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서 추천하냐고 묻는다면, 저는 비추입니다
내 사회생활의 첫 시작은 공공기관이었다.
내 또래가 없기도 했고, 대부분은 나의 삼촌 그리고 아빠뻘의 대리 - 팀장 - 과장님과 함께 생활을 했다. 옷을 입는 것부터 행동, 말투, 태도 그리고 업무에 대한 고과까지 신경 쓰이는 것들이 정말 많았다. 심지어 사사로운 점심 식사 메뉴를 정하는 것부터 식사를 거르는 일도 무언가 어른들에게는 신경 쓰일 빌미를 제공하는 꼴이 되곤 했다.
꽤 오래도록 기성세대와의 합을 맞추며 일을 하다 보니 나 스스로도 내 또래의 사람들과 어떻게 일을 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첫 회사에서 계약직 직원으로 20대 직원들을 매 번 분기마다 뽑아서 함께 일을 했는데 그때 내가 '꼰대' 라는 사실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 보고 배운 것들이 다 그런 것들이었다. 내 눈에 보이는 '한마디 할까?' 하는 순간들을 꾹 참고 나는 '피곤하지? 오늘은 일찍 들어가서 쉬어'라는 말로 대신했다. 물론 그 한마디 때문에 나는 상사로서 좋은 이미지였지만 내 입장에서 나는 사수에게 일을 가르쳐주지 않는 상사이기도 했다.
나는 바빠 죽겠는데 졸고 있는 후임을 보면 나는 집에 보내고 싶어 진다. 어차피 일을 주어도 다시 한번 내가 두 번 세 번을 더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그럴 바에는 차라리 조용한 사무실에서 나 혼자 일하는 것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나고 보니 졸고 있는 후임에게 커피 한 잔 사주면서 그래도 일을 시켰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아마 그 친구는 월급루팡처럼 편하게 다녔을지 모르겠지만 6개월 동안 배운 것이라고는 오타검수 밖에 없었다.
그러니 내가 배워온 그리고 몸을 담았던 회사는 연애와는 거리가 먼 그야말로 일만 죽어라 하는 밥벌이 그 이상 이하의 공간도 아니었다.
그리고 본격적인 스타트업 세상에 들어와서 적응하는데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나는 아직도 20대의 동료들과 어떻게 친해져야 할지 모르겠다. 겉모습은 30대인데 안에는 5060대 꼰대가 들어앉아있는 형국으로 업무를 진행하면서 수평적임에도 동료들을 모두 빠짐없이 챙겼고 수습까지 내 몫이었다. 그런데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어난다고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과도한 업무들이 몰려오는 시기에 연애의 기회가 찾아왔다. 이야기가 참으로 잘 통했는데 당시를 회고하자면 거의 대화의 99%가 회사에 대한 고충이었고, 경력직으로서의 공감이었다. 그리고 단 1% 가 굳이 말하지 않아도 서로가 갖고 있는 왠지 모를 가치관에 대한 일치점이었다. 사내연애라는 것이 나에게도 상대에게도 처음이라 많은 망설임이 있었으나 결국 '한 번 해보자'는 심정으로 사내연애를 시작했다.
복사기도 아는 사내연애
나름대로 조심을 한다고 해도 결국 티가 나는 법이다.
동료들이 알음알음 알더라도 회사는 회사이기에 사내연애를 하면서도 일은 계속되었다. 그리고 더더욱 실수하지 않으려 노력했고, 회사 내에서 나이도 나이인지라 정말 빈틈하나 보이지 않으려고 최선을 다했다.
연애하느라 느슨해졌네
라는 말을 듣기 싫은 젊은 꼰대였다.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하나 더 있었다.
타 부서임에도 같이 협업하는 프로젝트가 잦았고 거의 24시간을 공유하고 있었다. 심지어 업무도 일도. 분리되지 않는 상황이 많다 보니 싸워서 감정이 상하더라도 같이 회의에 참석하거나 혹은 기분이 아주 좋더라도 서로의 팀 후임 간의 이슈로 갈등을 빚거나. 심지어 굳이 일을 하면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들도 적나라하게 공유가 되는 상황에 놓였다. (정말 죽을 맛이었다)
우리는 업무적으로 서로 자존심도 업무에 대한 프라이드도 높았기 때문에 협업을 하는 과정에서 합이 안 맞으면 각자 한 발 물러날 때도 있었지만 연애 싸움에 대한 감정이 풀리지 않은 채 그런 상황을 맞이하면 그야말로 대재앙의 사태를 맞이하곤 했다. *회의 내내 꾹 참고 웃고 있다가 회의가 끝나고 대판 싸운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그 끝은 서로 고생했다며 맥주 한 잔에 풀리는 맛으로 우리는 서로의 경쟁자로 감시자로 동료로 그렇게 사내연애를 이어갔다. 처음에는 애정이었으나 지금은 전우애가 +100 상승한 느낌이 들만큼 우리는 서로의 고충을 너무나도 잘 이해하고, 누구보다 서로를 잘 아는 친구가 되었다. 퇴사를 앞두고서야 모든 동료들이 나에게 사내연애에 대해서 오픈 질문을 하였다.
거의 취조에 가까운 질문이었는데 대부분의 질문은 '어떻게 사내연애를 시작할 수 있어요?' 그리고 '사내연애하면 어때요?!'였다. 어떻게 라는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모르겠다. 사람의 감정이라는 게 숨길 수는 없는 문제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쁜 와중에 연애질이 눈에 들어오느냐!?'라고 묻는다면 '그렇다'라고 대답할 수밖에. 전쟁 중에도 사랑은 피어나고 아이가 생기잖아~!? 그런데 '사내연애를 하면 어떠냐?'에 대한 질문에는 적극 추천한다 혹은 행복하다고 단호히 말할 수 없고 장단점은 있으나 만약 지금 사내연애를 생각한다면 비추천이라고 말하고 싶다.
헤어짐을 늘 염두하고 시작하는 연애는 없다.
하지만 직장 내에서 나의 밥벌이와 연관되어 있는 이상 연애를 할 것이라면 내 업무에도 그리고 타인 (동료)에게도, 서로에게도 예의를 다하는 연애를 하기를 바란다. 만약, 그럴 자신이 없다면 나는 비추천이다.
대학시절 캠퍼스 커플의 탄생이야 휴학, 군입대, 전과 등 다양한 경로로 서로를 안 보면 그만이다.
심지어 청춘의 연애에서 연애 한 번 끝났다고 대수랴. 하지만 직장 내 연애는 다르다. 헤어지면 그만인 것이 아니다. 생각보다 사내 연애를 아는 동료들도 껄끄러워지고, 업무 하나를 맡기는 사수 입장에서도 협업을 하라고 지시하고 싶지만 내막을 아니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밥벌이가 연관되어 있으니 누군가 퇴사를 하거나 부서를 옮기거나 터닝포인트가 될 만한 결정들이 분명 존재한다.
만약 스타트업에서 사내연애를 고민한다면,
부디 책임감을 가지고 밥벌이에 충실하고 공과 사를 정확히 구분하여 건강한 연애를 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