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퇴사를 말한 후 느낀 것들

by 은행원

월 초에 퇴사를 말씀드렸지만 한 달이 자나도록 나의 퇴사는 결정되지 않았다. 나는 평소에 말이 많은 편이 아니다. 진짜 중요한 이야기가 아니면 입 밖에 꺼내지 않는다. 입이 하나인 이유는 말을 적게 하라고 이며, 귀가 두 개인 이유는 많이 들으라는 이유에서다. 그래서 나는 많이 말하기 보다 많이 듣는 편이다. 그런 내가 스스로 면담을 청하고 내 진로를 이야기 했을 땐 나는 정말 깊은 생각을 한 뒤였으나 나의 상사는 내 퇴사를 정말 안타깝게 생각했다.


퇴사를 말한 다음 날, 상사분은 아침에 출근한 나를 데리고 다른 지역에 데리고 가서 밥과 차를 마시며 여러 이야기를 했다. 오늘 하루는 나를 위해 시간을 냈다는 말과 함께 나에 대해 알고 싶다고 했다.


생각은 많지만 그 생각을 다 말하지 않는다. 내 생각이 전적으로 옳은 것이 아니며 내 말이 누군가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며 항상 말에 있어서는 신중한 편이다.


그런 내가 하루 종일 상사분과 있으면서 속에 있는 많은 이야기를 터놓았다.


예전에는 정말 열심히 일했고 인정받는 게 즐거웠지만 지금은 그런 마음이 사라졌습니다.

누군가에게 인정받고 싶지 않습니다.

승진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습니다.

승진을 해도 상사의 모습이 미래의 내 모습이라 생각하면 더더욱 승진 욕심이 없습니다.

매월 주어지는 목표를 다 채웠음에도 다음 달이면 새롭게 주어지는 실적들, 이제는 신물이 납니다. 이게 정말 고객을 위한 것이라면 모르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를 만날 때면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이 듭니다.



차마 하지 못한 마지막 말도 있다.


회사를 계속 다니면 3년 뒤, 5년 뒤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일 거란 생각이 듭니다. 미래에도 여전히 같은 모습이라는 것이 가장 두렵습니다.


남들은 변화를 싫어하지만 나는 변화를 즐기는 사람이었다. 새로운 지점에 발령이 나도 두려움도 있지만 설레임이 더 컸다. 어떤 사람을 만날까? 어떤 환경에 적응할까? 나는 두려움이 별로 없는 사람이었다. 직장 생활을 계속한다면 나는 새로운 점포에 발령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고 새로운 일을 배울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큰 대기업에 속한 직원일거란 사실이 나는 솔직히 두려웠다.

우리는 모두 미래에 대한 기대를 한다. 내 삶이 좀 더 나아지겠지, 몇 년 뒤엔 지금보다 나은 모습이겠지. 그런 기대와 희망마저 없다면 사람은 행동할 이유를 잃어버린다.

과거의 신입사원이었던 내가 열심히 일해서 승진해야지, 라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승진 후에 내 미래가 달라질 것이란 믿음 때문이었다. 회사 생활을 오래 해오면서 승진을 한다는 것은 직책이 바뀌고 급여가 오른다는 것 뿐, 더 많은 책임이 주어지고 하는 일의 변화는 크게 없었다. 나는 5년 뒤에도 같은 모습이고 싶지 않았다.

나의 퇴사 소식을 누구보다 안타까워 하던 나의 상사분에게 나는 3번째 퇴사를 말씀드렸다. 지금처럼 어려운 시기에 나가서 어떡하려고 그러니..라는 게 상사분의 의견이었다. 나도 내 미래를 모른다. 나는 월급외의 정기적인 소득을 만들어놓지도 않았으며 어떤 일이 나에게 수익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단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지금 하는 나의 일이 더 이상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생계를 위해 하는 일에 행복이라는 가치를 들이대는 게 누군가에게는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일의 의미는 생계보다 더 소중하기 때문에 나는 나에게 좀 더 가치 있는 일을 하기로 다짐했다.


퇴사를 한 후에도 상사분이 나에게 써주신 마음은 잊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솔직히 내 자리는 비워져도 금방 누군가에 의해 채워지는 자리다. 대기업에서는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을 거의 없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누군가 나의 일을 배워두어 내가 없더라도 조직이 돌아가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계속 잡아주신 것은 업무적인 것 뿐만 아니라 나를 인간적으로 대해주셨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인복이 많다. 나는 늘 운이 좋았기에 내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것을 대부분 이루었다. 그 결과의 대부분은 내 주변의 인복덕분이다.


고3때 나에게 헌신해주는 엄마가 계셨기에 공부에만 전념했으며 대학시절 내가 하고 싶다는 것은 말리지 않고 지지해주셨기에 다양한 경험을 하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취업을 할 수 있었다. 20대 초반까지는 부모님을 잘 만난 복이 컸고 그 이후에는 주변사람들 덕분에 잘 풀린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많이 귀 기울였다. 2년 전에도 친한 언니에게 퇴사를 이야기했을 때, 어차피 그만 둘거면 할 수 있는 건 다 해보고 그만둬야지. 다른 지점에 발령내달라고 하던가 퇴사는 하지마. 언니의 말 덕에 다른 지점에 발령받아 2년은 더 근무했다.


언니에게 고맙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지만 아닌 적도 있었다. 2년의 시간이 지나고 나면 금방 흐른 것 같지만 하루 하루 힘들었던 기억이 더 많다.


이번엔 나를 생각해주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보다는 내 이야기에 더 집중하고 싶다. 나를 가장 잘 아는 사람도 나이고, 나를 세상에서 가장 아껴주는 사람도 나이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내가 가장 잘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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