수육을 먹기는 부담스러우니, 타협점이 군만두였다.

그래도 점심은 간단하게 점을 찍듯이 먹으라는 것이라는데, 군만두가 과할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하겠나. 매운 국물과 면을 한번 먹고는 바삭한 군만두를 한 입 베어 먹는 맛을 어떻게 포기할까? 땀이 나는 가운데 바삭하게 구워 나온 것이라지만, 혀끝에 느껴지는 기름진 군만두를 먹고 나면, 매콤한 짬뽕의 해물이 더 입맛이 살아나는 것을 애써 포기할 수 없어서 점을 찍지만 좀 더 큰 점을 그리기로 마음먹었다.

일반 중국집 플라스틱 그릇이 아니라, 냄비우동 느낌의 그릇에 나온 해물짬뽕은 해물과 야채가 골고루 있어서 밑에 화산처럼 숨어 있는 면을 쑥 떠 올려서야 짬뽕임을 알 수 있었다. 물론 국물은 몇 숟가락을 떠먹자 이마와 두피에 숨어 있던 땀을 뿜뿜 내 보내는데, 역시 혼자 먹기를 잘했다. 그래도 같이 나온 김치를 몇 조각 먹을 수 있는 것 보면, 매콤함이 그리 짜거나 자극적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결국 나는 배에 왕점을 찍고는 서점을 구경했다. 배도 부르니 느긋하게 신간과 평소에 안 보던 취미 구역도 보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다. 물론 가는 동안 꾸벅 잠이 들었던 것은 어쩔 수 없었지만, 그래도 위장에 왕점을 찍고, 마음도 책으로 채운 하루. 가방에 있는 고양이 그릇을 테이블에 놓고 누군가와 회에 소주 한 잔을 마실 생각을 하니 허전했을 하루를 알차게 보낸 것 같아 행복한 주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