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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쏠북 Sep 25. 2024

현재의 선택이 과거와 미래를 바꿔요


20세기의 마지막 페이지가 넘어가던 2000년, 물리학자 5명이 양자역학 논문 한 편을 발표했어요. ≪지연된 ‘선택’ 양자 지우개≫란 제목이었지요. 실험에서 물리학자들은 빛의 입자(광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해 파동처럼 행동하는지 입자처럼 행동하는지 관측했어요. 단, 광자가 슬릿을 이미 통과한 ‘후’ 관측을 했다는 게 기존 이중슬릿 실험과의 차이점이었어요. 결과만 놓고 말하면, 과학자의 관측에 따라 광자의 과거 행동 방식이 바뀌었어요*. 광자는 이미 파동으로서 슬릿을 통과했지만, 과학자가 어떤 슬릿을 통과했는지 관측할 때 광자는 더 이상 파동처럼 행동하지 않고 입자로서 행동하기 시작했어요. 현재의 관측 여부가 양자의 과거 행동 방식을 번복시킬(지울) 수 있다는 의미로 이를 ‘양자 지우개 효과(quantum eraser effect)’라 부른다 해요. 이 실험은 시간과 인과에 대한 기존의 패러다임을 뒤흔들며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현재의 선택이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바꾼다는 양자 지우개 효과를 우리 삶 속에 적용해보면 어떨까요?


과학자의 선택이 양자의 과거 행동 방식을 바꿨던 것처럼, 우리 삶 속에서 나의 ‘선택’도 과거를 바꿀 만큼의 힘을 갖고 있어요. 이미 벌어진 사건도 어떤 관점을 선택해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를 낳을 수 있답니다. 우리말 표현 중 ‘과거는 미화된다’란 말에 그 비밀이 숨어 있는 것 같아요. 당시엔 괴로워했던 경험일지라도 시간이 흐른 뒤엔 그때를 회상하며 그리워하고 좋았던 시절이라 생각하곤 하지요. 그래서 우리는 당시엔 지긋지긋하다고 느꼈던 학창시절을 그리워하고, 죽을 것 같다고 느꼈던 군대 시절을 안주거리삼아 즐겁게 대화를 나눠요. 현재 내가 어떤 시각과 감정으로 과거를 떠올리는지에 따라 기억은 재구성돼요. 재구성된 기억은 다른 결과를 낳고 나는 그것을 새롭게 인식하게 되지요.


만약 세월이 흘렀는데도 여전히 나를 괴롭고 힘들게 하는 기억이 있다면 과거와는 다른 성숙한 시각을 선택해 과거를 다시 떠올려보세요. 성숙한 시각에선 같은 일도 다르게 보일 거예요. 과거에서 약으로 쓸 것은 찾아서 약으로 쓰되, 털어낼 건 털어내고 어리석었던 부분은 성장을 위한 교훈으로 삼으세요. 그것이 현재의 나에게도 영향을 미쳐 내 의식과 관념에도 변화를 불러일으키게 된답니다. 이런 표현이 있어요.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 아침은 작은 탄생이요, 저녁은 작은 죽음이다."


불교에선 생과 사가 반복된다는 윤회사상을 믿어요. 붓다는 해탈할 때까지 무려 500번이 넘는 생을 살았다고 해요. 만약 윤회가 실재해서 생과 사가 반복된다면, 매일 아침 작은 인생을 반복하는 것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뭐니 뭐니 해도, 과거를 기억하냐 못하냐가 결정적일 것 같아요. 윤회에서는 전생을 기억하지 못하고 초기화된 상태에서 새로운 삶을 살아가지만 일상에서 우리는 아침에 일어날 때 과거를 기억해요. 그리고 그 과거에 매여 오늘을 살아가지요. 만약 우리가 과거에 매이지 않고 무한한 가능성 속에 나를 열어두고 새로운 하루를 맞이한다면 나는 새 삶을 사는 것과 같아요.


과거에 매이지 않는다는 것은 한 번의 생에서도 수십, 수백 번의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의미해요. 그러니, 지난 날의 과거에 묶이지 마세요. 오늘에는 지나온 삶이 녹아 있지만 나는 그것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선택을 하며 미래를 창조해갈 수 있어요. 과거를 현재에 녹여내지 못하면 지나온 삶은 부채가 되지만, 아름답게 녹여낼 수 있다면 오늘을 위한 거름이 된답니다. 지금까지의 삶이 흡족하지 못했을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서 나를 위한 선택으로 과거와 미래를 창조해가세요. 나는 무한한 가능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어느 순간에도 잊지 마세요.


김윤호, R. 유, S.P. 쿨릭, Y. H. 시흐, 말런 O. 스컬리, ≪지연된 ‘선택’ 양자 지우개(Delayed ‘Choice’ Quantum Eraser) ≫, Physical Review Letters, vol. 84, no. 1 (2000), p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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