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집에 와야 사람 사는 집 같다. 일주일 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꺼내 놓느라 입이 바쁘다. 덩달아 아들도 안 듣는 척하는 것 같지만 귀를 기울이는 게 보인다. 그게 뭔데? 물어보기도 하고 나는 고등학교 가면 이렇게 해야겠네 미리 팁을 얻는다.
딸은 적응 기간을 조금 지나니 화장에 관심이 더 많아졌다. 조금씩 화장을 했었지만 남녀 공학을 다니다 보니 더 외모에 신경을 쓴다. 두 번째 관심이 생긴 건 다양한 선배들을 만나보는 것이다. 그렇게 아이 이야기를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아이가 첫 모의고사를 치렀다. 처음으로 100분 시험 형식을 적응해 보는 것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치라고는 했지만 결과에 마음이 요동쳤다. 첫 모의고사가 주는 현타가 컸다. 이제 시작이니 하면 되겠지만 엄마 마음에 걱정이 앞섰다. '이제 여유 부리는 거는 어려워, 눈치가 좀 빨라야 해, 공부량이 많아져서 시간 활용을 잘해야 해' 내가 불안해 잔소리가 많아졌다. 그만해야지 다짐하다가도 또 걱정이 되니 나도 모르게 잔소리를 늘어놓는다. 그러다가 문득 깨달아졌다. 별도움이 못되는구나. 아이의 표정이 읽혀졌다. 나는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렇게 열심히 사는데!' 하는 마음이 쑥 올라왔다.
'아, 이제 멀어지자!' 그래야 한다고 느껴졌다. 나보다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아이가 내게 들려준 이야기에 단서가 있었다. 젊은 선생님들, 동경의 대상이 되는 선배들, 자기와 다른 친구들에게 이미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제 아이의 머릿속에 내 자리는 아주 작다. 그래야 하는 시기였다. 알고 있었지만 내 것이 아니었다. 이제 나의 이야기가 되어야 한다.
감정을 건너뛰기보다 진솔하게 단계별로 가는 게 좋다. 그래서 아이를 기숙사에 보내고 떨어져 나가는 마음에 집중해 보았다. 서서히 아이와 멀어지고 있다. 단칼에 이것저것 잘라버렸다면 탈이 났을 것이다. 자연스럽게 되고 있다. 어느 때 서운했는지, 마음이 허했는지 나를 관찰해 가면서 빠져나오고 있었다. 사춘기 뇌는 필요한 것만 남기고 나머지는 버리는 과정을 겪는단다. 너의 머릿속에 어떤 것들이 자리 잡든 다 너에게 필요한 경험들일게다. 그래 나는 너에게서 한발 한발 멀어져야겠다. 그렇게 다짐하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딸과의 분리 작업이 잘 되어가고 있는 듯하다. 멀어지는 것이 가까워지는 것이다. 우리는 잘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